1980년대의 대수술, 폴 볼커의 위대한 전쟁

by 구미잉

1979년 미국 경제는 깊은 절망의 늪에 빠져 있었습니다. 10년 넘게 이어진 ‘대인플레이션(The Great Inflation)’으로 물가는 거의 세 배나 치솟았고, 사람들의 저축은 그 가치를 잃어가고 있었죠. 더 심각한 문제는 ‘신뢰의 위기’였습니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겠다는 약속을 번번이 어겼고, 시장은 더 이상 중앙은행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물가는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대 심리가 사회 전체를 지배하며 임금과 물가의 악순환을 부추겼습니다.


바로 이 절망의 순간, 2미터가 넘는 거구에 낡은 정장을 입고 값싼 시가를 문 한 남자가 구원투수로 등판했는데요. 바로 폴 볼커였죠. 그는 이미 프린스턴 대학 졸업 논문에서부터 연준의 인플레이션 대응 실패를 비판했던, 뼛속까지 ‘통화 매파’였습니다. 그에게 인플레이션은 단순한 경제 현상이 아니라, 규율을 잃어버린 정부와 중앙은행이 만들어낸 재앙이었습니다. 그의 등장은 단순한 리더십 교체가 아니라, 무너진 경제 질서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마지막 시도였습니다.


취임 직후인 1979년 10월 6일 토요일 저녁, 볼커는 예고 없는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 통화 정책의 혁명을 선언합니다. 이른바 ‘토요일 밤의 특별 조치’였죠. 그 내용은 아주 파격적이었습니다. 직전 FOMC 회의가 4대 3이라는 근소한 차이로 겨우 금리 인상을 결정할 만큼 연준 내 분열이 심각한 상황에서, 볼커는 기존의 점진적인 방식으로는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연준의 정책 목표를 ‘금리(돈의 가격)’에서 ‘통화량(돈의 양)’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는 사실상 금리의 고삐를 풀어버리고, 시장 원리에 따라 필요한 만큼 제한 없이 치솟도록 용인하겠다는 의미였습니다. 인플레이션이라는 암을 제거하기 위해 경제 전체를 수술대에 올리는, 고통스러운 대수술의 시작이었죠.


그 결과는 즉각적이고 끔찍했는데요. ‘볼커 쇼크’가 시작되자 금리는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아, 1981년 6월에는 연방기금금리가 월평균 19.1%라는 경이적인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이 살인적인 고금리는 미국 경제를 1980년과 1981-82년, 두 번의 혹독한 경기 침체로 몰아넣었고, 실업률은 1982년 말 10.8%까지 치솟아 1,2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사회적 저항은 극에 달했습니다. 빚더미에 오른 농부들은 트랙터를 몰고 와 연준 건물을 봉쇄했고, 절망한 자동차 딜러들은 팔리지 않은 차 열쇠를 관에 담아 보냈으며, 주택 건설업자들은 항의의 의미로 각목을 연준에 부쳤습니다. 볼커 자신은 ‘미국 중소기업을 죽인 살인자’라는 비난과 함께 살해 위협까지 받아 무장 경호원의 보호를 받아야 했습니다. 백악관의 압박 또한 거셌지만, 볼커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민주당의 카터와 공화당의 레이건 행정부 양쪽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인플레이션이 잡히기 전까지는 긴축의 고삐를 늦출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죠.


그리고 마침내, 이 고통스러운 인내의 시간은 결실을 보기 시작했는데요. 1983년, 1980년 13.5%에 달했던 인플레이션율은 3.2%까지 극적으로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폴 볼커가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은 단순히 인플레이션을 잡았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닙니다. 그의 진정한 업적은 바로 ‘중앙은행의 신뢰(Credibility)’라는 무형의 자산을 재건한 데 있습니다. 그는 어떤 정치적, 경제적 희생을 치르더라도 물가 안정을 달성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시장에 각인시켰습니다. 이 신뢰가 한번 확립되자, 사람들은 더 이상 미래의 높은 인플레이션을 예상하고 행동하지 않게 되었죠. 그가 단련해 낸 이 ‘신뢰’의 토대 위에서, 그의 후임자들은 20년 넘게 이어지는 장기 호황, 이른바 ‘대안정기(The Great Moderation)’를 이끌 수 있었습니다.


1970년대의 실패가 ‘신뢰 상실’의 비용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줬다면, 1980년대 볼커의 전쟁은 그 ‘신뢰’를 되찾기 위해 얼마나 큰 고통이 필요한지를 증명한 셈입니다. 그리고 이 뼈아픈 교훈은, 2021년 ‘일시적’이라는 오판으로 신뢰에 상처를 입었던 제롬 파월 의장이 왜 그토록 볼커의 유산을 강조하며 인플레이션과 싸웠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주는 가장 중요한 역사 교과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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