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의 밀실, 플라자 합의와 환율전쟁

by 구미잉

1980년대 초, 폴 볼커가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20%에 육박하는 초고금리는 미국 경제를 깊은 침체에 빠뜨렸지만, 동시에 전 세계의 돈을 블랙홀처럼 미국으로 빨아들였죠. 여기에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대규모 감세와 국방비 증액, 즉 ‘레이거노믹스’가 더해졌습니다. 연준은 돈줄을 죄고(긴축 통화정책), 백악관은 돈을 푸는(확장 재정정책) 상반된 정책의 충돌은 미국 내 실질 이자율을 폭등시켰고, 그 결과 미국은 ‘킹 달러(King Dollar)’라 불리는 전례 없는 달러 초강세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 ‘킹 달러’는 미국의 위상을 과시하는 듯 보였지만, 그 이면에서는 미국 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병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바로 ‘쌍둥이 적자(Twin Deficits)’였죠. 정부는 세금보다 많은 돈을 쓰며 1983년에는 GDP의 5.7%에 달하는 재정적자에 시달렸고, 강달러로 인해 수출 경쟁력을 잃은 기업들은 1985년 GDP의 3.0%에 달하는 막대한 무역적자를 쌓아갔습니다. 캐터필러 같은 미국의 대표 기업들이 해외 시장에서 속수무책으로 밀려나고 공장이 문을 닫자, 그 분노는 값싼 일본산 자동차와 전자제품을 향한 적개심으로 표출되었습니다. 미국 의회에서는 의원들이 보란 듯이 도시바의 라디오를 해머로 부수는 퍼포먼스가 벌어질 정도로, 보호무역주의의 광풍이 폭발 직전에 이르렀죠.


결국 미국은 칼을 빼 들었는데요. 1985년 9월 22일,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 G5(미국, 일본, 서독, 영국, 프랑스) 재무장관들이 비밀리에 모였습니다. 이 밀실 회의의 목표는 단 하나, 미국의 압력으로 다른 국가들이 외환시장에 함께 개입하여 달러 가치를 인위적으로 끌어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 경제사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 중 하나인 ‘플라자 합의(Plaza Accord)’입니다.


합의의 효과는 즉각적이고 파괴적이었습니다. 시장이 열리자마자 G5 중앙은행들의 공조 개입이 시작되었고, 달러 가치는 걷잡을 수 없이 폭락했습니다. 특히 미국의 주된 타깃이었던 일본 엔화의 가치는 불과 2년 만에 두 배 가까이 폭등했죠. 달러당 240엔이었던 환율이 120엔까지 떨어진 겁니다. 당초 합의의 암묵적 목표였던 10~12% 절상폭을 훨씬 뛰어넘는, 통제 불가능한 수준이었습니다.


이 급격한 엔화 강세는 ‘수출’이라는 엔진으로 달려온 일본 경제에 치명타를 가했는데요. 도요타, 소니와 같은 대표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은 하루아침에 반 토막이 났고, 일본 경제는 ‘엔고 불황(円高不況)’이라 불리는 깊은 침체에 빠져들었죠.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이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일본은행이 내놓은 처방은, 1년 만에 금리를 5.0%에서 사상 최저 수준인 2.5%까지 내리는 전례 없는 돈 풀기였습니다. 하지만 엔고로 인해 투자 매력을 잃은 제조업 대신, 이 막대한 유동성은 갈 곳을 잃고 주식과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가격 상승이 또 다른 투자를 부르는 광란의 파티가 시작된 거죠. 1989년 말, 닛케이 지수는 3배 가까이 폭등했고, 도쿄 황궁 부지의 땅값이 캘리포니아 전체의 땅값보다 비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본은 역사상 유례없는 자산 버블에 휩싸였습니다.


결국 플라자 합의는 미국의 쌍둥이 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 처방이었지만, 그 약의 독성은 고스란히 일본 경제에 퍼졌습니다. 엔고 불황을 막기 위한 일본의 정책적 과잉 대응은 결국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리는 장기 침체의 씨앗이 되었죠. 이 사건은 환율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예기치 못한 비극을 낳을 수 있는지, 그리고 외부의 압력보다 그에 대응하는 내부의 정책 결정이 한 국가의 운명을 어떻게 좌우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위기의 거울’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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