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에 언니집에 있던 재봉틀을 우리 집으로 가져 왔다. 기대하고 고대하던 나의 새로운 시대, 재봉시대가 한 발 앞으로 바짝 다가 왔다.
지난 연말에 언니가 만든 소품을 아들이 판매하기 시작했고 2월 초에 우리는 그동안 올린 수익에 대한 수입금을 배당받았다. 뛸 듯이 기뻤다. 오랫동안 계획하고 기획해서 준비한 게 아니라 우연한 기회에 시작한 일에 성과가 났다고 생각하니 약간의 수고로움에도 불구하고 날로 먹은 기분이었다.
아들은 처음부터 계산을 철저히 해야 한다면서 비용과 수익에 관한 깨알 같은 정산 내역을 공유해 주었지만 우리는 그런 것에 관심이 없었다.
"언니야 웅이가 보내 준 감가삼각 비용 살펴 봤나? 홈이 꼼꼼하게 보라 카던데"
"오죽이나 알아서 했을까? 돈이 벌렸으니까 우리한테 준 거 아님?"
사실 나도 언니와 같은 마음이었다.
"언냐, 그래도 얼마 벌어서 얼마 빼고 얼마 주는 지 훑어 봐라."
"그런거 읽기 귀찮다."
큰 기대없이 시작한 일에 수익금을 정산 받은 그 사실 하나 만으로도 충분히 고맙고 감사했다.
이참에 우리는 재대로 된 재봉틀을 재대로 된 가게에서 장만하기로 마음 먹었다. 사실 재봉틀을 구입하기로 마음 먹은 것은 처음이 아니다.
일을 시작할 때 언니가 바느질을 하면 나는 재단과 실밥처리 같은 잔일 들을 했다. 하지만 언제나까지나 그렇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언젠가는 나도 바느질을 해야 했다. 이런 저런 사정을 떠나서 하루 빨리 바느질을 배우고 싶었다.
전용 재봉틀을 한 대 주문 하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재봉틀을 검색한 후 가격을 비교해 보니 해외 직구와 국내 사이트의 가격이 무려 10여만이나 차이가 났다. 똑 같은 모델을 해외 직구로도 살 수가 있다니, 망설임 없이 주문을 했다. 해외 배송이라 열 흘쯤 지나 재봉틀을 받았다.
두근두근, 내 전용 재봉틀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서 박스에서 재봉틀을 꺼냈다.
언니가 노련한 솜씨로 기본 세팅을 마치고 페달에 발을 올렸다.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30센티쯤 나갔는가 싶었는데 바느질이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밑실이 북에서 올라오지 않았다. 새 재봉틀인데 잘못됐을 리가 있나. 재봉틀 경력이 10년이 넘은 베테랑 재봉사인 언니는 웬만한 문제는 언니 손에서 곧 잘 해결했다. 그런 언니가 새 재봉틀은 아무리 봐도 원인을 알 수가 없다고 했다. 밑실과 윗실이 함께 걸려서 올라와야 바느질이 되는데 밑실 윗실이 따로 논다고 했다.
언니 옆에서 폭풍 검색을 했다. 유투브에다 증상을 올렸다. 유투브를 볼 때마다 언니는 "저 정도 고장이면 벌써 고쳤지." 했다. 한 블로그에서 같은 문제를 언급한 대목을 찾았다. 원인은 밑실과 윗실이 만나는 타이밍이 어긋난 것인데 전문가가 아니면 고칠 수없다고 했다.
유투브로 다시 돌아가 재봉틀 수리 전문가를 검색하고 그가 올려 놓은 연락처에 전화를 했다. 어렵사리 연락이 닿았지만 그 분은 바빠서 약속을 잡을 수 없다고 했다.
반품 밖에는 답이 없었다. 반품을 하기 위해 판매자에게 연락을 해서 고장 상황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럴 경우에는 판매자에게 굳이 설명을 하는 것보다 제품 불량으로 인한 반품을 신청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하지만 반품을 별로 해 본일이 없는 나로서는 판매자에게 먼저 설명을 하는 게 순서라고 생각했다.
설명을 들은 판매자는 보내주면 확인하겠다고 했다. 2~3일 후에 재봉틀을 확인한 판매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고장이 아니고 밑실 북에 엉겨있는 실 뭉치 때문이었다고 했다. 원인을 제거 하고 이상 없는 것을 확인했으니 내게 착불 비용을 부담하고 다시 받으라고 했다. 언니는 그 정도 고장이라면 자기가 몰랐을 리가 없다고 하면서도 판매자가 손을 봤고 이상이 없다고 하니까 받아도 되는 것 아닐까 했다. 판매자가 하는 말을 믿고 착불비용을 기꺼이 부담하고 제품을 다시 받았다.
배송 받은 재봉틀로 바느질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언니는 처음과 똑같은 문제만 되풀이 될 뿐이라고 했다. 그럴리가 있나, 그럴 리가 있었다. 언니는 애초에 반품을 해야 하는데 다시 받은 게 큰 실수 같다고 했다. 판매자에게 똑같은 문제가 발생했으니 반품을 하겠다고 했더니 그 때부터 태도가 180도로 싹 바뀌었다.
판매자는 우리에게 미싱을 모르는 초보자가 미싱을 다룰 줄도 모르면서 아무 이상 없는 미싱을 반품해 달라고 하면 어떡하냐고 얼토당토 않은 말을 했다. 사진을 보내고 전후사정을 아무리 설명해도 이상 없는 미싱이라고 우기면서 모든 잘못을 우리에게 뒤집어 씌웠다.
제품을 돌려 보내기까지 고장에 대한 증명과 설명을 하느라 몇 날 며칠을 시달렸는지 모른다. 이만저만 골치가 아픈 게 아니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아들은 "해외 직구잖아요. 판매자가 OEM방식으로 생산한 제품을 구매해서 판매를 하는 거라, 판매자가 해외로 보내서 정품으로 교환을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판매자도 애로 사항이 많아요, 손해를 보더라도 이번에는 엄마가 양보를 해야 할 것 같아요." 동종 업에 종사하는 아들이 그렇게 말하면 그 말이 맞을 것이다. 우리는 심하게 흔들렸고,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 적지 않은 손해를 보고 마무리했다.
마음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몇 가지 교훈을 얻었고 손해 비용은 수업료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재봉틀을 인터넷으로 살 생각을 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했다. 지당한 말씀이었다. 내가 언제부터 겁도 없이 물건을 가리지 않고 인터넷으로 사게 됐나? 전자제품까지 덜컥덜컥 인터넷으로 사던 습관이 어느새 몸에 배였나보다.
그 일로 트라우마가 생겨서 한동안 재봉틀을 사기가 무서웠다. 인터넷으로는 아예 살 용기가 나지 않았고 어디에서 사야 정품을 잘 살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12월에 그 사건이 있었으니 어영부영 벌써 2달 여가 훌쩍 지나갔다.
수익금 정산과 조금씩 늘어나는 주문을 생각하면 재봉틀 구입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서울 시내에 있는 재봉틀 대리점을 다시 검색하기 시작했고 몇 군대 전화로 상담을 한 끝에 그럴싸한 가게를 발견했다. 미리 전화로 주문을 하고 약속 시간을 정한 뒤 토요일 아침 일찍 우리는 각자의 집에서 출발했다.
중랑역에 있는 대리점이었는데 가정용, 공업용 재봉틀을 두루 갖춰 놓고 고장났을 때 수리까지 전문적으로 하는 가게였다. 진작에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쉽게 해결하려고 하다가 큰 코를 다쳤다. 비싼 비용을 치뤘지만 늦게라도 믿을 수 있는 가게에서 제대로 된 재봉틀을 산 것 같아서 넘 기쁘고 감사했다.
돌아오면서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쉽게 되는 일이 없다고, 뭐든 제대된 것을 얻어 내려면 그만한 댓가를 지불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좋은 공부 했다며 웃었다.
언니 집에 있던 가정용 재봉틀은 내가 가져가기로 하고 성능이 좋은 새로 산 준 공업용 재봉틀은 언니가 쓰기로 했다.
재봉틀을 옮기기 전에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도록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사항들을 점검했다. 북에 실감기, 바늘에 실 끼우기, 바느질 시작과 마무리 시점에 뒤로 가는 법을 반복해서 익히며 어깨 너머로 배운 솜씨로 소품을 만들어 보았다. 혼자 힘으로 완성한 소품을 보고 언니가 잘했다고 칭찬을 했다.
우리 집에 오자마다 미리 확보한 자리에 재봉틀을 놓고 옷도 갈아 입지 않은 채 바느질을 시작했다. 걱정과 우려와는 달리 언니 집에서 할 때 보다 훨씬 편하고 수월했다. 내 말을 들은 언니는 마음이 편해서 그렇다고 했다. 사실 언니집에서는 형부 눈치보느라 마음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었다.
이제부터는 언니를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게 되었다. 언니는 직선 부분이라도 해 주면 큰 도움이 되겠다고 했다. 전에 같으면 '시방 직선 부분이라고 했음? 내가 직선 부분 하나 하려고 그 고생을 해서 재봉틀을 산 게 아니지, 빠른 시일 안에 완성품을 만들어서 언니 형부 아들 남편 모두가 깜짝 놀라 뒤로 벌러덩 자빠져 버리게 할거야.' 했을 테다. 지금도 그런 근자감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도 적지 않다.
어찌 되었든 한 걸음씩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서 머지않아 '용감한 재봉사'보다는 도움되는 재봉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