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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홍소금 Nov 13. 2024

그에게 너무 어려운 미션

요즘에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은 소품 재단이다. 사무실에 있을 때도 재단할 겉감과 안감을 떠올리며 집 가서 이만큼 해야지 한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빨리 회복해서 재단을 해야 할텐데 하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라벨을 고안하고 주문하는 등 이것저것 보완할 것이 나오는 바람에, 상품 등록이 미뤄지고 상품 등록을 한다 해도 시장의 반응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데 자꾸 만들어서 쌓아 놔야 한다는 생각만 앞선다. 그럼에도 금토 1박2일로 예정된 교회학교 선생님 수련회를 빠질 수가 없었다. 

수련회가 아니었으면 주말에 거실 창문 쪽에 있는 장식장 위의 화분을 치우려고 했다. 재봉틀을 놓을 자리가 마땅히 없던 차에 청파리가 나왔던 일도 있고 하여 이참에 화분을 싹 없애버리기로 한 것이다. 



남편에게 화분을 다 버리고 그 자리에 재봉틀을 놓을 거라고 했더니 그러지 말고 '아나바다'할 때 무료나눔을 하면 어떠냐고 했다.

남편은 "화분에 다시 물을 줘서 팔팔하게 해놔, 이번 주 아나바다 할 때 갖다 줄게."



금요일에 집을 나서면서 "내일 10시부터 303동 앞에서 하니까 화분을 갖다놓고 종이에 '무료나눔'이라고 써 붙여요. 종일 그 자리에 있지 않아도 돼요. 중간중간에 가서 화분 정돈해 주고 아나바다가 끝날 무렵에 남아 있는 화분만 갖고 와서 버려 주세요. 버리는 게 귀찮으면 집에 갖다 놔요. 내가 수련회 갔다와서 버릴게요." 

종알종알 일러 주었다. 



수련회 장소는 단양이었다. 단양 숙소에 도착해서 선생님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단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선생님들이 준비한 간식으로 이미 배불리 먹었는데 숙소에 도착해서 엄청나게 차린 저녁을 정신없이 또 먹으며 수련회 운영위원회의 선생님들께 맛있는 것 실컷 먹이기 목표를 거뜬히 달성했다.


저녁과 간식을 먹은 후에 주일 설교를 생각하며 나눔을 했다. 

길었던 설교 말씀을 '하나님은 나의 번영, 나의 악한 형통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도울 자가 없는 나의 심한 고난도 보신다'라고 요약하고 각자의 번영과 심한 고난을 나누었다. 심한 고난을 나눌 때 우리는 서로를 깊이 이해하며 더욱 끈끈한 공동체가 되었다.  


다음날에는 유람선을 타고 단양5경을 구경했다. 단풍이 채 들지도 않은 모습이었지만 몇몇 장소에 얽힌 선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진도 찍고 수다도 맘껏 떨고 유람선 아래 강물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마음이 텅텅 비워지는 경험도 했다. 


단양5경 구경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자유여행 시간이 주어졌지만 우리 차에 탑승한 이들은 나를 포함하여 모두 빨리 집에 가고 싶어했다. 토요일 오후에 각자 해야 할 일들이 있었던 것이다.


집에 도착하니 어둑어둑했다. 과연 저 남편이 화분을 처리했을 것인가? 반신반의했지만 일단 믿어보기로 했던터라 약간 기대가 되었다.  

집 앞에서 아들을 만났다. "웅아, 거실에 화분 어떻게 됐어?" 

"모르겠는데? 그대로 있는것 같기도 하고, 뭔가 달라진 것 같기도 해."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 장식장을 쳐다보았다. 두둥! 그렇게 많은 화분은 아니지만 옹기종기 놓여 있던 화분이 다 어디로 갔나?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분위기 파악 못한 식물들이 보란듯이 나를 반기고 있었으니까. 거실 장식장이 어수선하긴 했다. 화분의 위치가 이리저리 뒤섞이고 어질러져 있었다. 게다가 어떤 화분은 커다란 쇼핑백 안에 얌전히 들어앉아 있었다. 

'엥? 뭐지?'

남편은 화분을 쇼핑백에 담다 말고 아나바다 장터에 답사를 나갔다고 했다. 가니까 사람들이 자리를 다 차지해 버려서 화분을 놓을 장소가 마땅치 않아 어쩔 수 없이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안 한게 아니라 못했다고 강조했다. 



이튿날 언니를 만났다. 언니에게 화분이야기를 했다.

"언니, 웅이 아빠가 미션을 성공했을지 어떨지 한 번 알아 맞혀 봐."

"당연히 안 치웠지."

"우찌 알았노?"

"컴퓨터 책상 앞에서 먹은 자기 밥그릇도 못 치우는 양반한테 그렇게 어려운 미션을 맡기면 되나?"



어쨌든 언니와 나의 일상은 눈에 띄게 변해 가는 중이다. 

언니는 오후 3시부터 하던 요양보호사를 그만두었다. 소품 때문이 아니라고 했지만 소품 만드는 일이 아니었다면 그리 쉽게 그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퇴근하고 집에 와서 1시간은 소품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작업이라고 해야 원단에 본을 그린 후 재단을 하는 것이지만 그 단순한 일에 하루가 다르게 속도가 붙고 있다. 비결은 무선 재단기이다. 처음에는 원단을 길이로 길게 자를 때, 남편이나 아들더러 끝을 잡으라고 하고 원단 가게에서 처럼 가위를 칼처럼 밀어서 단숨에 잘랐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천에서 분사되는 먼지가 눈에 뿌옇게 보일 정도로 많이 일었다. 

식구들 더러 마스크를 끼라고 하니 다들 싫다고 했다.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전기로 재단하는 기계가 있는지 검색을 했다. 크게 유선재단기와 무선재단기가 있었는데 가격이 두 배 이상이었지만 갈등없이 무선 재단기를 주문했다. 정신없이 허둥대다가 무시무시한 칼날로 원단과 함께 전기 선을 잘라 버릴 까 봐 유선은 바로 패스했다. 도대체 이렇게 신박한 걸 누가 만들었을까 싶게 쓰임새가 좋았다. 낫으로 벼를 베다가 트렉터를 가지고 밀어버리는 것 같았다. 무선재단기의 열일 덕분에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하는 데도 일의 효율이 급상승했다. 



그렇게 한시간을 꼬박 재단을 하고 12시가 넘어서 잠을 청한다. 다른 때 같으며 그 시간에 영화를 보거나 마늘을 까거나 멸치를 다듬는데 그런 것을 안 한지 꽤 되었다. 



가장 아쉬운 것은 언니와 자주 가던 찜질방을 못가게 된 것이다. 언니나 나나 일을 할 수 있는 날이 토요일 밖에 없기 때문에 찜질방 가는 것은 기약도 없이 보류 중이다. 그래도 일이 너무 재미있다. 본을 그리고 재단을 해서 착착 접어 마무리를 하고 나면 마치 글 한 꼭지를 다 쓴 것과 같은 성취감과 뿌듯함이 몰려온다. 



용감한 꼬마재봉사 얘기가 생각난다. 꼬마 재봉사 이야기를 다시 읽어 보니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지만 험난한 현실을 돌파하는 배짱과 용기와 지혜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가 너는 어떤 재봉사가 되고 싶니?" 하고 물으면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며 재미있게 일하는 재봉사가 되고 싶다."고 대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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