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여있는 슬픔이 내게 오다.
중학교 동창인 친구를 만났다. 브런치를 하고 우렁쌈밥 점심도 먹고 야외에 나가 차도 마셨다.
우리는 먼저 서로의 근황을 나누었다. 친구는 오랫동안 수필 공부도 하고 수필을 써서 책도 낸 적이 있는 터라 자연스럽게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퇴근길에 내 글을 읽는다고 했다.(황송) 친구에게 요즘에는 왜 글 안 쓰냐고 물으니 그렇지 않아도 글을 좀 써 보려고 문화센터에 등록까지 했는데 현재 하고 있는 사업 때문에 글을 쓸 여유가 없어서 취소 했다고 한다.
나는 내가 이직한 이야기와 글쓰기 취미를 갖고 난 후의 변화에 대해 말했다. 글쓰기를 하며 내 안에 부정적인 감정들이 박멸되고 있는 것 같다고 하니 친구가 웃었다. 아이들 이야기, 남편이야기, 시월드이야기 등 50대 아줌마가 할 수 있는 이야기들로 쉴 새 없이 수다를 떨었다.
친구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부드러우면서도 당차고 상대를 배려하면서도 지혜로웠다. 되는 대로 살아온 나에 비해 인생의 고비마다 좋은 선택으로 가족과 사업,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티가 났다. 중학교 시절엔 여리여리한 공주과라면 지금은 부드러운 리더십을 지닌 당찬 CEO라고나 할까.
우리의 화제 거리는 자연스럽게 그 시절에 친했던 친구들의 이야기로 옮겨갔다.
중3때 내 짝이었고 베프였던 친구가 고생한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 슬펐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40년도 더 된 나의 중학교 시절이 저 멀리서 어른거리며 다가왔다. 뜬금없이 내가 겪어야 했던 힘든 일들이 떠올라서 눈물이 났다.
중학교 시절이든 고등학교시절이든, 지나간 과거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살았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그 때를 떠올릴 여유가 없었다. 사실은 그 시절 또한 결코 아름다웠노라고 말할 수 없는 힘든 시간이어서 부러 회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친구와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니 잔잔한 연못에 돌멩이가 던져진 것처럼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물결이 일어났다. 물결로 인해 들쑤셔지고 휘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존재 저 깊은 곳에 고여 있던 슬픔이 모습을 드러내려 했다.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어 속으로만 고통을 쌓던 시절이었다. 나보다 더 힘든 엄마를 향해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되냐고 물을 수가 없었다.
회피하고 도망가기만 했던 그 때의 나를 이제라도 만나봐야 할 것 같다. 만나서 다정하게 말해 줘야지.니 탓이 아니야, 누구의 탓도 아니란다. 이젠 너랑 잘 지내고 싶구나.
중학교 친구와의 만남이 친구 뿐만 아니라 당시의 나를 만나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