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케터가 되고 싶었다. 새로운 프로젝트나 아이템을 기획하고 사람들을 설득시키는 것은 내가 잘 할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세일즈의 최전선에서 뛰며 매출에 영향을 끼치는 모습에 매료되었다. 실제 마케터의 업무가 그것과 다르다 할지라도, 어렸을 때의 나는 이런 요인에 이끌려 경영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 점수 맞춰서 입학한 학과가 아닌 나의 진로와 적성에 기반하여 선택한 전공이기에 애착도 높았다. 그러나 전공 공부를 시작한 지 3년 차에 접어들고, 무언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곤 했다. 경영학과에서는 학문들이 대체로 탁상공론의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케팅은 공부하면 할수록 무엇을 배우는지 모르겠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경영학과 학생들이 공감하는 부분이다. 적어도 학부과정에서는 그렇다. 이는 마케팅 과목에서 배우는 내용들이 Case Study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어느 기업이 어떤 방식을 해서 이렇게 성공했더라~ 실패했더라~라는 내용이 주류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내용들은 도서관에서 마케팅 서적 몇 개만 읽으면 다 알 수 있는 내용들이다. 심지어 도서관에 있는 서적들이 더욱 최신 내용을 다루고 있기도 하다. 그나마 있는 4P 나 STP 등 몇 가지 마케팅 이론들 마저 중학생이 한 번 읽으면 이해할 만한 수준이다. 전혀 차별화가 되지 않는다.
학생들이 원하는 수준은 실전에서 요구되는 지식이다. 실제로 많은 Case Study들을 살펴보면 철저하게 고객
및 시장분석을 토대로 이루어진다. 경영자의 직관을 믿고 맨 땅에 헤딩하는 시대는 지났다. 수집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본인의 고객들이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파악을 한다. 그리고 그들의 니즈(needs)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효과적으로 마케팅하는 것이다. 마케팅할 때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선전 효과를 내는 것이 목표이다. 그래서 광고를 제작 시 모델은 누가 적당하며, 어느 플랫폼에서 몇 시에 얼마나 광고를 할 것이며, 본인들의 제품을 어느 매대에 배치해야 하며 등등의 수많은 고려사항들이 있다. 학교에서는 이런 실전보다는 수박 겉핥기 식 방법론에 치중하는 바이다.
지난 몇 년간 '빅데이터'라는 단어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을 것이다. 학문적인 용어로는 데이터 사이언스(Data Science)가 좀 더 정확하며 머신러닝(Mmachine Learning),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 등 세부적인 방법론들이 있다. 지난 수년간 기술이 발전하면서 데이터 사이언스에 적절한 환경이 만들어졌다. 우선 데이터의 수집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대표적으로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를 통해 사용자들의 Opinion 데이터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스마트폰, 웨어러블 디바이스, CCTV 등을 통해 풍부하고 다양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전에 비해 컴퓨팅 기술과 저장장치의 발전으로 인해 분석 및 처리가 가능해졌다.
사람들의 언어 사용 행태를 분석하여 보건당 국보다 구글이 먼저 독감의 시기와 위치를 알아냈다는 것도 이미 옛말이다. 작년 알파고로 AI 홍역을 치른 것이 엊그제 같은데, IBM에서는 왓슨(Watson)이라는 인공지능 의사를 개발했고 실제로 현장에 배치시키고 있다. 원리는 의사들이 진단을 내릴 때에는 증상을 보고 특졍 질병을 확진하는 것에 기반한다. 즉 이 또한 데이터를 토대로 한다는 뜻이다. 왓슨이 일반 의사보다 훨씬 많은 의료지식(데이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정확도는 대단할 것이다. 실제로 왓슨과 실제 의사의 진단이 다를 경우 누구의 진단을 따를 것이냐는 조사에서, 인공지능의 진단을 따르겠다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이제는 데이터 분석을 통해서 마케팅만 아니라 경영 지원, 정책 개발, 범죄 분석, 의료 서비스, 교통 등 정말 많은 것을 개선할 수 있다.
솔직한 고백을 하자면, 나도 유행하는 학문에 입문한 것이다. 프로그래밍이 유망하다고 하고, 취업에 유리하다고 하여 이 분야에 관심 가지게 된 것을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나는 좀 진지하게 임하고 싶다. 한 번 해보는 정도가 아니라 이 진로로 한 번 묵직하게 가볼 생각이다.
자 일단 이렇게 되면 생각해봐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다. 분명 코딩 능력의 차이는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MIS 관련 석박사 학위가 있거나, 공대에서 4년간 프로그래밍만 공부하던 사람과의 개발 실력 차이는 무시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그들이 가지지 않은 나만의 차별점을 생각해보자. 일단 그들보다 경영 지향적인 아이디어를 내거나 기획, 그리고 발표를 잘 할 자신이 있다. 이를 이용하여 개발자와 경영자 사이의 브릿지가 될 생각이다. 기술과 프로젝트와의 갭을 인식하고 그것을 줄여나가는 방식으로 말이다. 기술을 이해하고 무언가를 기획하는 것과 그냥 자본력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분명 다를 것이다. 전자가 훨씬 효율적일 것이며 그 역할을 수행할 사람이 요구되리라 믿는다.
이제 나는 데이터 사이언스의 첫 술을 떴다. 아직은 정말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하고, 학교에서 몇 가지 배운 내용으로 떠들기도 부끄러운 수준이다. 공부할 것도 많고 공부하고 싶은 내용도 정말 많다. 일단은 정형-비정형 데이터, 지도-비지도 학습, 산업체별로 다 접해볼 생각이다. 그리고 당장은 다른 프로그래밍 툴도 익혀야 할 것이다. 현재는 R을 이용한 데이터 분석만 공부하고 있다. R은 무료이며 비교적 배우기 쉬운 관계로 대학가에서 우선적으로 도입하여 가르치고 있다. 덕분에 이번 학기에 전공강좌에서 R을 이용한 데이터 분석 과목을 배울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R은 데이터를 RAM에 올려두고 작업을 하기 때문에, 정작 큰 사이즈의 데이터를 분석할 때는 효율적이지 못하다. 따라서 파이썬(Python)도 병행하여 공부할 계획이다. 구글에서 개발한 딥러닝, 기계학습을 지원하는 라이브러리 텐서플로우(Tensor Flow)도 사용 가능하며, R보다 확장성이 뛰어나다고 한다. 빠른 시일 내에 파이썬에 뛰어들어야겠다.
고민이 많다. 심히 전문적인 분야이기 때문에 대학원을 진학해야 할지 고민도 된다. 24시간을 엉덩이 붙이고 공부하여 익히는 것보다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그래서 내가 지금 공부하는 것도 순식간에 철 지난 기술이 될 가능성도 있다. 이제 막 시작했는데, 걱정이 왜 이렇게 많나. 다행히 나는 아직 어리고 시간이 많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담임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딱 2년만 죽어라 한 번 해보라고. 30대까지 6년을 하다 보면 뭔가가 되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