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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하 Nov 07. 2020

다큐 <증발> : 실종아동과 가정의 삶, 우리의 역할

들어가며


11월 6일. 시사회 초청으로 영화 <증발>을 관람했다. 다큐멘터리 영화였고, 2000년도 즈음에 실종된 자신의 아이를 찾아 나서는 아버지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픽션이 아니라 다큐멘터리 영화이고, 그런 점에서 극적인 부분보다는 실제 실종된 아이를 둘러싼 가족의 삶의 현실성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추적함에 따라 처음에는 사라진 아이를 찾아내야만 한다는 그 목표의식에 동화가 되지만, 그 결말은 정해져 있고, 또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러면서 이 다큐멘터리의 핵심은 범죄 추적극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으로부터 시작된 가족들의 이야기라는 것도 알게 된다. 20년 전부터 시작된 이야기이다. 그 안에서 단순한 부성애의 집념만이 드러난 것도 아니고, 또 포기냐 끈기냐의 양자택일의 문제로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 긴 시간 동안 무엇이 서서히 사라졌고 또 무엇이 남아 있으며, 그렇게 남은 삶의 모습이 얼마나 애절하고도 권태로운지, 슬프고도 또 살아내야만 하는 과제가 마음 아픈 지가 잔잔하게 드러난다. 


아이의 실종을 중심으로 다루어진 내용이라 이 다큐멘터리의 제목인 <증발>은 아이의 증발을 의미하는 것 같다가도, 20년 동안 아이의 존재 이상으로 증발되어 버린 삶에 대해서도 함께 다루고 있다. 내가 그 삶을 함부로 판단할 수 있는지가 의심스럽다. 그러나 동떨어진 곳에서 지레 짐작하는 것보다는, 한 발짝 더 다가가서 그 삶을 이해해보고자 노력했다. 스무해가 지난 그들의 삶은 여전히 삶이고, 일상이 되어버렸다. 적응하며 버티며 살지만, 그 삶의 모양은 일상적인 것과는 다르다. 살아내야 한다는 흔적과, 동시에 지난 상실에 대한 아픔들의 흔적이 드러난다. 그 안에서 어떤 다른 대안이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 해도 쉬운 여정은 아니었다. 그 남겨진 가정의 이야기다. 이를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은 의미 있는 관람의 시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실종아동과 그 가족의 이해를 통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구체적인 것들을 생각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관람을 권하고 싶다. 2020년 11월 12일 개봉 예정이다. 이하로는 영화에 대한 나의 감상을 다룬다. 다큐멘터리 영화이며, 실제 사건을 다룬 이야기이지만, 감상 전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



아이를 가져보았다는 것


"이 험한 세상에 어떻게 아이를 내놓겠어요. 그래서 저는 아이를 안 낳을래요."라는 형식으로 아이를 낳기를 거부하는 경우를 많이 본 적이 있다. 나는 이 말이 그 자체로 거짓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실제로 아이를 가져보고 또 잃어버린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면 이 말을 쉽게 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정말로 험한 세상에 아이를 내놓는 것의 위험성과, 상실의 슬픔들은 정말로 아이를 가져보아야만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는 그저 그들의 삶을 타자로서 바라보며, 그저 아이를 가진다는 것을 감정적 경제적 효용의 측면에서 계산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좋아하는 한 선생님이 한 말이 있다. "아이를 가지지 않은 철학자는 특별할 수는 있지만 보편적일 수 없고, 아이를 가져본 철학자는 보편적일 수 있지만 특별할 수 없다"고. 이러한 논거를 통해서 우리가 아이를 가져야 하는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은 당연히 멍청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저 말을 통해서 적어도 내가 이해할 수 있었던 함의는, 아이에 대한 감정과 그 삶이라는 것은 그 삶에 기여해보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언제나 좋은 것일 수도 없다. 누군가를 지극하게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야 할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무한한 의지를 추구하기도 했으리라. 그러나, 그만큼 겪어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겪고 또 사랑하며 사는 누군가는 특별해지는 대신에 무엇을 하나라도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어떤 점에서 우리 삶의 역설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사랑해보아야만 상실을 바로 이해할 수 있고, 사랑하기 전까지는 상실을 모른다. 그래서 그 삶 안에 직접 몸을 담가 보아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 뒤에도 어떤 이들은 '차라리 아이를 가지지 않았으면 좋았겠다'고 상실의 마음 앞에서 그리 토로할 수도 있지만, 그 사실을 진정한 후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되레 사랑했기 때문에 그 상실 앞에서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흔적을 함께 내포하고 있으며, 부모도 한 명의 사람으로서 나약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조심스러워야만 하겠다고, 다큐를 감상하며 그리 생각했다.


아이를 잃었다는 것


그리하여 다큐멘터리는 아이를 잃은 한 가정의 이야기를 다룬다. 용진 씨는 20년째 [헤어질 당시] 여섯 살 난 준원이를 찾아다니고 있다. 아이를 가져보았다는 것을 내가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듯, 아이를 잃어 본 것도 나는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을 쉬이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내가 인정할 수 있는 이유는 단지 내가 미혼이라는 것에만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이를 잃고 또 찾아가는 여정이 단순히 어떤 이상화된 '부성애'라는 것에 의존할 것이라 쉬이 연결 지어버렸던 나의 오판 위에 근거한다.


아이를 찾다 지쳐버린 엄마와, 여전히 묵묵하고 고집스레 아이를 찾아가는 아빠의 모습들 위에서 어떤 부성애와 모성애의 존재 유무를 쉽게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이유는 그들의 20년이 지나치게 길었다는 사실, 더 나아가 잔인하게 길고도 길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안에서 발생할 수 있을 너무나 많은 일들이 그들을 어떻게 상처주었고 지치게 만들었는가에 관한 진실에 대해서 우리는 전혀 무지하기 때문이다. 그 안에 있었던 수많은 장난전화와, 아이를 음해하고 바다에 던져버렸다는 협박전화와, 금전을 요구하는 많은 메시지들. 그 안에서 마음이 아니라 먼저 몸이 버티지 못하고, 버티지 못한 몸에 마음도 함께 쓰러져 버린다.


그것을 차마 눈뜨고 바라보지 못하는 관객의 마음은, 되레 아이를 납치해간 범인의 존재에게 책임을 돌리려 애쓰고, 또 아이의 행적을 추적하는 아버지의 시선을 따라서 이 일이 해결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 모든 것들은 진심이 아닐 수 없지만, 그 안에서 그들의 스무해를 고스란히 지켜보는 것이 마음 아파 그에 눈을 돌리고 있다는 것 역시도 사실이다. 그러나 관객은 그 모습으로부터 도피할 수 없다. 영화는 아이의 행적을 추적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다루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둘러싼 가족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이다. 


그 가정의 모습은 내가 자란 그 가정의 모습이 아니다. 그것은 심지어 너무나 권태롭고 슬프고 지리멸렬하면서도, 그 안에서 제 삶을 유지해야만 하다 무너지기도 하고, 또 가까스로 살아내려 하는 모습들이 지나치게 '일상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아버지는 여전히 제 딸을 찾고 있지만, 처음의 간절함보다는 신중함과 노련함으로 사건을 대한다. 수사관들은 딸아이로 추정되는 아이의 사진을 가져오지만, 아버지는 더 이상 흥분하지 않는다. 그 사실은 당신의 마음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 삶 안에서 이미 너무나 많은 기대와 좌절들이 있었다는 것을 드러낼 뿐이다. 그 안에서도 분명히 찾고자 노력하고 또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들은 아이를 찾는 삶이 단순한 감정과 그리움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스무해가 가며 삶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렇게 삶이 되어감으로써 수많은 희생들이 있었다. 어머니는 그 여정을 버티지 못했고, 한창 사랑을 받고 자랐어야 할 맏딸은 마음의 병을 얻었다. 관객은 그 안에서 공과 실을 따져보려 애를 쓰지만,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그 사건의 강도와 그 여정의 시간들은 그 어디에도 책임을 물리지 못한다. 그저 하나의 재앙이 찾아왔고, 그 상실로부터의 고통은 무차별적으로 가족들에게 분배되어 버린 것이다. 그 안에서 드러나는 슬프다 못해 기이한 가정의 모습은 그렇게 세월을 버텨낸 것으로서 나타난다.


기이하게 자라난 나무의 모습의 이해


해가 들지 않는 곳에서, 흙보다 돌이 많은 지반 위에서 자라난 나무의 모습이라는 것은, 빛을 찾아 나서면서도, 동시에 돌들 사이로 제 뿌리를 뻗어내야만 했으므로 그 모습은 여느 나무들과는 달랐다. 그 기이함은 그 상황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면서도, 그러나 그 삶을 버텨내고 살아내버린 흔적들을 동시에 증명한다. 


그러나 그 스무해의 삶이라는 것을 버텨냈다는 이유만으로 그저 자부하기에는, 너무나 고된 삶이었다. 곳곳에서는 문제들이 터져 나온다. 사라진 아이가 돌아온다고 해도 그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왜냐하면 사라진 아이를 찾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었고, 가정에 찾아온 문제들도 아이가 사라진 직후에 곧바로 찾아온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이는 오직 그 아이를 위해 찾아야만 했으며, 문제들은 그 여정 안에서 시차를 두고 곳곳에서 찾아왔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의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아프다고 말한다. 아이의 아버지는 이제 그것을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 안에서 맏딸은 이제야 열어야 할 제 삶이 있고, 막내딸은 아직 충분한 사랑과 관심을 받고 커야만 한다. 그 안에서도 아버지의 생신에 두 딸은 옷을 선물하고, 또 따로 지내는 엄마의 병세를 걱정하기도 한다. 그 안에서도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결핍들. 아쉬움과 속상함. 그러나 그것을 쉬이 요구할 수도 없었고, 그러나 당신들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했다는 것을 마음 깊숙한 곳에서 알고 있다. 주고받은 것 안에서 가끔은 이기적이고 또 가끔은 이타적이다. 사랑하기 때문이며, 결국 내 존재와 사건들은 모두 그 가정으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가정이 있었기에 태어날 수 있었고 또한 그렇게 터 잡은 곳으로부터 상처받는다.


그래서 나무는 살기 위해 이리저리 비틀고 비틀며 빛을 찾아 나아간다. 그 안에서 필요한 그들의 이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어쩌면 모두가 애쓰고 있었다는 것. 그러나 종종 충분하지 못했다는 것. 그러나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 그 안에서 원망이 있고 서운함이 있고 다툼이 있고, 그래서 뒤늦은 이해가 있고 또 용서가 있고, 여전한 삶이 있다. 다큐멘터리 <증발>은 동시에 그러한 것들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여전히 해결된 것은 없고 사건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 안에서 다시 또 관객이 바라는 것은 남은 가족들의 행복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을 쉬이 바라기에는 내 가정의 지리멸렬함을 알고 있고, 또 그런 단순한 내 가족의 지리멸렬함만으로는 절대로 그들을 쉬이 이해할 수도 없으리라는 숙연함이 뒤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다큐멘터리에 참여하기로 했다는 사실로부터 어떤 희망을 발견한다. GV를 하면서 감독은 아버지 이외에 다른 가족들의 출연 허가를 위해서도 내내 노력했다고 말한다. 그 안에서 서로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서, 감춰두었던 생각들을 들을 수 있었다고 말하고 결국 어머니도, 맏딸도 출연하고자 결심했다고 말해주었다. 그러한 과정에 대한 증언을 통해서 안심하게 되는 것 역시도 내가 타자이기에 할 수밖에 없는 이기심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은 섣불리 이해하는 것도 아니고, 쉬이 그들의 행복을 바라버라는 것도 아닐 것이다. 시사회 현장에서는 실종아동에 대한 사진과 신상들을 나누어 주었다. 나는 이 영화의 서포터즈로서 참여한 것이 아니라 그를 받지 못했지만, 적어도 무심코 지나치는 포스터와 사진들을 유심히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는 여전히 아이를 추적하고 있고, 또 수많은 부모들이 그리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내 삶 안에서도 그것들을 문득문득, 아주 가끔일지라도 그를 유심히 보고 또 기억해보는 일. 그것이 그들을 도울 수 있는 하나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외의 복잡한 생각들, 무심코 바라버리는 그들의 행복과 희망과 같은 것들은, 구체적인 실천 이후에, 내 마음 안에서 이는 작은 기도로 남을 수 있기를 그리 바랐다.




실종아동전문기관 : 

https://www.missingchild.or.kr/Default.c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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