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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하 Mar 13. 2019

잠자는 숲 속의 공주

오랜 시간 나는 잠들어 있었고, 그 꿈 안에서 내 삶을 되풀이했다. 아버지가 나를 쓰다듬으며 하던 말. 당신은 내가 악몽을 꾸었다고 울며 안길 때, 나를 대신해서 깨워주겠다고 말했었다. 그때 그 따뜻하고 안전했던 세계. 긴 잠에 빠져 있었던 나는 악몽을 꾸기는커녕 늘 진정한 사랑과 나를 깨워줄 왕자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들은 늘 늠름했고, 내가 잠들어 있는 이 성 앞에 으르렁거리는 괴수들을 단칼에 베어버렸다. 그들이 내게 입 맞추었을 때 나는 잠에서 깨어나 진정한 사랑을 쟁취하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게 되리라.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내 기억과 환상은 되풀이되었고, 이내 나는 따분해졌다. 나는 꿈속에서 다시 잠에 들었고, 다시 그 잠든 꿈에서 내가 겪었던 꿈을 되풀이했다. 결국 내가 깨달은 것은 잠 속에는 또 다른 잠이 있고 그 잠 안에는 또 다른 꿈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꿈 안에는 여전히 지루한 되풀이가 있을 뿐이었다.


머리가 수십 개 달린 용은 그럼에도 끝까지 꿈에 등장해 나를 지키고 있었으며, 나를 구하러 온 왕자의 손에 쓰러질 때 이상하리만치 더욱 구슬프게 울었다. 나는 점점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왜 나를 잠들어 있도록 하는 것일까. 왜 그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나를 깨우러 온 자들을 막으려고 하는 것일까. 왜 그들은 기꺼이 죽어버리고 사라져 버리는 것일까.


그리고 또 끝없는 되풀이의 시간이 있었다.


그러며 나는 점차 알게 되었다. 이 무의미한 꿈이 반복되는 이유는, 그 용들이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그 괴수들이 죽으며 나는 함께 죽었고 다른 꿈으로 빠져들어 그 이야기는 한 번도 완결된 적이 없다는 것을. 나의 미래는 왕자와 함께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용의 죽음과 함께 끝이 났다. 그리고 그 끝은 또 다른 꿈의 시작이었고, 나는 어느 순간 나를 깨워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구원을 되풀이하는 그런 꿈은, 더 이상 나를 깨워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악몽이 된다.


"네가 악몽을 꿀 때, 내가 꼭 깨워줄게. 그러니 울지 말아라."


나는 다시 아버지의 그러한 증언으로 도피했다. 아버지의 품에 안겨서 한참을 울었다. 그러면서 나는 아버지 당신에게 물었다 :


"그런데 아빠는 내가 악몽을 꾸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요?"


내 그 말에 당신은, "나는 모르는 것이 없어-" 그렇게 말했다. 그래, 가끔은 정말 당신은 내 침상으로 찾아와 식은땀을 흘리고 신음을 내는 나를 깨워 따뜻한 차를 내 왔다. 그때 그 안도감. 내가 잠들 때까지 누군가 곁에 있다는 그 느낌. 포근한 침상 안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도 아무런 문제가 없으리라는 확신.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잠에 드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는 것이었다. 아버지 당신이 사라지고, 나를 깨워줄 하인이 사라지고, 마침내 그 누구도 나를 구하러 오지 않는다면, 도대체 나를 깨워줄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목이 뎅겅 달아난 용의 머리가 내 머리 켠에 떨어졌다. 그가 나를 바라보고 있음을 느꼈다. 왜 너는 눈물을 흘리고 있느냐. 나는 그리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잠들어 있던 터이므로 입조차 벙긋할 수 없었다. 나는 한없는 무(無) 속으로 던져졌고, 알람시계와 아버지와 왕자와 마침내 나를 지키는 용조차 없는 그런 어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나는 오직 이 세계에 나로서 존재하고, 그런 나는 누군가 깨워주지 않는 이상 더 이상 일어날 수 없는 그런 존재로 존재했다.


그런데 아버지 당신은 어떻게 스스로 일어나서, 나를 깨워주었던 것일까.


당신은 어떻게 저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바쳤던 것일까. 잠들어 있는 나는 나를 지켜준 모든 것에 대한 대가였고, 그 결과로 나는 목숨을 부지한 채 이렇게 그저 잠들어 있을 뿐이었다.


잠들어 있기에 꿈을 꾸었던 나는, 드디어 내가 잠들어 있는 꿈을 꾸었다. 나는 비로소 잠들어 있는 나 자신이 되었다. 그 이후로도 컴컴한 암흑은 계속되었다. 꿈 없이 잠들어 있다는 것은, 그래서 그 누구도 나를 깨워줄 리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대단한 불안이었고 그러나 너무나도 긴 권태였다. 그것들이 나를 지키고 있던 용이었고, 나의 이 꿈은 그 어둠이라는 무無의 목이 뎅겅 달아나는 순간 사라진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잠들어 있었고, 또 앞으로도 잠들어 있을 것이었다.


나는 외부로의 자극을 절실하게 바랐다. 나는 나의 꿈속에서 비명을 질렀고, 그러나 나의 입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내 입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하지 않으면 그 무엇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여기서 숨을 쉬고 있다.


살아 있다.


미묘한 진동이 느껴졌다. 내 안에서 여전히 심장이 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이미 내 몸에서 어떤 것이 비집어 나오려 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 심장의 진동이 내 몸을 울리고 있었다. 나의 들숨과 날숨은 오고 가며 내 입술에 닿고 있었다. 그것이 입술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상기시킨다.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는 그 침이 입에 고여 나는 그를 삼키고 있었다. 그렇게 넘어가는 것이 내 안으로 다시 스며들고 있음을 느꼈다. 그로부터 뻗어 나온 허기라는 욕구, 잔뜩 내뱉고 싶어 하는 욕구. 나는 심장이 뛰는 것보다, 숨을 쉬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하고 싶었다. 내가 구원받고 싶어 하는 만큼, 나는 나를 구원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잠들어 있는 채로 이미 살기 위해서 너무나 많은 일들을 하고 있었고, 나의 피부는 늙어가 떨어지는 동시에 늘 재생을 반복하고 있었다.


눈꺼풀 안에서 눈이 여전히 돌아가고 있음을 이해했고, 그것이 눈을 뜨는 순간 세상의 밝기에 감탄하며 그 동공이 좁아질 것을 이해했다. 내가 눈을 뜨는 순간 내 몸은 다시 살아가기 위해 모든 짓을 다하며 나를 지키고 있었다. 잠든 나를 깨지 않도록 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던 검은 용, 그가 울고 있었던 이유는 나를 잠든 채 두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스스로 일어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나를 둘러싼 모든 정적은 오로지 내가 스스로 눈을 떠야 한다는 것을 계속해서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온몸의 털이 작은 진동에 스스로 울리고 있음을 알았고, 미세한 대기의 움직임에 그것들이 눕고 또 일어나고 있음을 감각했다.


"나중에는 내가 먼저 깨워줄게요 아빠"


나는 그렇게 말했던가. 함께 산책하기 위해 주말 아침에 나는 먼저 일어나 당신을 깨웠다. 그런 일들은 종종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또 환희의 방식으로도 일어나고 있었다. 나도 누군가를 일깨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려오기 시작했다. 눈물이 볼을 거치기도 전에 귀를 타고 흘러내렸다. 내 모든 세포가 스스로 일어나기 위해 나를 일으켜 세우고 있음을 알았고, 내가 스스로 일어나야 할 때가 되어 있음을 알렸다.


어디선가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다시 말에서 내려 용의 목을 베어버리더니 저벅저벅 다가왔다. 그는 내게 속삭였다 :


"눈을 떴을 때 그것이 여전히 꿈인지 현실인지를, 네가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나는 이제 그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그는 구원자가 아니라 마녀의 저주이며 저주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것을 막는 방법은 단순하다. 그러나 단순한 만큼 그것은 얼마나 어려운 과정이었던가. 그 단순한 일들을 아버지는 하고 있었고, 또 부모가 사라진 모든 사람들은 이미 스스로 해내고 있던 그 단순하지만 불안하고 두려운 여정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눈을 뜨는 것이다.


세상의 빛이 두꺼운 천막 같던 눈꺼풀 사이로 들이쳤다. 내 손으로 나를 만질 수 있었고, 내 손이 나를 느끼는 만큼 내가 나를 느꼈다. 내 팔과 다리, 근육으로 일어설 수 있다는 그 감각. 내가 더 빨리 뛰려 할수록 더 빠르게 많은 것들을 제쳐낼 수 있다는 예감.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수 있다는 능력. 그 모든 것들을 상상할수록 나는 이제 꿈이 아니라 그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을 알았다. 그에 맞춰 더 빠르게 달리는 심장은 그저 살아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살아내기 위한 것이었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것이 현실이 아니라고 믿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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