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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Sep 13. 2020

브런치 입성, 그 지질함에 대하여

할 건 해야겠다, 정신건강을 위해

브런치 첫 글은 역시나, 브런치 입성 후기여야 제맛이라고 (혼자) 생각한다.


당당하게 말해야겠다.

3수 같은 4 수생이다.

그 지질하고 짠한 이야기이다.



5월 중순으로 기억한다.

아기 재우고 잠 안 오는 밤, 인스타그램을 기웃거리다 '브런치 작가'를 보게 되었다.

작가. 단번에 와 닿았다.  

서 바로 앱을 다운로드하고 기웃거렸다.

이런 것도 있구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다음 날, 괜스레 마음이 간지러웠다. 작가, 작가, 자꾸만 되뇌어졌다.

한창 시를 쓰고 있을 때여서, 냉큼 작가 신청을 눌렀다.

자기소개 샤라락, 활동 목차 의식의 흐름대로, 알량한 시 몇 편을 올리고는.. 깔끔하게 떨어졌다.

역시, 내 길이 아니었어. 애들 다 크면 해 보지 뭐.

상처도 안 받았다. 그렇게 브런치는 까맣게 잊고 잘 지냈다.


어느샌가 지인들이 SNS로 브런치 작가 승인을 받았다고 알려왔다.

오 이 친구도 하네.

오랜만에 접속해 글을 읽어 보았다. 재미있었다. 읽고 읽고 읽고..

'나는 육아 끝나면 해야지..' 자꾸만 나를 속으로 욱여넣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문득

브런치를 해야겠다

생각이 든 것이다. 이유는 모르겠다. 갑자기였다.


아마도 그날 밤 우울했을 것이다. 아이들 키우고 하고 싶은 것들을 생각했을 것이다. 육아 끝나고 해야지 했던 것들이 가슴에 가득 차 올랐을 것이다. 한 순간 울적했을 것이다. 미루고 미루다간 아무것도 못하겠다 싶어 뭐라도 하자 싶었을 것이다. 그 '뭐라도'가 브런치였다.


그 밤 바로 실질적인 1차 신청을 했다.

블로그에서 나름 재미있다고 느껴진 글 3개 가져와 복사-붙이기, 자기소개는 진솔하게, 활동 목록은 자기소개에 맞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 그로부터 3일 후,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작가로 모시지 못하게 되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왜? 좋은 활동 할 수 있는 데 왜? 누구 맘대로?

그렇다면 온도차를 줘봐야지. 그날 밤 2차 시도. 아무리 거부해도 나의 정체성 중 큰 부분은 '군인가족'이었다. 나 스스로는 절대적 비혼 주의자이면서, 절대적 보수 관념을 지닌 군인과 모순인 듯 아닌 듯 살아가는 콘셉트이었다. 군인가족-비혼 주의자 콘셉트에 샘플 글은 육아 이야기. (지금 봐도 생뚱맞기가 극성이다.) 또 이틀 후에 낙방 소식. 음흠.

타이틀 변경 재시도. 이 정도면 붙을 때까지! 오기로 하는 거다.

내 인생을 관통해 온 글쓰기와 군인가족. 군인가족 하나로만 하기에, 브런치에 군인가족 작가들이 많았다. 차별화를 둘 주제를 글쓰기로 하나 더 삼았다. 샘플은 예전에 써둔 글들이다. 좀 더 진중한 느낌으로 신청했다.

월요일 밤 신청,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브런치가 일을 안 한다...


금요일 아침, 막내가 유난히 자주 깨어 울어재낀 밤을 보낸 탓에 머리가 아팠다. 첫째 둘째 어린이집 등원 길 폰이 울린다. 아침부터 뭐야.


뭐지

잘못 봤나


그렇게, 지질하면서도 짠하게 브런치에 입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 동안 열심히 나의 푸념을 듣고 응원해 준 동생이 저녁에 사진을 하나 보내왔다.


동생 느님의 브런치 입성 선물

브런치 입성보다 어째 이게 더 기뻤다.

내가 그려왔던 내 브랜딩 이미지와 잘 어울린 느낌.

그래서 냉큼, 브런치 작가 소개 이미지로 사용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나'이다.



여전히 글을 쓸 시간은 없다.

아이 셋과 치열하게 시간을 보내고, 사이사이마다 시엄니의 맞장구를 쳐야 하고, 내 시간이라 하면 잠을 줄인 시간뿐이다. 열심히 할 자신은 없지만, 시간을 두고 아주 열렬히 진정되게 채워나갈 자신은 있다.


아직은 텅텅 빈 브런치를 보며, 채워나가다 보면 언젠가 해 뜰 날도 오지 않을까 싶다.
2020년 9월 11일 그 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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