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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Sep 16. 2020

온 우주의 기운이 모이고 있다

글쓰기에 대한, 지난 일주일의 기록

너무나도 진부한 표현이지만, 지난 일주일은 나에게 '꿈만 같은' 일주일이었다. 

나의 글쓰기 인생에서 말이다. 



월요일 저녁, 퇴근 직전에 보낸 것처럼 브런치 세 번째 탈락 메일을 보았다. 5시 50분.(애들 저녁 차려주다 맛본 씁쓸함. 시간도 잊지 못한다. 퇴근 전에 나에게 탈락을 주고 퇴근하셨네..) 정신없는 저녁과 밤을 보내고, 다들 잠든 시간 11시 나만의 서재 안방 화장실로 숨어들었다. 폰으로 3차 브런치 신청을 하면서, 자다 깨는 막내 밤 수유를 하면서, 꿈꿨는지 울먹이는 둘째 재우면서 잠들려고 보니 4시였다.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맞은 화요일 아침, 어찌 됐든 좋았다. 노트북을 사러 가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 전 글은-오도독이었든, 블로그였든, 브런치 신청이든 뭐든- 다 폰으로 작성했다. 노트북을 너무나도 두드리고 싶어서, 군인가족생활수기 핑계로 남편에게 노트북을 사달라고 했다. 가전매장으로 나서는 그 기분, 그 구름 낀 하늘이 파랗게 보인 기분은 잊지 못한다. 노트북 구입은 역시나 수월했고, 종일 밤을 기다렸으나 정작 그날 밤은 아이들 재우다 같이 잠이 들었다. 한글 파일을 깔아주는 남편 옆에서 내내 싱글벙글했으면서.


수요일 밤, 목요일 밤은 군인가족생활수기를 작성했다. 노트북의 명분이 그거였으니 당당하게, 즐겁게, 신나게, 기억을 더듬더듬하며 그렇게 글이 가득한 밤을 보냈다. 글이 가득한 밤을 보낼수록 눈은 벌게지고 잠은 부족하여 낮동안은 사람의 몰골이 아니게 되었으나, 그런 나를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게 해 준 메시지가 금요일 아침 온 것이다. 

브런치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세상에


노트북만으로도 행복한데, 브런치 작가라니. 글을 쓸 수 있게 된 나의 상황을 브런치 팀이 알게 된 건가. 본격적으로 제대로 써보라는 자연의 섭리인가. 역시 신은 존재하는가.(이런 때에만 신의 존재를 인식'하고자 하는' 무신론자이다)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지. 글을 쓰라는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운명이란 거추장스러운 단어를 굳이 쓰고 싶어 지는 거다.) 

이런 운명은, 친한 아파트 동생의 카톡에도 전해졌다. 인스타그램에 브런치 작가 승인을 깨알같이 자랑했더니(감출 수 없는 관종력의 소유자이다.), 언니 화장실 바닥에서 허리 아프게 글 쓰지 말고 변기에 당당하게 앉아 글 쓰라고 간이 테이블을 주문해 주었다. 사람의 모습을 한 천사들이 곳곳에서 인생의 행복을 툭툭 던져준다. 금요일은 그 천사들을 꽤 많이 만난 날이었다. 

아는 동생이 선물해 준 화장실 서재용 테이블. 의자는 변기다. 

정작 그 당일은 어째 어째 브런치에 손도 못 댔다. 물론 첫 글에 대한 나름의 고민과 앞으로 에 대한 계획으로 떨리기만 했을 테다. 무엇보다 아이들과 잠들었을 테다.(나만의 시간은 유일하게 가족이 잠이 든 이후인데, 그때까지 잠들지 않고 버티기란 지금의 내 삶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수행이 따로 없다.

대망의 토요일 밤, 남편은 당직이라 집에 없고 아이들만 일찍 재우면 되는 밤. 9시 반에 눕힌 아이들은, 첫째가 11시 50분에 잠이 드는 것을 끝으로 엄마의 시간을 허락해 주었다.(한 시간 반 동안 노트북으로 브런치 할 생각에 들뜬 마음과 빨리 잠들지 않는 아이에게 버럭 하는 마음이 막 섞여 약간은 미친 것 같은 엄마였었다.) 드디어 브런치에 첫 글을 썼다. 생기 넘치고 패기 발랄 글 아니고 지지리도 궁상맞은,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진심이었던 글.

brunch.co.kr/@1kmhkmh1/14



그렇게 인터넷을 유랑하다 부담 없는 에세이 공모전을 발견하곤 그 자리에서 응모도 했다. A4 한 장 분량이 아니었다면, 글감이 바로 떠오르는 주제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당선되고 안 되고는 문제가 안 된다. 그저 글을 쓸 수 있고 누군가에게 정식으로 보이고 평가받는 일련의 행위 그 자체로 행복하다. 

가슴 뛰는 토요일 밤을 보낸 대가로 몸과 눈꺼풀이 무거운 일요일을 보내고, 일요일 밤은 다시 혈기왕성한 브런치 신입작가가 되었다. 월요일 밤 역시 두시반까지 글도 쓰고, 여러 글들도 읽어대고 라이킷도 누르고 내 스타일의 작가님들을 찾아 브런치를 산책했다. 밤의 시간은 오히려 브런치가 더욱 맛있어지는 시간임을 알게 되었다. 새벽에 올리는 글들을 어찌 찾아내시는지 낮보다 라이킷 알람이 더 자주 울려댔다, 사람 설레서 잠 못 자게. 


그리고 화요일 밤, 지난 일주일을 잠과 맞바꾼 행복에 취해 있었는데 내 몸이 보낸 신호를 무시하다 어제는 결국 잠이 덮쳤다. 눈은 건조증 때문에 깜빡거릴 때마다 아프고 충혈되고 수면 부족으로 인한 두통으로 낮동안은 내내 헤롱거렸다. '아이들 재우고 노트북 해야지' 하고 일찍 잠자리 들고는, 밤 수유 빼고는 정신없이 잤다. 그래서 오늘은 정상인같이 생활했다. 눈도 안 아프고 머리도 안 아팠다. 아기도 예뻐 보였다.


그래서 브런치에 이렇게 또 남긴다. 잊을 수 없을 것만 같은 9월 둘째 주, 선물 같은 시간에 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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