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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당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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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Feb 16. 2023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가 있습니까

< 작당모의(作黨謀議) 22차 문제: 지하철에서 >, 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 사이, 그리고 멀끔한 양복의 사내 옆 방금 누가 일어난 듯한 끝자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싫어서라기보다 끝자리라서 그곳에 앉았다. 이어폰에서는 감미로움이 인간의 형상으로 태어난 성발라의 음성이 끊이지 않았고 방금 앉은 끝자리는 정말 누군가 오래 앉아 있다가 일어난 듯이 따뜻했다. 아아, 이대로 딱 이십 분만 앉아 가자. 이런 걸 두 글자로 뭐라고 한다? 행복.

  습관은 무서워서 손은 이내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인스타그램을 열어서 몇몇 출판사의 신간 소개에 라이킷을 눌렀다. 블로그 앱을 열어서 몇몇 시를 올린 포스팅을 보았다. 반찬을 만드는 과정을 시로 쓰다니, 노년의 여성 시인이겠군 하다가 마지막 구절에서 작은 한숨을 내뱉고야 만다. 하아, 이런 시는 도대체 어떻게 쓰는 걸까. 아무 것도 아닌 것이라 생각하는 것에서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는 시라니. 브런치 앱을 연다. 역시나, 민트 점은 없다. 메일앱을 열어 보고 초록앱의 기사 제목을 대충 훑고 오늘 올 택배의 배송 조회를 확인한다. 다행이다, 집 도착하고 나서 오겠네.

  고개를 들어 다음 정차역 표지판을 본다. 시청역이 먼저인가 서울역이 먼저인가, 하여튼 집까지 도착하려면 좀 더 가야 한다. 가방에서 책을 꺼낸다. 쉽게 읽히지 않지만 중요한 문장이 많다고 느껴지(기만 하)는 책이다. 지하철에서 괜히 커버가 잘 보이게 세워보기 알맞은 책. 두 문단을 겨우 읽어내고 하품을 한 번 한다. 지하철에선 가벼운 에세이가 좋은데, 괜히 이 책 들고 왔어.

  책을 가방에 다시 넣으려다 멀끔한 양복의 남자 코트가 시원한 코발트색이라 눈길이 갔다. 코트에서 손으로, 태블릿으로 눈길이 가는 건 누구라도 자연스러운 순서였을 것이다. 태블릿의 글자들은 조금 확대되어 있었고 덕분에 나는 글을 쉽게 읽어낼 수 있었다. 글자의 크기도 크기였지만 내가 쉽게 읽어낼 수밖에 없는 글이었다.      

  안개와 비를 받아들이는 시후와 나뿐이었다. 어느새 주위는 고요해졌다. 중국이 자랑하는 시인 이백(李白)이 달을 건지려 손을 넣었다면 이 호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백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호수는 아름다움을 강조하기 위해 침묵을 선택했고 비는 호수를 덮었으며 태산처럼 무겁고 자욱한 안개만이 존재했다. 그 와중에 어렴풋이 정자가 보였다. 안개는 짙었으나, 누각은 팔을 올려 안개를 걷어내는 듯했다. 어느덧 호수와 안개는 회색의 하나가 되었다. 수면이나 수평선 같은 것은 처음부터 없는 공간이었다. 그곳에 오로지 나만 떠 있었다. 중력마저 사라졌다. 그러한 때 그러한 곳에서 시(詩)가 잉태되는 현상을 나는 영혼의 깊은 곳에서 바라보았다.
  정자에 도착하니 다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날이 좋을 때 오면 더 아름다운 곳이다'라는 가이드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흔들었다. 날이 좋을 때 왔으면 오늘과 같은, 장소가 문학을 낳는 경험은 절대 하지 못했으리라.     



  내가 쓴 글이었다. 오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덩달아 한숨을 쉬었다. 그보다는 작은 한숨이었다. 그의 스크롤이 내려가는 속도로 나 역시 천천히 내려갔다. 그의 마스크 뒤의 표정이 궁금했지만 알 방법이 없었다. 의자의 따스함은 어느새 후끈함으로 온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는 느리게 그러나 꼭꼭 글을 씹어 읽었다. 태블릿을 쥔 손은 진중했고 코발트 코트는 어느 때보다 침착했다. 스크롤은 마지막을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아, 잠깐, 다음 글이 뭐더라, 으아, 찌질했던 연애 이야기! 어떡하지, 어떡하지, 기절하는 척 태블릿 위로 쓰러질까, 책으로 덮어버릴까, 당장 글들을 다 발행 취소해 버릴까,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는 순간 그의 태블릿은 매거진의 다음 글 ‘처서(處暑), 더위의 끝에 잠들지 못하는’으로 넘어갔다.

  지하철 전광판의 역은 아직 한강을 건너기 전의 어느 역이었다. 이 분은 어디서 내리실까, 그때까지 이 미천한 글들을 계속 볼 셈이신가, 한강을 건너기 전 쿨하게 내리셨으면 좋겠는데, 그럼 나도 쿨해진 기분으로 창 밖의 한강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의 정독은 계속되었다. 피식 웃으신 것도 같았고 조금 멈추었다가 다시 스크롤을 내리기도 하였고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읽는 듯도 했다. 당장 그의 글 읽기 아니 글이라 할 것도 못 되는 수준이니 그냥 그의 읽기를 멈추게 하고 싶었다. 이런 종류의 수치는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부끄러움이 빠르게 발끝에서부터 타고 올라왔다. 수치심이 색을 가졌다면 그것은 주황색일 것이다, 나의 얼굴은, 비록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 주황스럽게 물들고 있었을 것이다.

  아아, 그는 백로(白露)를 읽고 있다. 세상 우울한 육아 하다가 겨우 브런치 입성하게 된, 못난 이야기이다. 다시 그의 작은 한숨을 듣는 순간, 어느 방향에서인지 모를 어떤 결심이 솟구쳤다. 그만 읽게 하자. 그러나 결심과 행동 사이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가장 자연스러운 방해는 역시나 말 걸기였다, 그러니까 브밍아웃. 어느새 지하철은 한강을 건널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물가에서 하는 고백이 좀 더 성공 확률이 높다고 누가 그랬더라. 그런데, 무슨 성공?

- 저기요, 실례지만 이 글...

  조금 커진 그의 눈이 나를 보고는 곧 작아졌다.

- 아, 검색하다가 우연히 봤어요, 재미있네요.

- 재미있어요? 다행이네요.

  그의 눈은 다시 조금 커졌다. 제가 쓴 글이거든요,라는 나의 말에 그의 눈은 조금 더 커졌다. 그 크기로 나를 보았고 그 뒤로 파란 한강이 하얗게 반짝거렸다.

  민트색 알람은 여전히 없는 브런치 앱을 열어 그에게 보였다. 잠깐,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한강 위의 고백은 짧았고 현타는 순식간이었다.

  한강 위를 지나며 지하철은 잠시 전기가 끊겼고 속도가 느려졌다. 아, 브밍아웃 하는 게 아니었어, 다음 역에서 그냥 내려 버려야지. 그는 태연하게 태블릿으로 고개를 돌려 백로의 스크롤을 내렸다. 나는 다시 읽히지도 않고 집중해서 읽을 수도 없는 책을 펼쳤다.

- 글을 잘 쓰시네요.

  그런 소리를 듣자고 말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읽기를 멈추게 한 것은 성공인 듯했다. 태블릿은 검은 화면을 장착하고 있었다.

- 그냥 저에게 있었던 일들을 쓴 거예요. 잘 쓴 글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 키우면서 글쓰기가 힘들었을 거라는 그의 말에, 다들 그렇게 힘든 와중에 글을 쓴다고 대답했다. 대답하고 나서 아차 싶었다. 무슨 진짜 작가처럼 말하네, 들뜨지 말자, 나여.

- 친구 녀석이 얼마 전 도서관을 나가더니 책 한 권을 주더라고요. 글쓰기 수업을 듣고 다 같이 책을 쓰는 거였대요. 이 놈이 쓴 걸 보니 뭔가 울컥하더라고요. 몇 번이나 들어서 다 아는 이야기인데도 글로 읽으니 다른 이야기처럼 와닿았어요. 실은 오늘 글은 다음 주 중국출장 준비 겸 검색했다가 우연히 읽었어요. 읽고 다음 글 읽고 읽고. 그런데 이렇게 글을 직접 쓴 작가님을 바로 옆에서 만나다니. 살면서 이런 일을 다 겪어 보네요. 허, 참.

- 글이라는 게 그런 것 같아요. 저도 잘은 모르지만, 쓸수록 나를 새롭게 알아가는 작업 같아요. 저도 제가 아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쓰는데, 쓰고 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느껴질 때가 많거든요.

  전광판에는 다음 하차역이 표시되고 있었고 나는 내릴 준비를 하려고 가방에 책을 넣었다. 그의 질문은 너무나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가 있습니까.

  나는 그의 코발트 코트와 검은 화면의 태블릿을 번갈아 보았다. 내 글을 읽은 이가, 좀 더 거창하게 말하자면 나의 독자가 나의 하차를 막아섰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가 있습니까. 내가 거의 매일 나에게 하는 질문, 누군가에게 하고 싶지만 누구에게도 감히 할 수 없는 질문, 그래서 하루는 소설을 하루는 시집을 하루는 에세이집을 번갈아 읽으며 나름의 답을 찾으려 애쓰는 질문. 쉽게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 그런 질문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받았다. 내가 내려야 할 역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 선생님, 실례가 아니라면 아이가 있으실까요.

-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있습니다.

- 글에서 보셔서 아시겠지만 저는 딸이 셋이에요. 아이를 키워보니 육아는 진짜 케바케더라고요. 케이스바이케이스. 제가 다 낳았지만 다 달라요. 첫째가 잘 먹던 이유식을 둘째는 안 먹고 셋째는 이유식 자체를 거부하고, 첫째는 기저귀를 한 번에 떼었지만 둘째는 늦게까지 속옷에 실수하고 셋째는 빨리 떼나 싶더니 밤기저귀를 오래 하고. 글쓰기도 그런 것 같아요. 케바케. 글 쓰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 그게 글쓰기인 것 같아요. 정해진 글쓰기라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이렇게 이렇게 썼더니 글이 좋아요, 잘 써져요, 말씀드린다고 그게 선생님께 좋은 글쓰기 방식이 될 수는 없는 거예요. 저한테 맞는 방법이 있고 선생님만의 글쓰기 방법이 있을 거예요. 그건 당연히 저도 알 수 없는 거고요. 그걸 찾아가는 게 쉽지 않지만 그걸 찾게 되면 선생님께서 가장 잘 알게 되실 거예요,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지.

  하나만 말씀을 드린다면, 너무나도 뻔한 말이지만 좋은 책을 많이 읽어보는 거예요.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글이 쓰고 싶어지고 쓰이는 순간이 올 거예요. 그때의 고민은 이미 달라져있을 거고요,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가 있는지, 가 아니라 어떤 글을 써야 좋은 글이 되는지,로요.

  내려야 할 역의 다음 역 문이 열리고 있었다. 나의 하차 포기는 이미 예전의 것이 되었는데, 문제는 '어느 역에서 내려야 이 즉석만남의 마무리가 자연스러울 것인가'였다. 너무 멀리 갈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 대화를 급히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았다. 귀한 마음이 오고 가고 있었다. 글을 쓰고 읽는 마음.

- 친구의 글을 읽은 지 이 주가 넘었는데 뭔가 계속... 알 수 없는 기분이 오래 가요. 저의 지난 순간들이 갑자기 떠오른다고 해야 하나, 뭐, 어린 시절 기억 그런 거 있잖아요. 그런 걸 좀 남겨둬야 하나 싶고... 그런데 갑자기 기록하자니 뭐부터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고. 그냥 넘어가기에는, 자꾸 친구가 준 책을 보게 되네요. 부럽기도 하고.

  지하철은 다음 역으로 출발하기 시작했다. 다음 역에서 내릴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건 순전히 선생님이 한 말 때문이었다. 나는 즉석만남의 자연스러운 마무리를 위해 잠시 생각을 해야 했다.

- 선생님께서는 이미 글 쓸 준비는 되신 것 같아요. 다들 글감 그러니까 무엇을 쓸지에 고민이 많거든요. 선생님은 이미 글감은 있으시니, 글을 써보기만 하시면 될 것 같아요. 쓰시기 전, 도서관에 가셔서 제목이 끌리는 소설 한 권, 수필 한 권을 빌려서 먼저 읽어 보시는 게 도움이 되실 거예요. 작가와 편집자가 많은 노력을 해서 내놓은 책의 글이 조금 더 정리된 글이니까요. 물론 가벼운 마음으로 지금처럼 브런치도 좋구요. 무슨 대단한 한 편의 글을 완성하겠다, 이런 마음보다는 편하게 기억이 나는 대로 쓰시다 보면, 꾸준히 읽고 또 쓰고 읽고 또 쓰고 하시다 보면 좋은 글이 선생님 손에서 나올 거예요. 저는 이제 내려야 해서요, 큰 도움 못 드려서 죄송해요, 책 읽고 꾸준히 쓰기, 이거만 기억하시면 좋을 듯해요. 그리고 실은, 제 글 즐겁게 읽어 주시는 것 같아 기분이 많이 좋았어요, 이 말씀 꼭 드리고 싶었어요.

이것도 인연인데 뭐라도 드리고 싶다는 선생님께 나는 브런치 앱을 열고 ‘구독하기’를 가리켰다. 이 선물 주시면 됩니다. 나는 속 없이 히히거리고 웃고 말았다.

- 그런 건 어떻게 하는 거죠.

  내려야 하는 역으로 들어서기 위해 지하철이 느려지고 있었다.

- 브런치 앱을 깔고 ‘진샤’를 검색하시면 돼요. 선생님, 그럼 오늘 다시 한번 감사했어요, 시간 되실 때 꼭 구독해 주세요.

  문이 닫히고 출발하는 지하철을 눈으로 배웅했다. 나의 글을 그렇게 깊은 눈으로 읽어주는 독자를 우연히 만나다니, 내가 조금 위대해지는 것 같았지만 그런 기분이야말로 삼가야 할 것이기에 어깨에 붙은 자만을 먼지 털듯 손으로 툴툴 털어냈다. 가벼워진 어깨로 에스컬레이터에 오르며 브런치 앱을 열어 지난 글들을 다시 읽어보았다. 주황빛 수치심들이 다시 차올랐지만 조금 전에는 없었던 약간의 간지러움들이 함께 했다.

  이 역에서 내린 건, 집으로 가는 마을버스가 있기 때문이었다. 마을버스를 타러 오기까지 두 역만큼의 동행은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있어서 가능했다. 배차 간격이 큰 마을버스였는데 다행히 바로 왔다. 오늘은 이래저래 잘 맞아떨어지는 날이다, 시간도 마음도.

  마을버스 맨 뒷자리에 앉았다. 습관처럼 인스타그램을 열고 블로그를 열고 브런치를 열었다. 민트 알람, ‘지하철님이 내 브런치를 구독합니다’. 지하철님의 관심작가는 브런치팀과 진샤, 단 둘 뿐이었다.

  구독자 하나를 얻은 일개 브런치 작가는 소리없이 웃었다. 그냥 구독자가 아닌, 얼굴을 아는 구독자라는 사실이 그를 웃게 했다. 마을버스가 네모 반듯한 모습으로 상가를 가로질러 골목으로 들어섰다.







* 처음부터 끝까지 지어낸 이야기입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로, 격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해 온 작당모의가 잠시의 휴식을 가집니다. 필진의 개인 사정으로 갖는 충전의 시기일 뿐, 각자의 글쓰기는 계속될 것입니다. 그동안 작당모의의 부족한 글들을 봐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단 말씀을 드리며, 작당모의의 수작(手作)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모두들 건필하시길 바라겠습니다.

다시 한 번,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 좋아진 글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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