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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Oct 22. 2020

요재지이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 Project 20

함부로 펼쳤다간 책 속의 온갖 요괴와 잡귀와 도깨비와 여우, 늑대가 튀어나올 것만 같아 감히 못 펼칠 것만 같은 책.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펼쳐보고 싶은 책. 상상인지 현실인지 구분하기 힘든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설만큼 쌓여있는 책.

함부로 펼치지 마시길. 쉽사리 접기 힘든 이야기 속에서 빠져나오기 힘드니까!


   '잃어버린 책 찾기 프로젝트'에 무작정 신청하고 난 뒤, 걱정에 잠이 쉬이 오지 않았다. 잘 써낼 자신도 없거니와, 책 선정이 문제였다. 남들이 보기 힘든 책을 고르라니, 책도 많지 않은 집인데. 거실 책장을 훑어보았다. 역시나 몇 권 없다. 그중에 유독 눈에 거슬렸지만 애써 무시한 책이 있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 책 말고는 이 프로젝트에 어울릴 만한 책이 없었다. 그래도 애써 무시했다.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귀신 이야기'를 무서워하니까. 이틀을 고민한 끝에, 이 책으로 결정했다. 이 책 말고는 프로젝트에 어울리는 책도 없었을뿐더러,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귀신 이야기를 무서워하기에 귀신 이야기들이 더욱 궁금해졌다. 사놓고 대놓고 안 본 책, 태연하게 무시해온 책(무시하려 노력한 책), '언제 중고시장에 팔지' 고민만 해온 책. 그래, 이번 기회를 핑계 삼아 읽어보는 거다. 난 애를 셋이나 낳은 엄마니까 귀신, 도깨비, 잡신 따위 무섭지 않아! 귀신보다 막내 울음소리가 더 무서워!라고 나를 한참이나 다독인 후에 펼칠 수 있었다.


두렵고 두려워 함부로 펼칠 수 없었던 책. 일찍이 펼쳐봤어야 했던 책. '인간미' 폭발하는 잡귀들과 권선징악이 버무려진,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책.


요재지이는 이런 책이다


   명말 청초를 살았던 산동 지방 사람 포송령이 중국 각지의 기묘한 이야기들을 모은 책이다. 요재가 기록한 기이한 이야기라는 뜻의 '요재지이'는, 민음사 본으로는 1권부터 6권까지 출판되었는데 내가 가진 것은 '6'권이다. 완역본의 1/6만 읽은 셈이다. 짧게는 A4용지 반 정도의 분량의 이야기부터 5장 내외 길이의 이야기까지,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유명한 영화 '천녀유혼' 역시 요재지이 내의 이야기 중 하나였다고 하니, 요재지이가 품고 있는 작품들의 소재와 분위기를 짐작해볼 수 있다.

   

   이런 책이 우리 집에서는, 나름의 멸시를 받고 있었다. 이사를 다닐 때마다 버릴까 말까 를 고민했었지만, 묘한 미련으로 늘 함께 했다.(버리면 책 속의 잡귀들이 나와 따라다닐까 봐 두렵다는 생각을 잠깐 한 적도 있다.) 이사 후 막상 책상 정리할 때에는 버리지 못함을 후회하면서 대충 아무 데나 꽂아두었던 것이다. 그 탓에 아이들이 책 블록 놀이할 때 든든한 밑바닥이 되어주기도 하고 힘이 부쩍 세진 막내가 먹기도 하고, 책장 공간 차지용으로 사용되었다. 이 프로젝트가 아니었다면, 다음 이사 때에는 제대로 펼쳐지지도 못한 채 버려지거나 캐럿 시장에 올랐을 확률이 매우 높은 책이다.

  

위치 선정마저 기묘하다! 해리 포터(게다가 원서!)와 '카페 스타일 홈 인테리어' 사이라니. 신박하게 숨어 잘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인간사에 숨어 있는 온갖 잡귀들처럼.
이 책은 이렇게 나에게 왔다


   12살 여름, 내가 기자의 꿈을 가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매일 아침 눈 뜨자마자 문을 열어 신문을 펼치는 것이 내 하루의 시작이었다. 신문이 좋았다. 신문의 마르지 않은 잉크가 번지는 느낌이 좋았다. 1면부터 마지막 면까지, 신문 위의 모든 활자를 읽었다. 그렇게 신문이 좋아서 신문기자가 되고 싶었다. 어느 날 신문의 1면 광고면에 '요재지이'가 있었다. '이 책에는 온갖 귀신과 정령들이 출몰한다'라는 광고 문구부터 거부감이 들었다. 귀신과 정령들을 모은 책이라니. 당시 인기였던 '전설의 고향'은 인트로도 못 보던 나였다. 무서운 건 죄다 싫었다. 무서운 이야기는 어쩌다 생겨서 사람들에게 전해지고 티브이에도 나오고 그러는 것일까.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담력훈련은 사회악 같았다. 필요하다고는 하는데, 나에겐 그저 없어져야 할 대상이었다. 그런 나에게 '귀신 모음집'이라니. 죽을 때까지 절대 읽을 일 없는 책이라고 생각하고 넘겼다.

  

   참 이상한 일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요재지이'라는 책은 내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잊히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볼 일은 없지만, 어쩐지 보게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것마저 싫었다. 그런 기분을 오랫동안 지니고 있었다.

  

   결혼하고 사이버대학 수강 중 '삼국유사' 독후감을 급히 써낼 일이 생겼었다. 도서관에서 당장 대여가 불가능했고, 주변에서도 빌릴 수 있는 지인이 없었다. 급한 대로 집 근처 중고책 서점으로 향했다. 삼국유사를 쉽게 구할 수 있었으나, 문제는 그 책 옆에 '요재지이'가 있었다는 점이다. 드디어 때가 온 것인가. 운명과도 같은 기분이었다. 정말 사기 싫었으나, 이미 책방을 나올 때는 삼국유사 외 1권이 손에 들려 있었다. 피하려 하면 할수록 더 강하게 다가오는 그런 운명은, 판매가 5,000원에서 내게 오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이렇게나 싼데도 안 사면, 책 속에 봉인된 온갖 귀신들이 그날 밤 꿈에 나타날 것 같았다. '20년 넘게 기다렸잖아, 어서 나를 데려가!'라고 책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거부할 수 없었다.

   이게 5년 전 일이다. 사놓고 애써 펼치지 않고 있었다. 이 프로젝트를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이 책도 나도!


결국 이 책이었다


   중국판 '전설의 고향'이었다. 온갖 귀신과 사물의 정령들, 여우와 늑대, 염라대왕이 판을 치고 있었다. 뜨거운 남녀의 정사 뒤엔 자주 시체가 발견되었고, 도둑과 살인범과 현명한 현령과 미인과 추녀들이 이야기를 이끌어 갔다. 중들은 전생과 후생의 점쳤고, 온갖 내기의 결과는 참혹했고 원한은 다음 생의 복수로 반드시 이어졌다. 귀신들은 내가 두려워한 귀신들이 아니었다. 쪼잔하고 인간사에 미련이 많았으며, 해학과 위트가 넘쳤다. 여우는 늘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자신이 여우임을 밝혀도 사람들은 그와 깊은 인연을 맺거나 극진히 대접했다.(옛날에는 정말 여우가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사람 행세를 했던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늑대나 뱀, 여러 종류의 새 역시 사람들이 자신에게 한대로 되갚았다. 해코지에는 죽음의 저주로, 도움의 손길에는 은혜로. 중간중간 삽화는 나의 상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해 주었다. 그렇지, 이 정도로 못 생긴 추녀여야 이야기가 되지!

    

삽화는 이야기들을 더욱 다채롭게 해 주고, 피부로 와 닿는 생생감을 느끼게 해 줬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철저하게 교훈을 주는 '권선징악'으로 마무리되었다. 온갖 잡귀와 요괴와 정령들은 인간들에게 상을 주고 벌을 주기 위해 출현했다. 물론 여자는 조신해야 한다거나, 남자는 가족을 잘 건사해야 한다는 둥 다분히 시대착오적 교훈도 많았지만(그 당시로서는 전혀 '시대착오적'이지 않은 교훈들이다), 기본적인 명제는 '나쁜 일을 하면 굳이 인간이 내리는 것이 아니어도 반드시 벌을 받고, 좋은 일을 하면 굳이 인간이 주는 것이 아니어도 반드시 상을 받는다'였다. 

   그렇다. 결국은 인간의 이야기들이었다. 모든 이야기 행위의 주체는 인간이었다. 인간이 이끌어가는 서사에 귀신들은 그저 필요에 따라 출현할 뿐이었다. 그 귀신마저 한 때 인간이었다. 여우도 인간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우박 같은 기상 이변마저 인간을 위해 등장한다. 이 책의 모든 것이 인간을 위해 나타나고 사라졌다. 귀신이 가득한 이야기책이지만, 그 귀신을 존재하게 한 것은 인간이었다. 인간의 삶에서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지점에 귀신이 나타났다. 인과의 응보는 반드시 드러났다. 짧은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나는 쉬이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 수 없었다. 나의 과거의 잘못을, 요재지이 안의 단편이 건드렸다. 언젠가는 그에 합당한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었다. 이는 실로 '귀신'보다 훨씬 더 무서운 교훈이었다. 물론 나의 선행을 떠오르게도 해주었다. 그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게 하는 이야기도 가득했다. 그러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엄중한 판결은, 우리의 삶과 타인에 대한 태도가 어찌해야 함을 명백하게 가르쳐 주고 있었다.

   요재지이는 '인간사의 윤리서'였다. 귀신과 요괴와 사물의 정령은 그저 수단과 도구였다. 귀신을 통해 몇 천 년 전의 인류에게나 지금의 인류에게나, 결국 관통하는 '사람 사는 도리'는 같음을 알려주었다. 책을 읽을수록 잡귀와 요괴, 도깨비와 비교할 수 없는 무서운 진리를 통감하게 되었다. '잃어버린 책 읽기 프로젝트'는 이렇게, 내 안에서 잃어버린 책 요재지이와 더불어 삶의 당연한 교훈을 새삼 발견해주었다.


위로가 필요한 인간들에게,


  미물이라 생각한 존재들에게 위로받아 본 적이 있던가.

  작년 이맘때 동생이 용한 집을 다녀왔다고 했다. 누나에 대해 물었는데, 그 신이 울기 시작했다고 한다. 누나에게 잘해주라고, 지금 마음이 너무나도 답답하다고, 어디 말할 데도 없이 답답한 모습이 안쓰럽다고 말했단다. 동생의 그 말에 놀람과 동시에 눈물이 났다. 그 당시 나는 셋째를 출산하고 얼마 되지 않았다. 다시금 밀려오는 산후 우울에 파묻혀, 자존감 따위 챙기지 못한 채 매일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입히고 재우고 허덕이며 지냈다. 집안일과 먹고 사는 일은 손뻗을 힘조차 없었다. '나'는 엄마로서만 기능하고 있었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으면 눈물이 쉬지 않고 흘렀다. 젖소 같은 나날이었다. 어디 도움받을 곳 하나 없이, 오롯이 나만이 나의 고독을 짙게 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그 신은 알아봐 주었던 것이다. 그 거대한 위로를 잊을 수가 없다.   

   포송령 역시 그러했던 것 같다. 온갖 잡귀 이야기를 모으며, 처참한 인간사 속에 알 수 없는 위로를 받은 듯했다. 결국엔 선한 자가 선한 삶을, 악한 자가 벌 받는 삶을 사는 이야기들을 보며 인간사를 어루만지는 엄중하고도 위대한 진리에 위로받은 듯했다. 일상의 지난함과 예고없이 찾아드는 고통에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은, 인간을 위하는 존재들이 인간의 곁을 지킨다는 이러한 이야기들이 있는 까닭이다. 결국 모든 것은, 인간의 이야기이다. 우리의 이야기인 것이다.

귀신들이 아닌, 포송령의 이야기들이 나를 알아주었다.




귀신 이야기 좋아한다면: ★★★

무서운 이야기 좋아한다면: ★★

라면 냄비 받침대:★★★★★

'권선징악' 또는 틀에 박힌 교훈적인 결말 좋아한다면:★★★★★

밤에 자기 전 펼치는 책이라면:☆(흥미진진해서 잠이 깰 부작용이 큼)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 Project>는 계속됩니다. 다른 작가분과 함께 매거진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매일 각기 다른 작가의 1~2편 글이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함께 써 내려갈 것이고, 함께 책으로 묶을 것입니다. 함께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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