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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불구하고 Oct 23. 2020

동의보감

#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 Project 21

   한국사람이라면 제목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것 같은 그 책. 하지만 막상 읽으려면 1437 페이지라는 두께의 압박을 먼저 느껴야 하는 책.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안 읽을 핑계만 대게 되고 읽을 용기는 쉽게 나지 않는 그 책. 그 책을 지금부터 소개합니다.

   이 책을 그래서 왜 고르게 된 것인가?

   브런치 작가가 된 지 보름쯤 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내 이야기를 쓰느라 정신이 없던 어느 날, 브런치 이웃이었던 긴편집장님이 <잃어버린 책 찾기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쓰신 글을 보게 되었다. 집에 짱박혀 있는, 아무도 안 읽을 것 같은 책을 하나씩 골라서 함께 글을 쓸 파티원을 구한다는 글이었다. '오 이거 재밌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던 나는, 일단 재밌을 것 같으면 지르고 본다는 생활신조(?)에 걸맞게 바로 긴편집장님의 프로젝트에 신청을 했고, 그렇게 다른 작가들과 콜라보로 글을 쓸 기회가 나에게도 찾아왔다. 사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나는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책이 딱 하나 있었다. 바로,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 제목은 들어봤을 법한 <동의보감>이었다. 고른 이유는 간단했다. 정말 아무도 안 읽은 책일 것 같아서다.


2012년쯤 사 놓고 한 번도 안 읽어봤던 책! 보이는가? 저 압도적인 분량이!!!


그동안 읽지 않았던 이유는?

  눈에 잘 띄는 위치에 두었음에도 읽지 못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압도적인 분량 때문이었다. 보통의 책은 평균 250-300 페이지 정도면 끝나는데, 이 책은 그 다섯 배의 분량이었으니까. 이왕 할 거, 진짜 남들이 안 읽을 것 같은 책을 다뤄보고 싶었다.(그러고 나서 이 책을 읽으면서는 계속 '내가 왜 그랬을까'라는 생각을 무한 반복했다.) 집에 있는 다른 책들은 다른 사람들도 한 번씩은 읽어봤을 것 같아서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떻게 이 책을 손에 넣게 되었나?    

   이 책은 우연한 기회에 구매하게 되었다. 예전에 영어가이드로 일하면서 관광통역안내사 보수교육으로 템플스테이를 갔다가 돌아올 때였다. 휴게소 서점을 들렀는데, 거기서 샀다. 시중에서 쉽게 접할 수는 없는 책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된 책이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당시 나는, 한국문화를 외국인들에게 알리는 민간 외교관 역할을 하고 있던 사람이었으니까. 마침 그 서점에서는 반값 할인기간이라 정가가 46000원이었던 책을 23000에 팔고 있었다. '어머, 이건 사야 돼!'라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이 책을 샀는데 그러고 나선 두께의 압박 때문에 이 책을 펼칠 시도를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그런데 이런 기회를 얻게 되다니! 참, 사람 일은 알다가도 모르는 것 같다.



이 책의 구성은?   

   이 책은 크게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내경 편. 내장기관에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떤 처방을 하는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2장은 외형 편. 외적으로 드러나는 신체기관에 문제가 생겼을 때의 처방을 다룬다. 3장은 잡병 편. 병과 관련해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증상들을 다루고 있다. 예를 들면 구토, 부종, 황달 같은 것이다. 4장은 탕액 편. 약을 어떻게 만드는지, 어떻게 배합하는지, 재료는 무엇을 써야 하는지, 그리고 그 재료의 특징은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마지막 5장은 침구 편. 인체 경혈도(침놓는 위치를 다룬 그림)와 함께 침의 종류, 침놓는 방법 등을 다룬다.

좋아하는 구절

   사실 이 책에서 좋아할 만한 구절을 찾기는 힘들었다. 주로 이러이러한 사람에게는 저러저러한 방법으로 치료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고, 약재는 대부분 생소했는데 주로 한자로 쓰여있었다. 한의학에 그렇게 익숙한 사람은 아니었던지라, 내용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좋아하는 구절보단 내 사례와 연관이 있는 증상이 나와 있어서 그 일부 내용을 여기에 조금 실어보려고 한다.


[건망증]

●대씨는 건망증이란 일을 하는데 시작은 해놓고 끝을 맺지 못하며 말에서도 처음에 한 말과 마지막에 한 말을 알지 못한다. 이것은 병으로 그렇게 된 것이지 태어날 때부터 어리석고 둔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것을 두고 한 말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건망증이란 갑자기 한 일을 잊어버리고 아무리 애써 생각하여도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주로 심心과 비脾의 두 경經에 의하여 생긴다. 대개 심비는 사색하는 것을 주로 한다. 건망증은 사색을 지나치게 하여 심이 상하면 혈이 줄어들고 풀어져서 신神이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게 되고 비가 상하면 위기胃氣가 쇠약해지고 피곤해져서 생각이 더 깊어진다. 이 두 가지가 다 사람으로 하여금 깜빡 잊어버리게 한다. 치료하는 방법은 반드시 먼저 그 심혈을 보양하고 그 비토脾土를 조리하며 정신을 안정시키는 약재를 써서 잘 조리시켜야 한다. 또한 조용한 곳에서 기분을 좋게 하고 근심과 염려를 하지 않도록 하고 6음六淫과 7정七精을 피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점차 낫는다.

●건망증에는 가미복령탕ㆍ총명탕ㆍ귀비탕ㆍ가감보심탕ㆍ천왕보심단ㆍ강심단ㆍ장원ㆍ가미수성원ㆍ주자독서환을 쓴다.

●총명탕
[효능] 잊어버리기를 잘하는 것을 치료한다. 오랫동안 먹으면 하루에 천 마디 말을 외울 수 있다.
[처방] 백복신, 원지(감초를 달인 물로 축여 심을 버린 다음 생강즙으로 법제한 것), 석창포 각각 같은 양. 위의 약들을 썰어서 한 번에 12g씩 물에 달여 먹거나 가루를 내어 한 번에 8g씩 찻물에 타서 하루 세 번 먹는다.


   대략 어떤 느낌의 책인지 이해가 되시리라 믿는다. 사실 내용 자체가 난이도가 있어서 책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나와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래서, 뭘 느꼈는데?
   

   약 반만 년 되는 시간 동안 한반도에서는 수많은 인재가 탄생했다. 그리고 그들의 업적은 때로는 건축물로, 기록으로, 또 무형문화재 등으로 우리에게 남겨졌고, 지금도 남겨지고 있다.
   

   내가 하던 일이 우리나라 역사를 꾸준히 공부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라, '역사에는 if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만큼은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고 싶었다. 만약 조선 선조 때의 어의였던 허준이 이 책을 쓰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모르긴 몰라도, 당시의 사람들은 의학적인 지식이 부족해서 많이들 죽어가지 않았을까? 그의 업적을 토대로 만들어진 이 책을 통해 허준은 선조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었고 우리나라 한의학을 발전시키는 주춧돌의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 기록이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 기록문화유산 중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한국 사람으로서, 그리고 한때 민간 외교관을 담당했던 사람으로서 너무나도 자랑스럽다. 코로나 때문에 국경이 많이 닫혀서 그렇지, 서양에서는 우리나라의 한의학에 관심을 가지고 의료관광을 오려고 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이런 걸 보면, 조선시대 의학발전의 큰 획을 그으신 그분의 발자취가 새삼 크게 느껴진다. 내가 살면서 항상 고민하는, 그리고 일상생활의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이 되는 '한 번 사는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에 적절한 대답을 해줄 수 있는 삶을 살았던 분이라 더 그렇다.

   회사를 다니면서 취미로 틈틈이 브런치에 글을 쓰는 나지만, 나의 현재는 내 다음 세대의 미래에 반드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동의보감은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책이다. 사람을 사랑하고, 나뿐만 아니라 남들에게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삶. 내가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일이 말과 글을 다루는 일이기에, 나는 말과 글을 통해 그런 삶을 살아가고 싶다. 비록 동의보감을 쓰신 허준 님의 삶에 비해서는 많이 부족하더라도.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고 싶다면 ★ (아는 게 좀 더 생겼다는 뿌듯함을 느끼기에도 좋다.)
●라면 냄비 받침대 ★(밥상에 올려놓으면 눈높이가 딱 적정하다.)
●재미있는 책을 원한다면 ★ (한의학에 관심이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재밌다고 느끼기는 힘들 것 같다.)
●서양의학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 (동양의학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는 도움이 된다.)
●시간 때우기 용도 ★ (이미 다들 예상은 하시겠지만 시간 진짜 안 간다.)

●잠을 자기 위해서라면 ★ (읽다가 10~15분 내로 잠들 수 있다.)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 Project>는 계속됩니다. 다른 작가분과 함께 매거진을 만들어갈 것입니다. 매일 각기 다른 작가의 1~2편의 글이 업로드될 예정입니다. 함께 써 내려갈 것이고, 함께 책으로 묶을 것입니다. 함께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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