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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Dec 29. 2020

그 놈이 그 놈이다

시대와 환경을 관통하는, 이효리의 절대적 명언

   요 며칠 유입 키워드 1위가 '이효리'이다. 이효리, 이효리 임신, 이효리 활동. 딱히 원인은 모르겠다만 어찌 되었든 그녀는 내 브런치 조회수에 크게 한몫하고 있다. 그 핑계를 앞세워 이제, 드러낼 때가 된 것이다. 가슴속에 재워두기만 했던 그녀에 관한 글.

   이효리에 대한 글은 이미 쓴 적이 있다. 그녀에 대한 나름의 실망감을 표출한 글인데, 그녀가 내 결혼 생활을 붙들어주는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는 괜한 실망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그 안타까움에 대한 글이었다.

https://brunch.co.kr/@1kmhkmh1/9                                                                                 


   끝도 없이 지치기만 하는 육아와 결혼에 대해 회의적이던 나날만 보내던 어느 날, 라디오스타 재방을 보다가 한 대 텅 맞은 느낌이 오더니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내 결혼생활, 결혼 인식에 대한 전환점이 된 재방송. 사진 출처 노컷뉴스 기사


   이효리의 '그놈이 그놈이다' 발언. 그 당시 방영하던 효리네 민박은 일부러 잘 안 봤다. 저렇게 자상하고 괜찮은 남편이 존재함을 알면 알수록 내 처지가 너무나도 불쌍해져서 일부러 피했다. 그 정도로 괜찮다고 느낀 남편감이었는데, 그런 사람이랑 살면서 든 생각이 '그놈이 그놈이다'라니.. 게다가 사실 여부를 떠나 그녀의 결혼 전 연애사는 적잖은 소문이 파다했기에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연애하고 고르고 고른 남편감이랑 행복하게 살면서 저런 생각이 들다니.. 하아. 이효리는 저 말 뒤에 "그것('그놈이 그놈이다' '그 년이 그 년이다'라는 인식)을 알면 결혼해서 쭉 사는데, 그걸 모르고 '저 사람은 뭔가'(라고 기대하면) 그건 진짜 아니다. (결혼을) 해도 다른 사람에 대한 환상이 없다"고도했다.(기사 발췌)

   결국 어떤 한 남자와 함께 지낸다는 것은, 딱 저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그놈이 그놈이다.' 또 나 역시도 '그 년이 그 년이다'(어감이 좀 더 세지고 격해지는 것 같은 기분은 저만의 기분은 아니겠지요, 어쨌든) 여기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진리 역시 동시에 깨달았다. '남편'이라는 명사에서 오는 보편성, 결혼이 주는 현실성과 획일성을 딱 저 한 마디로 표현해낸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친구 남편은 삼성전자에 다닌다. 경제생활이 안정적이지만 함께 잠만 자는 동거인이라고 했다. 주말에 얼굴 볼 수 있다고 했다. 또 한 친구 남편은 정말 그런 남편이 존재하는가 싶을 정도로 가정적이고 헌신하며 아내를 지극히 아낀다. 그러나 경제적인 부분에서 친구가 맞벌이를 쉴 수 없다.(자아실현을 위해 자신의 일을 포기하지 않는 경우가 아닌, 경제적 측면에서 반드시 맞벌이를 해야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 친한 후배 남편도 그렇다. 나보다 더 진보적인 생각을 하는 친구가 선택한 남편감이었는데도, 한국 남성들이 무의적으로 가질 수 밖에 없게 된 특유의 가부장적 관념들이 무지불식간에 발산된다는 것이다.(모든 한국 남성이 그렇다는 의미가 아니다. 남성들 역시 사회와 제도에서 어쩔 수 없이 주입된 관념이 무의식적으로 드러날 수 밖에 없는 면면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한편, 세상 자상한 남편이고 딸바보 아빠라 딸이랑 잘 놀아주고 집안일 다 해주고 육아 다 해주는데, 운동 중독자라 매일(주말 포함) 운동하러 나가 감감무소식이 하루 이틀이 아닌 집이 있다. 다른 집의 경우, 너무나도 자상한 아빠고 가정적이며 경제력도 있는데, '카페 같은 곳을 왜 가고 왜 그 비싼 돈 주고 커피 한 잔 사 먹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절대 안 가시는 분이 있다.(나의 취미 생활 맞춰주고 늘 카페 탐방 함께 해주는 남편에게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꽤 자상하고 가정적이라고 생각되는 내 동생도,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있고 (많이 줄었지만) 술과 모임을 좋아한다.


   이성으로서의 호감이 없어서 그렇지, 늘 저런 '남편감'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이성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와 결혼을 했다면 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는데, 결론적으로는 고개를 절레절레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나나 그 친구나 결정장애가 있었고, 특유의 여성적인 성향을 답답해했을 것이다. 여러 장점으로 보였던 부분이, 인생의 파트너로 본다면 결코 장점일 수 없는 부분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멀리 볼 것도 없이, 친정부모님만 봐도 그러하다. 엄마가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우울감을 걷어준 유일한 사람은 아빠였다. 엄마는 늘 그렇게 말한다. 내가 봐도 그렇다. 마음이 따뜻하고 정이 많은 아빠는 엄마에게 일평생 곁에서 한없는 지지와 격려를 보내 주셨다. 그러나, 거기까지이다. 경제력과 책임감은 이 세상 것이 아니셔서 엄마가 실질적인 가장이었다. 오죽하면 하나뿐인 딸이 아빠를 보고 비혼 주의자가 될 정도였을까. 결혼 생활이 저런 것이라면 나는 결혼하지 않겠어. 내가 봐온 가장은, 나를 일찍이 비혼 주의자로 만들었다.(그 당시는 '비혼 주의' 이런 단어도 없어서, 나는 그저 결혼하지 않고 산다고만 했었다. 어른들은 '그러면 안 돼'라고 대답했지, 왜 그러면 안 되는지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다.)


   나의 상황은 어떠한가. 내가 선택한 이는, 매우 이성적이고 판단력과 추진력이 뛰어나 가족을 늘 곤경에 빠뜨리지 않는다. 부지런함과 책임감은 세계챔피언 감이다. 안정적인경제력을 바탕으로, 검소하며 겸손하기까지 하다. 직장에서 능력으로 인정받고, 살뜰히 챙겨주는 친구와 지인들이 많다. 가장으로서 갖춰야 하는 모든 (보수적인) 덕목들은 다 갖춘 훌륭한 남편이다. 그러나 권위적이고 성 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이 어마 무시하며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엄격하고 육아는 바닥이다. 가부장적이라 (내 기준) 집안일 도와주는 것에 적극적이지 않고, 호전적이고 작은 일에 예민하여 사람들과 잘 부딪힌다. 호불호가 강해 싫어하는 것은 쳐다도 안 보고 이기적인 면이 강하고 공감 능력도 (내 기준) 꽤 많이 떨어진다.

   나 역시 다를 바 없다. (남편 기준) 순종적이고 헌신적이며 마음이 따뜻하고 이해심이 많고 아이들을 잘 배려해주는 아내이지만, 답답하고 이해력이 떨어지고 감정적이고 사고가 유아적이고 느리고 게으르고 애들에게 엄격하지 못해 아빠만 나쁜 놈 만드는 와이프이다.  


   결국, 다 거기서 거기인 것이다. 이 것이 만족스러우면 저 것이 불만족스럽고, 어느 한 이유로 피 터지게 싸우다가도 똑같은 이유로 감동하여 울먹이고 그런 나날을 보내는 것, 이 것이 진정한 '현실 결혼생활'이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여러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중요한 생각일 수도 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자라면서 봐온 아빠와는 너무나도 다르게 차갑고 이성적이고 공감하지 못하는 남편이 곁에 있으면, 차라리 없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혼 후의 생활에 대해 생각을 했다. 아이들의 양육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이혼 후에도 삶은 이어져야만 했다. 생활은 어찌 되었든 고될 것이다. 이혼 역시 결혼과 같은 의미로,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결국 생각의 종착점은 '남편'이었다. 누구나 갖고 있는 단점을 갖고 있고, 누구나 갖지 못하는 훌륭한 점을 지니고 있는 사람. 누구와 살아도 그러할 것이다. 그게 결혼이고 인생이다. 완벽하지 못한 사람과, 더 완벽하지 못한 내가 만나 함께 지내는 것, 그래서 완벽해지기 위해 매일 노력하는 것, 그 노력의 과정을 서로 봐 주고 인정해 주는 것.  


  이 것이 결혼생활 롱런의 비결이자, 누구나 알지만 쉽게 알아차리기 힘든 비밀이다.


   '그놈이 그놈이다' 이 심오하고도 간단한 진리는, 오늘도 내가 꽤 괜찮게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는 생각에 힘을 보태주고 있다. 박 터지게 싸우고 나도, 아이들에 치여 지치기만 하는 날도 속으로 되뇌고 되뇐다. 다들 이렇게 지내고, 이것이야말로 '일상'이고 이런 나날이 모여 '인생'이 되는 것이라고.


 



 

덧.

물론, 완벽한 남편도 분명 어딘가 있을 것이다. 동화책 속이나, 안드로메다 13호 행성이나,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그 어딘가에.

시간이 지날수록 완벽한 남편이 되어가는 것이려나? 그렇다면, 나 역시 시간이 지나면 완벽한 아내가 될 수 있는 건가?

생각할수록 모르겠으니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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