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녀들의 '눈치'에 대한 분노
'놀면 뭐하니'를 보진 않았다. 아무리 유재석, 김태호여도 구미에 안 맞는 건 안 맞는 거였다.
그러다가 '싹쓰리', 정확히는 이효리가 나오면서부터 유심히 보고 있다. 싹쓰리 시작할 때, 멤버 찾는 부분의 첫 상대가 이효리였다. 유재석과 이효리 케미를 좋아한다. 볼 때마다 저런 편한 오빠가 있었으면 싶다. 아니 그런데
이건 뭐지
이 익숙하면서도 낯선 얼굴은
여름 한 시즌만 혼성그룹 하자는 유재석의 제안에 자꾸 이효리가 즉답을 하지 못하고 얼버무린다. 자꾸 남편 눈치를 본다. 물론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누가 봐도 신난 이효리였다. 딱 봐도 남편이 그런 와이프를 좋아하지 않아 '허락'이 필요한 느낌. 효리네 민박이나 캠핑 클럽에서 느껴진 자유분방한 영혼의 소유자 같은 효리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건지. 물론 그런 자유분방함을 선물해준 것이 남편이겠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싶을 정도로 경직된 모습.
오디션을 가장한 만남에서 신나게 잘 놀아놓고 마지막까지 자기한테 연락 없어도 잘하라고 했던가 실망하지 말라고 했던가, 진짜 김이 확 빠져버렸다. 그 결정권이 자기에게 있는 게 아닌 느낌. 천하의 이효리도 남편 눈치를 보는구나... 그동안 자유롭게 사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탄산 빠진 사이다, 밍밍한 설탕물.
몇 년 전 무도에서 둘이 만나서 노래했을 때도 '오빠 나 서울 가고 싶어!!!!' 욕망을 맘껏 분출하던 그녀가, 몇 년 지나 비슷한 상황에 자신의 욕망을 재주껏 감추고 숨기고 누르고 있는 것이다.
하아,
이효리 너마저.
많은 엄마들이 단톡에서 수다를 떨다, 자신의 욕구를 남편에게 표현해야 할 때 '눈치가 보여서'가 꼭 나온다.
마사지 더 하고 싶은데 눈치가 보여서
커피머신 바꾸고 싶은데 눈치가 보여서
약 500년 전의 사상을 그대로 이고 지고 계시는 나의 세대주 덕에 나는 '이생망'이지만, 나 아닌 다른 여성들은 좀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아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그 대표가 이효리였는데 너마저 남편 눈치를 충분히 보며 지내고 있었다니.
이렇게 된 이상 대한민국에 남편 눈치 안 보고 사는 여자는 없어 보인다. 물론 와이프 눈치 보는 남편도 많을 것이지만, 남편 눈치 안 보는 와이프는 없을 것 같은 느낌이다.
지독하고도 슬픈 현실이다.(후에나 방송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이효리 부부는 임신을 계획 중이었고 그 계획이 서울-제주도를 왕복해야 하는 방송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는 싹쓰리 센터 멋지게 해내고 환불원정대까지! 전적으로 밀어주는 이효리 남편님, 역시는 역시다!)
덧.
글 쓰다 보니 기혼 남성은 남편, 신랑, 서방 등등으로 불리는데 왜 기혼여성은 집사람, 마누라 이렇게 쉰내 나는 호칭뿐인 건지. 그나마 건조한 느낌은 와이프뿐인데, 외국어다. 우리 말론 객관적으로 기혼여성을 표현할 단어가 없는 건가.
진짜 너무 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