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CPR / 2. 덴마크 계좌 / 3.연락처
워킹홀리데이란 말 그대로 일을 하고 또 휴가를 보낸다는 것이다. 나는 덴마크에 가기 전부터 그 두 가지 중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워킹 홀리데이' 비자의 이름값을 하겠노라 다짐하였다. 일만 하느라 헛되이 아름다운 순간을 잃지 않을 것이고, 너무 놀기만 하여 흥청망청 시간을 보내지 않겠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덴마크 생활에서 꼭 필요한 것들이 있었다. 바로 CPR과 현지의 전화번호, 그리고 덴마크 돈을 송금받을 수 있는 현지 계좌였다. 각각의 것들은 아래와 같은 이유로 필요하였고 또 아래와 같은 방법으로 발급받았다.
1. CPR(Pink Card, Nem ID 등이 이 모두와 연결되어 있다.)
CPR(Civil Registration Number)은 한국으로 치면 주민등록증과 같은 효력을 가진 덴마크의 신분증이다. CPR이 없으면 병원에 갈 수 없을뿐더러 은행 계좌를 만들 수도 없고, 합법적으로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덴마크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그리고 제일로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나와 같은 워홀러들은 이 CPR 발급 때문에라도 집을 구하는 데 조금 더 어려움이 있기도 했다. 왜냐하면 집주인이 자신의 집에 세입자에게 발급해줄 수 있는 CPR의 수가 정해져 있는데, 누군가에게(가족이나 타인에게 돈을 받고 빌려주기도 함) 빌려주거나 집에 세 들어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경우 일일이 인원수에 맞게 발급해주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는 Karina 집에서 CPR 발급이 가능하였고, 나와 포르투갈에서 온 Catia 모두 별 탈 없이 CPR을 신청할 수 있었다.
발급 방법으로는, 코펜하겐에 있는 International House에 가거나(시내 중심에 사는 사람에 한함), 자기가 거주하는 지역의 코뮨(Kommune)에 방문하면 된다. 코뮨은 한국으로 치면 동사무소 같은 곳으로 동네 주민들의 행정적인 처리를 도와주는 곳인데, 온라인이나 전화로 방문 예약을 잡고 시간에 맞추어서 방문하면 된다. 코펜하겐의 왠만한 행정 일을 하는 기관들은 오전 10시에 열어 오후 2시에 닫는 경우가 많으므로 시간에 맞추어 가더라도 시내 중심에 있는 은행이나 인터내셔널 하우스 같은 곳은 대기하는 것이 예삿일이다. 어쨌거나 나는 동네의 코뮨으로 갔기에 그렇게 기다리지는 않았다. 코뮨의 대기실에 기다리고 있으면 직원이 어떤 일로 방문했는지 묻는다. 대답을 한 후 조금 있으면 담당 직원이 직접 나를 데리러 오는데, 그를 따라 사무실에 들어가면 한국과는 조금 다른 느낌의 동사무소 풍경이 펼쳐진다. 직원에게 방 렌트 계약서와 덴마크 정부에서 받은 워킹홀리데이 비자 승인서 그리고 여권을 주면 몇 가지 서류에 작성하게 하고 질문을 한 다음 곧장 알아서 처리해준다. 일 처리가 끝나갈 즈음 직원이 Nem ID(덴마크 공인인증서)도 함께 만들겠냐고 해서 나는 코뮨에서 Nem ID 발급까지 한꺼번에 진행하였다. Nem ID는 한국으로 치면 공인인증서와 같은 것으로 온라인에서 계좌 확인 및 기타 행정 저리를 하는데 필요하다. 가끔 사람들이 예약을 하지 않고 기다리면 되겠지 하며 무턱대고 코뮨에 방문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게 간 경우에는 99% 확률로 당일 접수가 어렵다고 생각하면 된다. 덴마크의 행정은 한국과 달리 예약이 필수다!
자 CPR(Yellow Card)을 만들었으니 이제는 Pink card를 만들어야 한다. 뭐가 이리 복잡하겠냐마는, 현지에 거주하기 위해선 꼭 발급해야 하는 것들이다. 옐로우 카드(CPR)가 주민등록증과 같은 역할을 한다면 핑크 카드는 Non EU 사람들에게 거주허가증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 핑크 카드는 CPR과는 달리 사진이 들어가고 색깔도 핑크색이다. 그래서 거주증의 역할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핑크 카드라고 부른다. 덴마크 내에서 유럽 여행을 하고 다시 덴마크로 돌아올 때 외국인의 경우 이 핑크 카드를 확인하고 입국을 승인하기에 워홀러에게는 꼭 필요한 카드가 되겠다. 핑크 카드는 코뮨이나 인터내셔널 하우스가 아닌 국제 채용 통합 기관(Agency for International Recruitmentand Integration)이라는 곳에서 발급받을 수 있고 아일랜드 브뤼게(IslandsBrygge)역 근처에 위치해 있다. 나의 경우는 예약을 하지 않고 방문했고 번호표를 받고 조금 대기하다가 만들었다. 방문 시 워킹홀리데이 비자와 여권을 가져가면 되는데, 접수할 시에 현장에서 카드에 들어갈 사진을 직접 찍어준다. 어떻게 찍어도 범죄자 같이 나오기 때문에 나중에 워홀러들과 서로의 사진을 보며 누가 더 범죄자 같이 나왔나 겨뤄보는 재밌는 해프닝이 생기기도 한다. CPR과 Pink Card, Nem ID는 모두 내가 살고있는 Karina의 집 Albertslund로 도착했고 신청하고 일주일이 넘거나 덜 걸리기도 했던 것 같다.
2. 덴마크 현지 계좌 개설(Danske Bank)
이렇게 CPR과 Pink Card를 만들었다면 기본적으로 덴마크에서 거주하며 받을 수 있는 혜택은 누릴 수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무상 의료 서비스와 1년 동안의 거주 허가권. 그렇다면 다음으로는 월급을 받거나 돈을 사용할 수 있는 덴마크 현지 계좌가 필요한데, 내가 체류하던 2017~2018년의 경우에는 학생 신분으로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면 파트타임이건 풀타임 잡이건 보장된 직장이 있어야만 은행 계좌 개설이 가능했다. 나의 경우에는 9월에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게 되었고, 그 즉시 직장 근처 Danske Bank에 계좌를 개설하였다.(덴마크의 대표은행으로는 Danske와 Nordea가 있다) 은행에는 따로 예약 없이 방문하여 직원의 안내를 받고 번호표를 뽑아 기다렸다. 계좌 개설을 위해서는 여권, 워킹홀리데이 비자, CPR, 영문 잔고 증명서, 현재 덴마크에서 거주하고 있다는 증명서(직장 계약서 등)를 가져가면 된다. 직원이 몇 가지 서류를 작성하라고 건네주는데 한 달에 얼마 정도의 수입이 생기는지, 어디에서 수입이 발생하는지, 주로 돈을 송금하는 곳은 어디인지, 한도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등에 대해 적어 내라고 한다. 이후 내 계좌 개설에 대한 심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했고 약 일주일 후에 다시 서약서를 작성하러 오라고 하였다. 일주일 후에 연락처로 문자가 오거나 메일이 오면 해당 은행에 가서 서약서를 작성하면 계좌 개설은 완료이다. 그리고 약 일주일 후 즈음에 남색 빛깔의 고운 단스크 은행 체크 카드가 우편으로 도착했다.
3. 현지 전화번호 만들기
내가 덴마크에 살면서 제일로 부러웠던 것 중 하나가 싸디싼 유럽 통신사의 요금이었다. 유럽 전역에서 로밍이 가능하고 한 달 30GB 사용에 99kr(한화 약 18,000원)라니... 게다가 번호를 개설하는 것도 무척 간편했다. 나는 뇌어포트(Norreport)에 있는 세븐일레븐 편의점에서 레바라(Lebara) 통신사의 충전(Top-up) 가능한 99크로네짜리 유심을 구매했다. 이때 구매한 영수증을 버리면 안 되는데, 영수증에 사용 및 충전하는 법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평소 사용하던 한국의 유심을 빼고 레바라의 유심을 끼워 넣은 후 사용 설명서에 나와 있는 번호로 전화를 해서 설명에 맞는 버튼을 누르면 된다. 그리고 구매한 패키지에 해당 유심의 전화번호가 나와 있으니 이 또한 버리지 말 것!
이렇게 덴마크 신분증과 거주증, 공인인증서와 전화번호까지 현지 생활에 필요한 필수적인 것들을 해결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마치 잠깐 덴마크 시민이라도 된 듯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덴마크의 백수라는 사실 때문에 그 느낌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직장을 구하지 못해 현지 계좌를 만들지 못할 때였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