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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사 Sep 23. 2022

우리 동네 Albertslund

작지만 있을껀 다 있답니다. 친구도 있어요.


덴마크의 파란 하늘은 숨바꼭질을 하는지 며칠이 지나도록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워낙 날씨가 흐린 곳이니 그러려니 했었고 비가 와도 마음이 포근했는데, 아마 출근할 곳이 없다는 사실이 저절로 날 행복하게 한 것 같다. 이틀에 걸쳐 설렁설렁 짐 정리를 마치고 필요한 생필품을 구매할 겸 또 동네를 구경할 겸 집을 나섰다.



주택들이 즐비한 곳에서 조금 걸어 나와 고등학교를 지나고 작은 천을 끼고 길을 따라가다 보니 왼쪽부터 큰 마트와 정육점, 미용실, 케밥 가게, 할랄 마트, 펍, 과일가게, 안경집, 옷집, 구두 가게, 약국, 노인요양시설, 커뮤니티, 영화관까지... 규모가 크지 않아도 이 작은 마을에 없는 게 없었다. 심지어 이날은 가랑비를 맞으며 작은 밴드가 마을 중심에서 공연을 하고 있기도 했다.



샤워용품과 먹을거리 등이 필요해 fotex 마트와 NORMAL(노멀) 상점에 들렀다. NORMAL은 한국으로 치면 드럭스토어 같은 곳으로 다양한 브랜드의 생필품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곳이다. 덴마크를 포함해 북유럽 나라들은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하지만 실제로 서비스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이지 마트에서 장을 보거나 공산품을 구매할 때의 비용은 한국에 비해 훨씬 저렴한 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특히 사람의 서비스가 포함되면 비용이 높아지는데 예를 들어 웨이트리스가 있는 레스토랑이나, 헤어디자이너가 있는 미용실, 수선집과 같은 곳의 비용이 높다. 일단 사람이 하는 서비스가 포함될 경우 값이 비싸다고 생각하면 된다. 덴마크에 방문했던 엄마를 코펜하겐의 해산물 음식점에 모시고 간 적이 있는데, 스테이크와 반 마리 랍스터, 감자튀김, 와인 넉 잔에 40만원 가까이하는 가격이 나왔었다. 그래서 나는 반강제로 요리 실력이 늘 수 있었다.


NORMAL 상점 내부
장을 보고 온 먹을거리


우산 없이 다니며 동네에 있는 작은 샵들을 찬찬히 구경했고, 제일 기대가 되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 건물 1층에는 극장이 있었고 계단을 한층 걸어 올라가면 Albertslund 도서관이 나왔는데, 작은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도서관 내부는 높은 천장과  유리창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적절한 가구들이 배치되어 전망 좋은 북카페에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근처에 이런 도서관이 있다는  정말이지  행운이 아니었나 싶다. 굳이 코펜하겐 시내에 있는 도서관까지 가지 않아도 되니 교통비가 절약되기도 했고, 카페에 가지 않아도 되니 커피값이 절약되기도 했다.  


Albertslund 도서관


Albertslund 도서관은 원래의 역할 뿐만 아니라 Albertslund 주민들의 크고 작은 행사를 진행하는 장소가 되어주었고, 특히나 어린이 프로그램을 자주 열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또한 도서관이라고 무조건 정숙해야 하는 분위기가 아니라 동네의 사랑방같이 자연스러운 소음들이 공존해 오히려 더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공간이었다.


행사장으로 변신한 도서관
도서관 1층 입구의 동상


도서관은 Albertslund 에서 거주하는 내게 방앗간 같은 곳이었다. 간혹 집에 있기 무료하거나, 일이 구해지지 않아 조바심이 날 때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레쥬메(이력서)를 쓰며 마음을 가다듬었고, 아는 사람이라곤 Karina밖에 없는 내게 도서관의 복작거림과 직원들의 눈인사는 이상하게도 내가 어딘가에 속해있다는 마음이 들게 했다.  


그렇게 동네 구경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더니, 주방에 있던 Karina가 2층 작은방에 지내는 포르투갈 친구 Catia를 소개해줘도 괜찮냐고 물어왔다. 나는 친구가 생길 수도 있다는 설렘에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고, Karina는 나를 데리고 2층에 작은방 문 앞에 서서 노크를 했다. 뒤이어 뽀글거리는 머리가 매력적인 포르투갈 플랫 메이트 Catia가 모습을 드러냈다. Catia는 나만 한 키에 체구는 조금 더 마른 모습으로 목소리가 너무도 예쁜 친구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코와 입이 스칼렛 요한슨 같은? 느낌도 든다. Catia는 반갑게 웃으며 나와 인사를 하였고 나는 친구가 생겼다는 생각에 너무도 반가웠다. Catia는 석사 공부를 위해 포르투갈에서 덴마크로 온 친구였는데 프랑스에도 체류한 적이 있어 불어에도 능숙했다. 이후로 우리는 종종 내 방에서 큰 TV로 함께 영화를 보거나, 1층 주방에서 카리나가 차려준 밥을 먹거나 하며 조금씩 시간을 같이 보내게 됐다. 언젠가 내가 Karina의 집을 떠난 후에도 우리는 종종 밖에서 시간을 함께 보냈다.


어느 저녁시간의 Karina와 Cat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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