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변경은 ‘반성문’이 아니라 ‘처방전’이다

#공공계약의 시선

by 조민우

"이거 설계변경 해야 할 것 같은데요."

현장 소장의 이 한마디에 담당 주무관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는다.머릿속에는 복잡한 절차가 스쳐 지나간다.실정보고서 작성,예산 부서 설득,계약 부서 변경 계약 체결,그리고 무엇보다 무서운 감사의 지적."애초에 설계할 때 제대로 했으면 변경할 일 없잖아?"이 말이 듣기 싫어 담당자들은 웬만하면 설계변경 없이,있는 돈 안에서 업체를 쥐어짜며 공사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하지만 단언컨대,설계변경을 두려워하여 억지로 덮는 것이야말로 부실공사로 가는 지름길이다.


1. 책상 위 도면과 발밑의 흙은 다르다설계도서는 신이 만든 완벽한 성서가 아니다.불과 몇 달 전,책상 위에 앉은 설계자가 제한된 지질조사와 예산 범위 내에서 그려낸 '예상도'일 뿐이다.하지만 막상 굴착기가 땅을 파보면,예상치 못한 암반이 튀어나오고,지하수가 솟구치며,민원인의 요구사항이 빗발친다.현장은 살아있는 생물이다.

지도는 길을 안내하지만,눈앞에 도로가 끊겨 있다면 핸들을 꺾어야 한다."지도에는 길이 있다"고 우기며 절벽으로 돌진하는 운전자는 없다.그런데 왜 공사 현장에서는 도면대로만 가려고 하는가?그것은 안전 운전이 아니라 직무 유기다.


2. 억지로 맞춘 신발은 발을 망친다설계변경을 하지 않으려는 심리는,작은 신발에 발을 억지로 구겨 넣으려는 것과 같다.물가는 올랐고 현장 여건은 바뀌었는데,최초의 내역서(견적)를 고집하면 업체는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싼 자재를 쓰거나 공정을 생략하게 된다.이것이 바로 부실시공의 시작이다.

담당자가 행정 절차의 번거로움과 감사의 지적을 피하려다,결국 시민들이 이용할 시설물의 안전을 담보로 잡히는 꼴이다.당장의 '서류상 깔끔함'을 위해 미래의 '안전사고'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3. 설계변경은 '실수'를 인정하는 게 아니다많은 담당자가 설계변경 품의를 올리는 것을 일종의 '반성문' 제출로 여긴다."제가 처음에 예측을 못 했습니다"라고 자백하는 것 같아 위축된다.

생각을 바꿔야 한다.설계변경 서류는 반성문이 아니라,병을 고치기 위한 '처방전'이다.환자(현장)의 상태가 변했으니,그에 맞춰 약(공법,자재,예산)을 바꾸는 것이다."현장 상황이 변경되어,더 나은 품질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설계를 변경합니다."이것은 무능함의 고백이 아니라,변화에 대응하여 사업을 완수하려는 담당자의 적극적인 의지와 용기다.


4. 감사를 이기는 무기

'명확한 기록'물론 무분별한 설계변경은 안 된다.감사를 방어하려면 감정적인 호소가 아닌,차가운 기록이 필요하다.

변경 전과 후의 비교 사진

현장 대리인의 요청 공문과 공사 감독관의 검토 의견서

객관적인 물가 변동 자료나 지질 조사 결과

"어쩔 수 없었다"는 말 대신,"이러한 데이터에 근거하여 변경하는 것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논리를 세워야 한다.기록이 튼튼하면 감사는 두렵지 않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설계변경은 실패를 덮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계획과 현실의 간극을 메워 성공으로 가는 다리를 놓는 과정이다.

당신은 지금 서류를 짓고 있는가,아니면 건물을 짓고 있는가?

서류가 조금 지저분해지더라도,튼튼한 건물을 남기는 것이 진짜 공무원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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