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이라고 다 같은 가격이 아니다: 돈의 5가지 얼굴

#공공계약의 시선

by 조민우

"주무관님, 그래서 이 계약이 2천만 원이 넘는다는 겁니까, 안 넘는다는 겁니까?"


신규 시절 과장님의 이 질문에 식은땀을 흘려본 적이 있을 것이다.

견적서 총액은 2,100만 원인데, 부가세를 빼면 1,900만 원 남짓이다.

이럴 때 우리는 1인 수의계약을 할 수 있을까, 아니면 2인 이상 견적 입찰을 띄워야 할까?


공공계약에는 수많은 ‘가격’이 존재한다. 예정가격, 추정가격, 거래실례가격... 겉보기엔 다 돈 이야기 같지만, 행정적으로 이들이 수행하는 역할은 완전히 다르다.


1. 체급을 결정하는 ‘추정가격’ vs 상한선을 긋는 ‘예정가격’

가장 많이 혼동하는 두 거인, 추정가격예정가격이다.

이 둘을 구분하는 결정적 열쇠는 바로 ‘부가가치세(VAT)’다.

추정가격은 ‘부가세를 뺀 가격’이다. 이 가격은 선수의 ‘체급’을 결정한다.

이 계약이 2천만 원 이하의 소액 수의계약인지, 2억 원 이상의 입찰인지,

아니면 국제 입찰 대상인지를 가르는 기준은 오직 ‘추정가격’이다.


우리가 법령집에서 "00원 이상인 경우"라는 문구를 볼 때, 그 기준은 십중팔구 이 추정가격이다.

즉, 추정가격은 "어떤 절차(Method)를 탈 것인가"를 결정하는 법적 기준점이다.


반면 예정가격은 ‘부가세를 포함한 가격’이다. 이 가격은 지출의 ‘상한선(Ceiling)’을 긋는다.

재무관(계약담당자)이 "이 물건을 사는 데 이만큼까지는 줄 수 있다"고 정해놓은 절대적인 기준이다.

입찰에서 업체가 아무리 좋은 가격을 써내도, 이 예정가격을 1원이라도 초과하면 탈락이다.

즉, 예정가격은 "낙찰(Success)을 시킬 것인가"를 결정하는 금전적 한계선이다.


2. 가격을 찾아 떠나는 여행: 거래실례, 감정, 견적

그렇다면 그 중요한 ‘예정가격’은 도대체 어떻게 정할까?

그냥 담당자 마음대로 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시장 조사를 한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거래실례가격, 감정가격, 견적가격이다. 이 셋은 예정가격을 만들기 위한 ‘재료’들이다.


거래실례가격: 가장 강력한 ‘영수증’이다. 조달청 나라장터 쇼핑몰 가격이나, 시중에서 실제로 거래된 내역, 물가 정보지 가격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남들도 이 가격에 샀다"는 증거만큼 확실한 건 없다. 감사관이 가장 좋아하는 가격이다.


감정가격: 전문가의 ‘평가서’다. 토지, 건물, 미술품처럼 시장에 똑같은 물건이 없는 경우, 감정평가법인에 돈을 주고 가치를 매긴다. 비용이 들지만 객관성을 확보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견적가격: 최후의 ‘질문지’다. 거래 실례도 없고 감정도 어려울 때, 업체에게 "이거 얼마에 줄 수 있어요?"라고 묻는 것이다.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지만, 객관성은 가장 떨어진다. 그래서 견적가격을 쓸 때는 최소 2개 업체 이상의 견적을 비교하거나, 타당한지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3. 실무자의 치명적 실수

사고는 주로 ‘추정가격’과 ‘예정가격’을 혼동할 때 터진다.

예를 들어, 부가세 포함 2,100만 원(공급가액 1,909만 원)짜리 용역이 있다고 치자.

담당자가 총액(2,100만 원)만 보고 "어? 2천만 원 넘네? 공고 올려야겠다"라고 판단하면 행정력 낭비다.

반대로, 기준을 착각해서 부가세 포함 2,300만 원(공급가액 2,090만 원)짜리를 "2천만 원 언저리니까 수의계약 하자"고 덤비면, 이건 지방계약법 위반으로 감사 지적 사항이 된다. (추정가격이 2천만 원을 넘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추정가격은 부가세를 빼고 계산기를 두드려라. 그것이 당신이 가야 할 ‘절차의 길’을 알려준다.

예정가격은 부가세를 포함하고 지갑을 열어라. 그것이 당신이 지출할 ‘예산의 끝’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 예정가격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거래실례(영수증), 감정(평가서), 견적(질문지)이라는 도구를 사용한다.


이 다섯 가지 가격의 얼굴만 제대로 구별해도, 당신은 이미 계약의 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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