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계약의 시선
"공무원들은 왜 굳이 복잡하게 원가계산을 합니까? 그냥 퉁쳐서 계약하면 안 됩니까?"
민간에서 온 사람들은 공공기관의 내역서를 보고 혀를 내두른다.
못 하나, 인부의 품 하나까지 쪼개져 있는 그 복잡함이 비효율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00억 원 미만의 대다수 공공 공사가 이 ‘원가계산’방식을 고수하는 데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이것은 단순히 돈을 계산하는 방식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노동과 가치를 합리적으로 증명해내는 과정이다.
1. 가격을 지탱하는 5가지 뼈대: 재·노·경·일·이
원가계산은 완성품을 사는 게 아니라, 건물을 짓는 과정과 같다.
우리는 총액을 묻기 전에, 그 가격을 구성하는 5가지 DNA를 먼저 확인한다.
재료비(Material Cost)
: 공사에 들어가는 벽돌, 시멘트, 철근값이다. 눈에 보이는 실체다.
노무비(Labor Cost)
: 사람의 땀방울 값이다. 보통인부, 철근공, 용접공이 흘리는 시간과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다.
경비(Expense)
: 전력비, 운반비, 보험료처럼 공사를 위해 필요하지만 재료나 인건비는 아닌, 간접적인 비용들이다.
일반관리비(General Administrative Cost)
: 본사 직원들의 월급이나 사무실 유지비처럼, 기업이 존속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관리 비용이다.
이윤(Profit)
: 기업이 영업활동을 통해 가져가야 할 정당한 마진이다.
이 5가지 요소가 차곡차곡 쌓여(Sum-up) 비로소 하나의 ‘예정가격’이 완성된다.
2. 100억 미만 공사의 절대 표준
100억 원이 넘는 대형 공사는 시장에서 형성된 가격(표준시장단가)을 쓰기도 하지만,
우리가 지자체에서 발주하는 대다수의 공사(100억 원 미만)는 이 원가계산(표준품셈)방식을 따른다.
왜일까? 공공 공사는 마트에서 파는 기성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장마다 땅의 모양이 다르고, 민원 상황이 다르다.
세상에 없는 유일한 건물을 짓는데 '시세'라는 게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우리는 재료와 품을 하나하나 쌓아 올려 그 현장에 딱 맞는 ‘맞춤 정장’을 재단하는 것이다.
3. 설계변경을 위한 가장 완벽한 토대
원가계산이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은 바로 ‘유연함’이다.
이것은 앞서 비판했던 ‘견적가격’과는 차원이 다른 안정감을 준다.
공사를 하다 보면 반드시 설계변경을 할 일이 생긴다.
땅을 팠는데 암반이 나올 수도 있고, 주민 요구로 담장을 더 높여야 할 수도 있다.
이때 원가계산서가 있다면 싸울 일이 없다."암반 깨는 품이 추가되었으니 노무비 00원을 더하고, 담장 벽돌이 더 들어가니 재료비 00원을 더합시다."
블록을 끼워 맞추듯 논리적인 수정이 가능하다.
‘비목(Cost Item)’이 세분화되어 있기 때문에, 상황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늘리고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재난이나 긴급 상황에서 담당자가 법적 근거를 가지고 즉각 대응할 수 있게 해주는 든든한 무기가 된다.
4. 가장 합리적인 약속
물론 원가계산은 번거롭다.
품셈을 찾아야 하고, 물가 정보를 뒤져야 한다.
하지만 현존하는 방식 중 이보다 더 합리적이고 투명한 방법은 없다.
업체에게는 "당신들의 노력에 대해 부당하게 깎지 않고 낱낱이 계산해주겠다"는 존중을 보여주는 것이고,
발주처에게는 "세금 1원도 허투루 쓰지 않고 근거 있게 지출했다"는 증명을 남겨준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원가계산은 가격을 해부하는 과학이다.
재료, 노무, 경비라는 뼈대 위에 관리비와 이윤이라는 살을 입혀,
어떤 태풍(설계변경)에도 무너지지 않는 튼튼한 집을 짓는 것.
그것이 우리가 계산기를 두드리며 밤을 새우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