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계약의 시선
"원가계산 맡기면 돈 들고 시간 걸리는데, 그냥 업체 견적 받아서 하면 안 됩니까?"
급한 사업을 추진하는 담당자들은 늘 유혹에 빠진다.
복잡하게 품셈을 찾고 물가 자료를 뒤지는 '원가계산'보다, 전화 한 통이면 팩스로 날아오는 '견적서'가 훨씬 달콤해 보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견적가가 더 싸게 나오면 "예산도 아꼈다"며 좋아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지방계약법은 예정가격을 결정하는 순서를 아주 엄격하게 정해두었다.
이 순서는 단순한 매뉴얼이 아니라,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담당자를 보호하는 '방어막의 등급'과도 같다.
1. 예정가격의 성골(聖骨): 거래실례, 원가계산, 표준시장단가
법령이 인정하는 1순위 기준은 명확하다. 객관적인 데이터다.
거래실례가격: 조달청 쇼핑몰 가격이나 실제 시장에서 거래된 영수증이다. 가장 강력한 증거다.
원가계산: 재료비, 노무비, 경비로 쪼개어 과학적으로 쌓아 올린 가격이다. 공사나 제조 계약의 정석이다.
표준시장단가: 이미 검증된 시장의 평균적인 가격이다.
이 세 가지 방법이 가능하다면, 담당자는 반드시 이 길을 따라야 한다. 이것이 '원칙'이다.
2. 차선책: 감정가격과 유사거래실례가격
1순위 방법이 도저히 불가능할 때, 우리는 차선책을 찾는다.
감정평가법인의 도장을 받은 '감정가격'이나,
비슷한 물건의 거래 내역인 '유사거래실례가격'이다.
여기까지도 나름대로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한 노력이 들어간다.
3. 최후의 수단, 그리고 가장 위험한 선택: 견적가격
문제는 '견적가격'이다.
법령은 견적가격을 위의 모든 방법이 없을 때 사용하는 '최후의 방법'으로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것을 '최초의 방법'으로 애용하곤 한다.
편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싸다"는 이유로 견적가를 고집해서는 안 된다.
견적서는 말 그대로 업체의 '주장'일 뿐, 검증된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편리함 뒤에는 치명적인 독이 숨겨져 있다.
4. 견적가격이 위험한 진짜 이유: '설계변경'이 안 된다
원가계산으로 계약을 하면, 나중에 설계변경을 해야 할 때 명확한 기준이 있다.
"자재가 바뀌었으니 재료비를 조정하고, 품이 늘었으니 노무비를 더하자."
비목별로 쪼개져 있기에 상황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늘리고 줄일 수 있다.
하지만 견적가격, 즉 '총액'으로 퉁쳐서 계약한 건은 사정이 다르다.
갑자기 현장에 폭우가 쏟아져서 옹벽을 더 세워야 하는 재난 상황이 닥쳤다고 치자.
원가계산서가 있다면 옹벽 설치 단가를 적용해 즉시 설계변경을 하고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견적서 한 장으로 계약했다면?
근거가 없다.
"이 공정에 얼마가 들어가는지" 세부 내역이 없으니, 돈을 더 주고 싶어도 줄 근거가 없고,
깎고 싶어도 깎을 명분이 없다.
결국 업체와 지루한 실랑이를 벌이다가 골든타임을 놓치게 된다.
재난 대응은커녕, 작은 설계변경조차 '근거 불충분'으로 감사 지적 사항이 될 수 있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견적가격은 튼튼한 기둥(원가계산)을 세울 수 없을 때 받치는 임시 지지대일 뿐이다.
편하다고 해서 임시 지지대로 집을 지으면, 비바람(현장 변수)이 몰아칠 때 그 집은 무너진다.
"가격 결정의 순서를 지키는 것."
그것은 귀찮은 절차가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현장에서 당신과 사업을 지켜줄 가장 강력한 보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