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공사인가, 물품인가?

공공계약의 숨겨진 장소

by 조민우

"주무관님, 시스템 에어컨 다는데 이걸 공사로 발주해요, 물품으로 사요?"

"운동장 인조잔디 까는 건요? 조형물 설치는요?"


신규 담당자가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자, 베테랑들도 매번 법령집을 뒤적이게 만드는 난제.

바로 ‘업역의 구분’이다.


언뜻 보면 다 비슷해 보이지만, 잘못 선택했다간

"왜 전문공사업 면허 없는 업체랑 계약했냐"며 감사관에게 혼쭐이 난다.

오늘은 이 모호한 경계선을 칼같이 정리해 본다.


1. 공사 vs 용역: ‘물건’이냐 ‘사람’이냐

가장 쉬운 구분부터 가자.

공사(Construction): 무언가를 짓고, 만들고, 고치는 행위. 결과물이 ‘시설물’로 남는다. (건설산업기본법 등 개별법에 규정됨)

용역(Service): 사람의 노동력이나 기술을 사는 행위. 청소, 경비처럼 ‘행위’ 자체가 목적이거나, 설계, 감리처럼 ‘지적 결과물’을 산다.

재밌는 판례가 있다. 경비나 청소는 계약서엔 ‘도급’이라고 쓰지만, 법원은 실질적으로 ‘위임(일처리 맡김)’에 가깝다고 본다. 건물을 짓는 것처럼 완벽한 결과물(끝)이 있는 게 아니라, 매일매일 성실하게 수행하는 과정(Process)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2. 물품 구매 vs 제조: ‘기성품’이냐 ‘주문제작’이냐

구매: 마트에 있는 거 사 오는 것. 삼성, LG 대리점에서 에어컨 사 오면 구매다.

제조: 우리만을 위해 공장에서 새로 찍어내는 것. "관공서 로고 박힌 수건 1,000장"이나 "특수 규격 책상"은 제조다.


3. 대망의 하이라이트: 물품구매설치 vs 시설공사

여기가 지옥의 구간이다. "물건을 사서 설치까지 하는 경우"다.

예를 들어 ‘시스템 에어컨’이나 ‘관급자재 데크’ 같은 것들이다.


[Case A] 물품구매(설치도): "물건 값이 대부분이고, 설치는 거들 뿐."

예: TV, 냉장고, 일반 에어컨, 가구 등.

특징: 그냥 코드 꼽고 자리만 잡으면 끝난다. 설치 기술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 조달청 쇼핑몰에서 살 때 '설치비 포함'으로 산다.


[Case B] 시설공사: "설치가 핵심이고, 잘못하면 건물이 망가짐."

예: 중앙제어식 시스템 에어컨 배관 공사, 엘리베이터 설치, 창호 교체 공사.

특징: 벽을 뚫고, 배관을 용접하고, 건물의 구조를 건드린다. 이건 단순 납품이 아니라 ‘전문공사’ 영역이다.


4. 판단의 기준: 무엇이 ‘주(主)’가 되는가?

행안부 예규는 이렇게 말한다. "공사, 용역, 물품이 섞여 있으면 주된 목적에 따라 판단하라."

하지만 실무 팁을 주자면 이렇다.

현장 설치비가 물품 가격보다 비싼가? -> 공사일 확률 높음.

안전을 위해 전문 면허(기계설비, 창호 등)가 필요한가? -> 공사로 발주해야 안전함.

그냥 갖다 놓으면 끝인가? -> 물품 구매.



요약하자면 이렇다.

공사: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창조자'의 영역.

용역: 보이지 않는 서비스와 기술을 파는 '전문가'의 영역.

물품: 눈에 보이는 물건을 파는 '상인'의 영역.


헷갈릴 땐 이것만 기억하자."설치하다가 건물 무너지면 누구 책임인가?"

단순 제품 불량이면 물품, 시공 불량으로 누수되고 합선되면 공사다.

책임의 무게가 곧 계약의 종류를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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