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서는 ‘종이’가 아니라 ‘과정’이다

납품 시험성적서 위조가 '계약 서류' 위조인 이유

by 조민우

"계약 다 끝났는데, 납품 때 서류 좀 고친 게 무슨 '부정당업자' 제재감입니까?"

업체 대표님들은 종종 억울해한다. 입찰 때 낸 서류를 위조한 것도 아니고, 계약서 도장을 위조한 것도 아닌데, 단지 납품할 때 제품 성능 데이터(시험성적서)를 조금 '수정'해서 낸 것 가지고 공공 입찰을 막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냐는 항변이다.

그들의 머릿속에 '계약'이란, 책상에 마주 앉아 도장을 찍는 '그 순간(체결)'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의 눈은 다르다.


1. 꼬리도 몸통이다 (판례의 해석)

2020년, 대법원은 공공계약 역사에 남을 중요한 판결을 내린다. 쟁점은 이것이었다. "계약 이행 중에 낸 서류(시험성적서 등)도 '계약에 관한 서류'로 볼 수 있는가?"

대법원의 대답은 "그렇다(적극)"였다. 법원은 계약을 '도장 찍는 행위'로 좁게 해석하지 않았다. 입찰 공고부터 계약 체결, 납품, 검사, 대가 지급에 이르는 '일련의 긴 과정' 전체를 계약으로 본 것이다. 따라서 계약 체결이 끝난 후, 납품 단계에서 제출한 서류라 할지라도 그것이 위조되었다면 '계약 질서를 어지럽힌 행위'로 간주한다.


2. 시험성적서는 '영수증'이 아니라 '보증서'다

현장에서 담당자들은 납품 서류를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물건만 잘 들어오면 그만이지, 뒤에 붙은 시험성적서나 자재 승인 서류는 요식행위로 치부한다. 이 틈을 타 업체는 유혹에 빠진다. "납기일은 다 됐는데 테스트 결과가 안 나오네... 포토샵으로 숫자 하나만 고칠까?"

하지만 이 서류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다. "우리가 약속한 품질이 여기 증명되어 있습니다"라고 국가에 제출하는 '이행 각서'다. 이것이 거짓이라면, 계약의 본질인 '신뢰'가 깨진 것이다.


3. 계약의 끝은 도장이 아니라 '완성'이다

많은 사람이 착각한다. 결혼식(계약 체결)을 올렸다고 결혼 생활이 완성되는 게 아니다. 매일매일 약속을 지키며 살아가는 과정(이행)이 진짜 결혼이다.

공공계약도 마찬가지다. 표준계약서에 날인하는 것은 시작일 뿐이다. 시방서대로 물건을 만들고, 정해진 기한에 납품하고, 하자가 없는지 검사받는 그 모든 과정이 '계약'이라는 단어 안에 포함된다.



요약하자면 이렇다.

"계약에 관한 서류"라는 말에서 '계약'을 좁게 해석하지 말라.

시작(입찰서)부터 끝(완료계)까지, 담당자 책상 위에 올라오는 모든 서류는 공적인 무게를 가진다.

납품 단계라고 긴장을 풀지 마라.


위조된 성적서 한 장이 회사의 문을 닫게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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