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옴의 역사 3) 원룸에서 삽니다.(3)
엄마가 나의 집으로 가출했다.
그런데 웃긴 것은 내 방황이 아빠의 인생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는 점이다. 엄마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내 37만원 짜리 원룸에 가끔 오곤했는데 한 번은 아빠와 싸운 날 엄마는 아버지가 사시는 그 집에 이제는 안 들어간다고 했다. 맙소사. 나는 동의하지도 않았는데 엄마가 그랬다. 나는 엄마는 제발 들어가라고 했지만 당시 뭐랄까 엄마가 너무 섭섭해했던 기억이 있고 나는 중간에 낑겨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몇주? 정도가 지난 것 같다. 당시 아버지는 그 집에서 혼자 사실 수 없다고 느꼈는지 엄마의 빈자리 때문에 내가 살고 있던 원룸에 몇 번이고 찾아 오셨다.
그리고 뭐랄까 아버지는 오실 때마다 5만원 10만원씩 챙겨와서 주시곤 했다. 자식이 방황한다고 해서 아마 자신의 처까지 방황하게 만들리라고 생각하지는 못하셨던 것 같다. 아버지는 찾아와서는 심장이 너무 아프다고 말씀하시긴 했다. 아버지의 건강을 해칠정도니 사실은 내가 불효자식인데 왜 나는 아빠를 그렇게 못견뎠지 싶다. 아버지의 설득에 그리고 또 월세를 낼 돈이 떨어졌던 나는 결국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고 그리고 다시 또 아버지와 어머니 나 이렇게 그 집에서 셋이 살게 되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 나는 그 해 겨울 동아일보에 단편소설을 제출했었다. 결과는 당연히 낙방. 그리고 나는 어쩔 수 없는 거라 생각하고는 이것은 또 신의 계시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냥 글쓰는 것을 안해도 너는 행복하게 살수 있다 그러니 포기하라는 신의 계시. 그냥 글을 쓰는 것 말고 너의 삶을 열심히 살아라 하는 신의계시. 그리고 이젠 됬으니 너는 살려주겠다 그런 느낌적인 느낌? 그냥 그렇게 그때는 내 글을 쓰는 인생은 그렇게 끝나가는 걸로 생각했다.
우리 아버지 이야기를 계속 해보자면 아버지는 그냥 어쩌면 안타까운 사람일 수도 있다. 좋은 가정 화목한 가정의 리더로서 그렇게 자신의 조그만 왕국을 꾸리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러기에는 내가 머리가 너무 컸다. 그리고 아버지의 가끔 불합리한 면에는 반박할 수 있는 그런 세치혀를 내가 자라나면서 가지게 된 점도 한 요인이다. 나는 어쨌든 또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어쩌면 화목한 방식으로 살았다. 전보다 더 나아졌다. 나는 내가 다니던 과의 전공을 살려서 다시 영어학원에서 일을 했고 당시 최저임금도 아닌 열정 페이를 받고 있었으나, 점점 그곳에서의 경력을 기반으로 꽤 괜찮은 학원에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그럭저럭 괜찮은 일상을 유지하며 일하고 있었다. 꽤 괜찮았다 그때의 난. 돌이켜봐도 글을 쓰지 않아도 이대로 괜찮을지도 라는 생각도 하고 살았던 것 같다. 그렇지만 다이어리는 꾸준히 기록했고, 계속 글을 쓰고 싶은 열망이 있기는 했다.
아버지와의 관계도 좋았다. 나는 그때즈음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다. 내 인생의 마지막 남자는 아버지라고. 아버지를 부양하며 살거라고. 나는 아버지한테 상처를 받은 것들을 솔직하게 아버지한테 대화하면서 울면서 말씀도 많이 드렸다. 아버지는 그래 정말 사실 그 당시 자신의 할 몫을 다하되, 이상한 나를 견뎌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나에게 사과를 했고, 아버지는 나를 못난 자식인데도 품었다. 나는 아버지와 한 집에서 엄마와 아빠 나 이렇게 영원히 행복하게 살려고 했다.
그리고 생략된 부분이 있지만... 결론적으로는 다시 부모님과 사는 삶을 살게 되었다.
이렇게나 돌아와도 받아주는 아버지 어머니는 무슨 죄일까. 나라는 자식을 나은 죄일까. 그리고 그 부모님의 자식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스트레스 받으시면서 나를 견디면서 사시는 것일까... 그리고 이 못난 자식이 결국에 글로 성공하는 모습을 보실 수 있으실까.
성공은 둘째 치고 학원일도 관둔 지금, 어디라도 들어가서 변변하게 월급이라도 따박따박 받는 모습을 보실 수 있으실까.
그것은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우선은 살아간다.
아버지가 있어서 그래도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돌아올 곳이 있는 것이 너무나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이런 삶도 받아주는 아버지를 존중해 마지 않으면서 그렇게 말이다.
결국은 나를 견디는 XY 염색체는 아버지라는 존재 단 한 명이었다는 그 사실을 깨달으면서 말이다.
아버지와 삽니다.
아프지 마세요 아버지.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