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선을 이루는 작가

나는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 것일까.

by 미카

왜 작가가 되고 싶냐는 물음에 나는 곧바로 잘 대답하지 못했다. 글 쓰는 것을 특히, 손글씨 쓰는 것을 좋아해 온 나에게 있어서 글쓰기는 이 험난한 인생을 조금이라도 즐기면서 지나가기 위한 하나의 유희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은 습관적으로 글을 끄적이게 되었다. 나를 위로해주고, 살아가게 해주는 그리고 나를 잘 알게 해주는 내 친한 친구가 글쓰기라는 존재이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것은 사실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냥 글 쓰는 게 재미있었고, 울고 싶을 때마다 글을 썼다. 글 쓰다가 서러워서 울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인생에 대해 그래도 살아있어서 다행이라고, 살아 가는게 고맙다고 느끼게 만들어 주는 것은 역시나 글을 쓰는 행위였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행위가 바로 글쓰기였다.

그렇듯이 시작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일기라던가, 블로그에 내 공허한 마음을 적어놓는 그런 것들...... 그러다 한 계기로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조금 개인적인 이야기이다. 다만 그냥 짧게 말하자면 나는 거의 죽음을 경험했다. 죽음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말이다. 예전에 대학교를 다닐 때 나의 삶의 계획이라는 것을 수업 중에 과제로 해 본 적이 있다. 당시 나는 70살까지 일을 해서 돈을 우선 벌고 노년에 은퇴해서 하고 싶은 일인 글쓰기를 하겠다고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나에게 25살 죽음에 한걸음 가까이 가는 사건을 맞이했고 29살의 봄에는 나는 그 죽음이 다시 한번 찾아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곤 스물아홉살 무렵 합평 모임에 나갔고 문우들과 함께 서로 글을 공유하며 나는 소설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때 ‘죽기 전에 정말 하고 싶은 건 글쓰기야.’라고 생각하면서 합평에 나갔지만 사실, 느낀 것은 소설, 아, 이거 만만한 세계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나만을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은 자기 독백, 자기연민에 지나지 않고, 이 숭고한 행위가 나뿐만 아니라 모두를 위한 것으로 확장되어가야 한다고 느꼈다. 그리고 나는 죽지 않았고 그 이후에는 또 흐지부지 영어를 가르치는 강사가 되어 다시 먹고사니즘에 시달리며 살아갔다.

어쨌거나 당시에 글쓰기가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점을 본격적으로 깨달은 것은 김탁환 작가님의 ‘거짓말이다’를 읽으면서였다. 벌써 몇 년이 흘렀지만 모두의 마음에 한가지 상흔으로 남아있는 그 일을 떠올린다. 당시 세월호라는 배에 타고 있던 청소년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일에 온 국민이 마음 아파했다. ‘거짓말이다’는 당시 세월호가 전복된 이후, 잠수해서 그 물에 묻힌 이들을 육지로 데려오는 잠수부들의 이야기, 그리고 그때의 마음들을 담았다.

그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김탁환 작가님의 강연을 들으면서 느낀 것이 있다. 단지 미를 위한 글을 쓰는 게 아닌,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닌, 공동선을 위한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내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에 눈감지 않겠다고. 방관자가 되지 않겠다고. 내가 직접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라면 글을 써서라도 알리겠다고. 그런 마음이었다. 현실에 눈감지 않는 글쓰는 사람. 지금은 나에게 그것이 목표이다. 작가라는 타이틀을 아직 얻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러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소리낼 수 없다면 조용히 글을 적기. 사실 그 글이라는 것이 가장 큰 목소리를 지녔다는 것을 알기에. 그리고 그것을 말하는 데 있어서 겁먹지 않기. 두려워하지 않기. 그것이 지금 어떤 작가가 되고자 하냐는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