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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제철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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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철 Mar 19. 2019

초콜릿의 맛

 그가 내게 헤어지자고 말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차분하게 이유를 물었다. 그의 이유는 역시나 매우 감정적이었고 논리적이지 못했다. 안심됐다. 날이 따듯해져서 그런지 그의 초콜릿이 또 녹아내렸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미안하다며 연락이 올 거다. 난 그를 잘 안다. 그래서 답답했다.



 내가 그녀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다. 울음이 목까지 차올랐다. 난 이유를 두서없이 이어갔다. 나의 예상과 달리 그녀는 덤덤했다. 수 없던 나의 머뭇거림이 허무했다. 그녀의 초콜릿이 순식간에 녹아 천덩거릴 줄 알았는데. 난 그녀를 마지막까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시원했다.



 이상하다. 며칠이 지났지만, 그의 사과는커녕 어떠한 연락도 받지 못했다. 심지어 내가 보낸 전화와 문자에도 무소식이었다. 분명 다시 굳을 때가 됐는데. 그진심이었는지 과거를 곱씹어봤다. 나한테 한없던 그가 그럴 리 없다. 하지만 난 그를 되돌릴 수 있을 것 같다. 언제나처럼 다시 얼릴 수 있다. 초콜릿 모양은 이상할지라도.



 놀랍다. 그렇게 담담히 헤어짐에 응했던 그녀가, 언제나 이성적인 그녀가 새벽 2시가 넘어서 연락이 왔다. 술에 취했는지 오타가 잔뜩 묻은 문자를 보내왔다. 난 그 어떤 것에도 응답하지 않았다. 아니하지 못했다. 아직 남아있는 초콜릿 부스러기가 관계를 되돌릴까 두려웠기에.



 마침내 그를 만나기로 했다. 정성 들여 화장을 하고 어제부터 준비한 옷에 구두를 꺼내 신었다. 그가 좋아하던 향수를 뿌렸다. 비장의 초콜릿 한 조각을 챙겼다. 시간은 아직 남았지만, 발걸음에는 여유가 없었다. 약속 시각 5분이 지나서야 창밖에 그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여전했다. 난 웃으며 잘 지냈냐 물었고 그는 그렇다고 답했다. 한참을 빙빙 돌다 그를 붙잡았다.



 기어코 그녀를 만나기로 했다. 씻고 나와 습관처럼 초콜릿을 챙기려 했다. 역시나 없었다. 한 동안 할 수 없었던 친구들과 피시방에 갔다. 몇 판하니 시간이 다 되어 느릿느릿 카페로 향했다. 그녀가 먼저 와있었다. 오랜만에 구두 신은 그녀를 보았다. 내가 좋아하던 향수 냄새도 났다. 그녀가 안부를 물어왔다. 안부를 물을 사이가 된 걸 보니 헤어진 게 맞긴 맞나 보다. 시덥지 않은 대화를 하다가 잠깐의 정적 후 그녀가 울먹였다.



 그의 모습은 낯설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구체적인 나의 변화될 계획을 말했지만 그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라며 휴지를 건넸다. 그 시간은 도대체 언제 가냐며 목놓아 울었다. 챙겨 온 초콜릿이 쓸모없이 녹아버렸다. 그는 괜찮아질 거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슬픈 표정 하나 없는 그가 잔인했다. 짜인 드라마 시나리오처럼 그는 먼저 일어났고 난 뒷모습을 바라봤다.



 그녀의 모습은 낯익었다. 항상 저질러 놓고 뒤늦게 수습하려 하는 모습이 변함없었다.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는 그녀가 안쓰러워 휴지를 건넸다. 나의 마지막 친절이었다. 이 연애의 끝이 아름답길 바랬을지도 모른다. 남은 부스러기를 털어버렸다. 홀가분이라는 표현을 쓰기 미안하지만 홀가분해졌다.



 그가 완전히 나를 떠나갔다. 어쩌면 과거의 나도 결말을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냉동실에 넣고 기다리면 다시 되돌아올 거라고 나를 속여왔다. 알고 보니 그에게 남은 조각은 없었다. 난 아직 달콤한 초콜릿이 이렇게나 남았는데. 혼자 먹어치우기에는 너무 달아 버겁다. 마냥 달기만 한 초콜릿이었다.



 그녀가 이제야 나를 놓아줬다. 초콜릿의 쌉싸름한 끝 맛에서 벗어났다. 더는 그녀의 이름이 입안에서 맴돌지 않는다. 누군가 또 그녀를 아껴 줄 것이다. 난 그녀를 아껴주기 위한 초콜릿을 모두 소진했다. 초콜릿의 양은 누구나 한정적인 것을. 참으로 달고 쌉싸름한 초콜릿이었다.




Recipe_초콜릿 양갱



보다 어른스러운 연애를 기대하며.



팥앙금 500g, 한천 10g, 초콜릿 100g, 설탕 70g, 물엿 20g, 소금 한 꼬집



 1. 10분 정도 물에 불린 한천 가루를 물(350mL)과 보통 불에 끓인다.


 2. 걸쭉한 느낌이 들면 설탕을 넣어 녹인 후 불을 끈다.


 3. 팥앙금과 소금을 넣고 잘 섞어주고 3~5분간 졸여준다.


 4. 초콜릿을 넣어 녹인 후 물엿을 넣고 2분 정도 끓여준다.


 5. 틀에 부어 실온에서 굳힌 후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면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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