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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제철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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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철 Mar 15. 2019

고명의 맛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경주였다. 우산으로 비를 피하기는 역부족이었고 어깨며 신발이며 찝찝하게 젖었다. 온 거리가 눅눅한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소용도 없는 우산을 접고 5명 이상이 들어가긴 버거워 보이는 작은 가게에 들어섰다. 향초가 여기저기 켜져 있는 덕에 건조하게 따듯했고 엠마 스톤이 'City of Stars'를 허밍으로 부르고 있었다. 문득 내 공간에 향초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가게 주인에게 공간에 관해 설명했고 그녀는 향을 추천했다. 싱그러운 향이었다. 그 공간에서 킬 생각을 하니 내심 설레고 있었다.



 계산하려는데 그녀가 아주 정성 들여 포장하고 있었다. 분명 선물을 하려는 게 아니란 사실을 알고 있었을 텐데. 내가 쓸 거라 제차 강조를 하며 포장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이미 선물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풀 때 기분이 좋잖아요"



 그녀는 미래의 내 기분을 위해 포장했다. 한 심리학자는 '인간은 미래를 생각하는 유일한 동물'이라 정의했다. 겨울을 대비해 도토리를 모으는 다람쥐도 미래를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광 시간 단축에 뇌가 자극받아 행동을 지시한 것뿐이라 한다. 그렇다고 인간이 미래를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근거를 바탕으로 결과를 내놓는 기상청도 별로 놀랍지 않게 틀린다. 우린 미래에 대해 추측밖에 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우린 미래와 짝사랑인 마냥 알 듯 말 듯 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예상대로 되는 일이 많을까 아님 상상조차 못 한 일이 많을까?'라 묻는다면 어떤 이가 전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혹 무당들은 예측되는 인생을 살고 있을까 의심이 든다. 하지만 우린 계속해서 불확실한 미래를 현재에서 멋대로 결정하며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행복을 줄거라 믿었던 것이 배신이라도 할까봐서 말이다. 사실 미래를 상상할 때 인간은 현재에서 경험할 때와 똑같이 뇌의 '감각기관'을 사용된다. 수 많은 경우의 수를 따져가며 객관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떠올릴 때 느껴지는 감정적 반응에 집중한다. 즉, 우린 결과가 아닌 그날의 기분을 상상하는 것이다.



 12월 31일 밤은 설렘따위 없다. 어영부영 1년을 해치운 내가 한 살을 더 먹어도 되는 것인가. 이번 해는 철 없이 살았는데 한 살을 오히려 깎아주는게 맞을텐데 하며 억울함을 토로하며 해를 넘길것이다. 허나 다음날이 되면 새로워진 나이값에 걸맞는 새해 계획을 세우고 있다. 새로운 플랜b와 이루지 못한 플랜a를 섞어서 새해 맞이 버킷리스트를 세운다. 그렇게 올해를 위한 고명을 올려본다. 먹기 전에 기분을 내보려고. 첫 고명을 올린 지 2개월이나 지난 지금은 고명이 없다. 흥미도 열정도 떨어졌다. 또다시 고명을 올린다. 미래의 기분을 상상하며.



 케이크 위에 체리와 딸기를 올렸다. 김이 나는 떡국에 달걀 지단과 김 가루를 얹었다. 스테이크를 접시에 올리고 소스로 플레이팅을 했다. 파스타 위에 파슬리를 솔솔 뿌렸다. 그렇게 언제나처럼 고명을 얹을 것이다. 그녀가 신경 썼던 미래의 기분을 위한 일이다. 아마 미래를 위한 일은 이 정도가 최대일 것이다. 우리는 그저 미래의 기분 정도 챙길 수 있다. 여느 때처럼 기분을 위한 고명을 얹어야겠다. 큰 기대하지 않고 사뿐히 올리기만 해야겠다. 우리가 언제나 바라는 해피엔딩을 위해.





Recipe_산딸기 무스 케이크



딸기가 제철인 지금, 딸기를 살포시.



크림치즈 100g 생크림 100mL, 설탕 40g, 라즈베리퓨레 35g, 젤라틴 3g, 산딸기, 애플민트잎 1개, 카스테라



1. 찬물에 젤라틴을 넣어 5분 정도 불려준다.


2. 라즈베리퓨레를 따뜻하게 데운 후, 설탕과 젤라틴을 넣어 완전히 녹을 때까지 섞어준다.


3. 크림치즈를 풀어 라즈베리퓨레에 넣어 섞어준다.


4. 생크림에 설탕을 넣어 휘핑한 후 라즈베리퓨레에 넣어 섞어준다. (라즈베리 무스로 거듭난다!)


5. 카스테라, 산딸기, 라즈베리 무스를 순으로 쌓아 준 후 냉장실에 넣어 굳혀준다.


6. 산딸기와 애플민트로 장식하면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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