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이 전북현대 유니폼을 입는다면?

by 정일원
▲ 한 축구팬이 제작한 '축구 라이언' 모음


[정일원의 Box to Box] 시작과 끝,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가 인생이라면 축구도 이와 다르지 않다. 축구 역시 '우리 편 골대에서 상대 편 골대 사이' 그 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이야기의 집합체다. [Box to Box]에는 이처럼 축구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담으려고 한다. [편집자 주]

강남 한복판에 긴 줄이 늘어져 있다. 한 업체의 플래그십 스토어(Flagship Store)를 찾은 인파다. 저 안에 무엇이 있길래 1시간 째 사람들이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는 것인가. ‘라이언(RYAN)’이라는 캐릭터 때문이란다. 줄을 선 사람들 대부분이 10~20대의 젊은이들이다. 가장 인기 있는 라이언은 하늘색 후드 티셔츠를 입고 있는 라이언인데 이제는 얼굴 보기도 힘들다고 한다. 순간 얼마 전에 봤던 ‘축구 라이언’이 머릿속을 스친다. 한 축구팬이 라이언에 축구팀 유니폼을 입힌 것이다. 누리꾼들의 반응은 “귀엽다”는 칭찬 일색이다. 하기야 옷을 안 입어도 귀여운데, 영롱한 축구팀 유니폼을 입고 있으니 오죽할까.

캐릭터 마케팅은 이미 다양한 영역과 분야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미디어 플랫폼의 다양화로 기업과 소비자 간의 소통이 쌍방향으로 이루어지면서, 더 이상 딱딱하고 권위적인 정보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게 됐다. 기업들은 보다 말랑말랑하고 유쾌하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전할 수 있는 ‘전령사’를 찾아 나섰다. 그래서 눈을 돌린 곳이 바로 캐릭터다. 예전엔 브랜드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캐릭터를 직접 디자인하는 곳이 많았지만 최근엔 비용 절감과 마케팅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 이미 성공한 외부 캐릭터들을 자사의 마케팅에 활용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성공한 캐릭터가 갖는 인지도와 호감도를 고스란히 제품과 브랜드에 이식하기 위해서다.

▲ 터키의 명문 페네르바체는 지난달 헬로키티 영입을 공식 발표했다. K리그 역시 2014년 애니매이션 캐릭터 로보카 폴리를 홍보대사로 위촉한 바 있다. / ⓒ 페네르바체, K리그


축구계에도 외부 캐릭터를 마케팅에 활용한 사례는 많다. ‘포켓몬 고’ 열풍에 편승하기 위해 스페인 3부 리그 팀 야고스테라는 포켓몬 피카츄의 이름을 야고스카츄라고 바꾼 뒤 구단 프로모션에 활용했다. 지난달 터키 명문 페네르바체는 일본의 캐릭터 전문 기업 산리오와 협약을 맺고 유명 캐릭터인 헬로키티를 전격 영입했다. 헬로키티가 그려진 36가지 다양한 상품들을 출시해 수익 창출은 물론 잠재적 팬층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카라카야 페네르바체 단장은 “페네르바체는 남성만의 팀이 아니다. 여성과 어린이들도 우리 클럽의 일부다. 헬로키티는 특히 소녀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K리그 역시 어린이 팬들을 공략하기 위해 애니메이션 캐릭터 로보카 폴리를 홍보대사로 위촉한 바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사례들은 캐릭터의 특성과 브랜드 이미지와의 연관성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세그멘테이션(세분화)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한계가 있다. 피카츄, 헬로키티, 로보카 폴리는 어린이와 소녀팬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그저 ‘귀여운’ 캐릭터에 불과하다. 종목의 특성과 구단의 이미지와는 완전히 동떨어진다. 새로운 팬들뿐만 아니라 기존 팬들의 공감까지 끌어내기 위해선 어디든 ‘연결고리’가 있는 캐릭터를 영입해야 한다.

▲ '캡틴 츠바사'에 나오는 캐릭터 마츠야마 히카루 / 사진: 콘사도레 삿포로 홈페이지 갈무리


일례로 2014년 일본 J2리그(2부 리그)의 콘사도레 삿포로는 일본의 유명 축구만화 ‘캡틴 츠바사’에 나오는 캐릭터 마츠야마 히카루에게 등번호 36번을 부여하고 실제 입단 행사를 가졌다. 마츠야마 히카루가 고향팀인 콘사도레 삿포로에 입단하는 만화 내용을 실화로 만든 것이다. 콘사도레 삿포로는 ‘마츠야마 히카루와 함께하는 축구교실’ 등과 같은 유소년 육성 프로젝트를 진행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만약 마츠야마 히카루가 야구만화의 주인공이었거나, 입단한 팀이 콘사도레 삿포로가 아니었다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구단마다 마스코트가 있지만 조잡한 디자인과 입에 붙지 않는 이름 등으로 인해 마스코트를 활용한 머천다이징이나 프로모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라이언이 후드티 대신 다른 옷을 입으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이 스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라이언의 하늘색 후드티를 벗기고 축구 유니폼을 입히면, 딱 잘라 말해 전북현대의 유니폼을 입히면 그만큼 잘 어울리는 옷이 또 있을까.

▲ 전북현대의 마스코트 초아와 초니 / 사진: 전북현대 홈페이지 갈무리


라이언의 내력이 전북현대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이름이 일단 라이언이라 사자인건 알겠는데, 갈기가 없는 수사자라는 것이 반전이다. 성별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둥둥섬의 왕위 계승자라는 신분이 더 놀랍다. 자유로운 삶을 동경해 둥둥섬에서 탈출했다고 한다. 맹수인 사자가 갖는 강인함이 ‘닥공’이라는 전북현대의 철학과 궤를 함께한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최강희 감독의 전술 운용 방식이 라이언의 자유분방함과 똑 닮았다.

▲ 라이언과 이재성은 콤플렉스를 장점으로 승화시킨 공통점이 있다. / 사진: 카카오프렌즈 홈페이지, SBS 뉴스화면 갈무리


라이언은 전북현대의 특정 선수들과도 닮은 구석이 많다. 전북현대의 영원한 에이스인 이동국만 보더라도 별명이 ‘라이언 킹’이다. 사실 이동국보다 라이언과 닮은 점이 많은 선수는 이재성인데, 가장 비슷한 점은 ‘콤플렉스’를 장점으로 승화시켰다는 것이다. 라이언은 갈기가 없는 콤플렉스가 오히려 매력 포인트가 됐다. “공을 다리 안으로 모으면 상대가 발을 뻗어도 공이 제 다리 안쪽에 있기 때문에 뺏기가 힘들다”라는 인터뷰에서 알 수 있듯 이재성 역시 오다리라는 신체적 약점을 수비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왕위를 걷어차고 뛰쳐나온 라이언의 자유분방함은 흡사 3선과 2선을 넘나들며 자유로운 움직임을 가져가는 이재성의 플레이 스타일을 연상케 한다. 둘 다 왕위와 에이스, 물려받을 것이 있는 계승자의 신분이기도 하다.

키덜트(kidult)1) 시장이 커지면서 캐릭터는 더 이상 어린이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만인의 공유물이 됐다. 라이언을 보기위해 길게 늘어선 줄은 캐릭터를 활용한 마케팅이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다 큰 어른들에게도 효과가 있다는 방증이다.

축구 그 자체로 한계에 봉착한 K리그와 구단들이 고려해볼만한 사안이다. 피치 안에서 전력 보강을 위해 외국인 용병을 영입하는 것처럼 피치 밖에서도 팀과 어울리는 ‘외부자들’을 영입해보는 건 어떨까. 성공한 캐릭터의 매력으로 새로운 팬층을 확보할 수 있고, 구단과의 ‘케미’를 통해 팬들의 충성도까지 끌어올릴 수 있으니 이만한 ‘슈퍼서브’가 또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초아와 초니(전북현대 마스코트)에겐 미안하지만 전북현대 라이언은 꼭 나왔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다.


1) 어린이를 뜻하는 ‘키드’(Kid)와 어른을 의미하는 ‘어덜트’(Adult)의 합성어로 ‘아이들 같은 감성과 취향을 지닌 어른’을 지칭한다. 유년시절 즐기던 장난감이나 만화, 과자, 의복 등에 향수를 느껴 이를 다시 찾는 성인계층을 뜻한다.


베프리포트 2016년 10월 26일자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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