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원의 Box to Box] 시작과 끝,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가 인생이라면 축구도 이와 다르지 않다. 축구 역시 '우리 편 골대에서 상대 편 골대 사이' 그 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이야기의 집합체이다. [Box to Box]에는 이처럼 축구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담으려고 한다. [편집자 주]
출범 20주년을 맞이해 ‘크레스트(방패형에다 얹은 문장)’로 로고를 바꾼 MLS / MLS 공식홈페이지 캡처
미국 메이저 리그 사커(이하 MLS)의 성장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해 평균 관중 수는 이미 프랑스 리그앙을 뛰어넘었고, MLS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구단인 시애틀 사운더스는 EPL의 리버풀과 첼시보다 더 많은 평균 관중 수를 기록했다. 2007년 만들어진 이른바 ‘베컴 룰(New designated player rule)’ 이래로 점차 완화되기 시작한 지정 선수(샐러리캡 적용이 제외되는 선수-당초 1명, 2010년부터 2명이며 이외에 23세 이하 선수 1명 추가 가능) 제도는 유럽 정상급 리그에서 활약했던 스타플레이어들의 영입을 가속화했고, 이는 리그의 흥행과 수준 향상이라는 2마리 토끼를 MLS 품에 안겨줬다.
2015 시즌 MLS 관중 규모 / 자료 출처: SPORTSJOE, bbc 캡처
미국에서 처음으로 프로축구 리그가 출범했던 1968년부터 미국 프로축구 리그의 이미지는 황혼이 감도는 ‘종착역’이었다. MLS의 전신 격인 북미 축구 리그(North American Soccer League)는 당시 펠레, 프란츠 베켄바워, 요한 크루이프, 거스 히딩크 등 전성기가 지난 스타들을 대거 영입했고, 이는 실제 리그의 흥행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후 스타들의 은퇴와 부실해진 경영, 미국 내 4대 프로스포츠(미식축구, 야구, 농구, 하키)의 인기에 밀리면서 북미 축구 리그는 1984년에 문을 닫았지만, 94년 미국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를 발판으로 96년 MLS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출범했다.
새 단장 이후에도 MLS의 스타플레이어 영입은 멈추지 않았다. 2010년 데이비드 베컴(LA 갤럭시)과 티에리 앙리(뉴욕 레드불스)를 시작으로 알레산드로 네스타(2011/몬트리올), 로비 킨(2011/LA갤럭시), 다비드 비야(2014/뉴욕시티 FC), 카카(2014/올랜도 시티), 프랭크 램파드(2014/뉴욕시티 FC), 스티븐 제라드(2015/LA 갤럭시), 안드레아 피를로(2015/뉴욕시티 FC), 디디에 드록바(2015/몬트리올 임팩트) 등 세계 각지에서 정점을 찍었던 선수들이 커리어의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MLS로 발길을 돌렸다.
# ‘긍정적’ 시너지 가져온 MLS의 스타플레이어 영입
전성기가 지난 선수들의 영입이 계속되면서 혹자들은 “7, 80년대와 다를 바 없이 전성기가 지난 스타플레이어들의 영입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할 것이다”라고 비판했지만 최근의 MLS 구단들은 단순히 유명세만을 기준으로 선수들을 영입하진 않는다. 지난 시즌 유럽의 빅클럽들의 구애를 뿌리치고 유벤투스에서 토론토 FC로 이적한 세바스티안 지오빈코가 데뷔 시즌에 22골 16도움을 기록하며 득점·도움왕을 차지한 것과 유스 시절 FC 바르셀로나에서 성장한 지오반니 도스 산토스가 비교적 젊은 나이(27)에 LA 갤럭시로 이적해 3골 5도움(리그 10경기)을 기록한 것을 고려하면 ‘실력’을 갖춘 젊은 스타들의 영입도 꾸준히 병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5시즌 MLS 득점/도움 순위 / MLS 공식 홈페이지 캡처
또한 전성기가 지났다고 평가받는 스타플레이어들 역시 아직까진 웬만한 유럽리그에서도 일정 수준의 폼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선수들이다. 2014년 첼시에서 시티 풋볼 그룹(City Football Group) 산하의 뉴욕 시티로 이적한 프랭크 램파드가 MLS 비시즌 동안 맨체스터 시티(시티 풋볼 그룹 산하)로 임대돼 32경기 6골을 기록한 것과 14/15 시즌 토론토에서 활약했던 저메인 데포가 올 시즌 선덜랜드 소속으로 EPL에 돌아와 팀 내 최다 골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이를 보고 도리어 “전성기가 지난 선수들이 맹활약을 펼칠 정도면 그만큼 경기력 수준은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라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이 또한 넌센스다. MLS로 이적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스타플레이어들과 비교해도 기존 MLS 선수들의 실력은 그들에게 절대 뒤지지 않는다. 지난 시즌 MLS 득점·도움 순위 5위권 내에 속한 선수들 중 지오빈코, 킨, 비야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타 리그 팬들에겐 생소한 기존 MLS 선수들이란 점을 고려하면 “MLS의 경기력 수준이 떨어진다”라는 주장은 어폐가 있어 보인다.
최근 EPL 첼시와 4년 계약에 합의한 맷 미아즈가 / 사진·통계출처: 첼시 공식 SNS, MLS 공식 홈페이지 캡처
이렇듯 스타플레이어들은 기존 선수들과의 선의의 경쟁이라는 긍정적 시너지를 가져올 뿐 아니라 MLS의 젊은 재능들에겐 존재 자체로 훌륭한 귀감이 된다. 일례로 지난 시즌까지 MLS 뉴욕 레드불스(동부 컨퍼런스)에서 활약했던 수비수 맷 미아즈가는 득점왕 지오빈코(토론토/이하 동부 컨퍼런스)를 비롯해 드록바(몬트리올), 카카(올랜도), 비야(뉴욕시티)와 같은 스타플레이어들과 함께 피치에서 경쟁해 소속팀의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20살의 이 젊은 수비수는 유럽의 여러 빅클럽들에게 구애를 받았고, 얼마 전 EPL 소속 첼시와 4년 계약에 합의했다. 세계 최고의 리그를 호령했던 스타플레이어들과 직접 부대끼며 MLS 최고의 수비수로 성장한 미아즈가의 이적은 빅리그 진출을 꿈꾸는 MLS 선수들에겐 좋은 선례가 될 전망이다.
# MLS의 또 다른 옵션, 빅리그와의 ‘연결고리’
이처럼 리그의 규모와 경기력이 향상됨에 따라 자연히 유럽의 빅클럽들도 MLS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했던 미아즈가의 이적 사례 처럼 유럽의 빅클럽들이 MLS의 젊은 재능들을 예의주시하고 있을 뿐 아니라 MLS와 여러 리그들 간에 형성된 다양한 커넥션이 MLS에 ‘환승역’의 기능을 더해주고 있다. 맨체스터 시티의 구단주 만수르와 뉴욕 양키스의 공동 투자로 만들어진 지주회사 ‘시티 풋볼 그룹’은 산하에 4개의 축구 팀(맨체스터 시티-뉴욕시티-멜버른 시티-요코하마 마리노스)을 두고 상호 간에 공고한 ‘축구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훈련 방식, 메디컬 케어, 각종 노하우 공유를 골자로 한 상호 교류의 과정에서 각 리그의 선수 정보가 활발히 교환되고 있고, 이는 직·간접적으로 MLS 선수들의 빅리그 진출 가능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물론 램파드의 사례처럼 “시티 풋볼 그룹 산하의 뉴욕 시티에 소속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냐”라는 의문의 목소리도 있을 수 있겠지만 램파드 이외에 이러한 연결고리를 활용해 빅리그로 진출하는 선례가 나온다면 자연히 빅클럽들도 MLS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을 주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현재 MLS에는 시티 풋볼 그룹뿐만 아니라 기존 메트로 스타즈를 인수해 뉴욕 레드불스를 창단한 레드불도 호주(레드불 잘츠부르크)와 독일(RB 라이프치히) 등에서 축구단을 운영해 나름의 축구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사진 출처: 시티 풋볼 그룹, 인터네셔널 챔피언스컵 공식 홈페이지 캡처
덧붙여 MLS 커머셔너 돈 가버의 교류 확대 의지 역시 MLS와 빅리그 간의 이음매를 한층 더 견고히 할 전망이다. 리그 간 교류전에 숨어있는 심사위원이 각 구단의 스카우트들이라면 교류전은 선수들의 매력을 발산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오디션인 셈. 지난 3년간 시즌 개막 전에 유럽의 여러 빅클럽들과 ‘인터내셔널 챔피언스컵’이라는 이벤트성 대회를 개최한 돈 가버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EPL과 공식적인 교류를 원한다. 이에 매해 여름 EPL과 MLS 팀을 무작위로 추첨해 토너먼트 방식 혹은 MLS 우승팀과 EPL 우승팀이 겨루는 슈퍼컵 개최도 고려중이다”라고 밝혀 빅리그와의 지속적 교류에 대한 의지를 확고히 했다.
# ‘종착역’ MLS, '환승역‘ 될 수 있을까
MLS의 이러한 행보는 MLS 선수들뿐만 아니라 빅리그 진출을 꿈꾸는 아시아권 선수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축구계에서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권 선수들의 위상이 예전보다 많이 향상된 것은 사실이지만 자국리그에서 곧바로 유럽의 빅리그로 진출하는 케이스는 여전히 손에 꼽는 상황. 이러한 상황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MLS는 선수들의 최종 목적지인 빅리그로 향하는 또 다른 경유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점차 증가하는 관중, 스타플레이어들과 기존 선수들이 만들어내는 수준 높은 경기력 외에 유럽에서도 통용되는 ‘영어’와 상대적으로 거부감이 덜한 미국 문화의 학습은 빅리그 진출 이후 낯선 타국의 문화로부터 파생되는 ‘문화 충격’의 완충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MLS 내에서 아시아권 선수들에 대한 선호도와 인식은 어떻게 형성되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시아, 특히 한국과 일본을 필두로 한 동아시아권 선수들의 MLS 진출 가능성은 상당히 낙관적이다. 최근 유럽의 빅리그에서 활약하는 한국과 일본 선수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축구계에서 아시아 선수들이 갖는 위상은 나날이 높아졌고, 이는 실제 MLS 구단의 선수 영입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례로 이영표 선수가 활약했던 밴쿠버 화이트 캡스는 2016시즌을 대비해 지난해 J리그 가시와 레이솔로부터 공격수 쿠도 마사토(25)를 영입했다. 쿠도 마사토의 영입을 추진한 칼 로빈슨 밴쿠버 감독은 구단의 공식 매체를 통한 인터뷰에서 “리그 출범 이후 아직까지 많은 일본 선수들이 MLS에서 활약하진 않았지만 J리그를 비롯한 아시아 시장은 가능성이 무궁한 ‘미개척 시장’이다. 특히 아시아권에서 일본과 한국 선수들을 영입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들은 세계 각지에서 활약할 정도로 재능이 뛰어나다. 모쪼록 쿠도의 영입이 좋은 선례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밝혀 동아시아권 선수들의 실력과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쿠도 마사토는 가시와 레이솔에서 총 260경기에 출전해 92골을 넣은 검증된 공격자원이다. / 밴쿠버 화이트캡스 공식 SNS 캡처
이처럼 쿠도 마사토의 영입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MLS 구단들은 아시아 정상급 리그(K리그, J리그)에서 활약하는 한국과 일본 선수들이 팀의 ‘핵심 자원’으로서 활약해주길 바라고 있다. 또한 세계 시장으로의 영향력 확대를 노리는 MLS에게 아시아 시장의 노른자위라 할 수 있는 동아시아는 실력 그 이상의 가치를 뽑아낼 수 있는 선수들이 즐비한 ‘자원의 보고’인 셈. 이러한 측면에서 빅리그 진출을 원하는 K리그 선수들에게도 MLS는 또 다른 기회의 땅이 될 전망이다.
축구화 끈이 느슨해진 스타플레이어들이 선수 생활을 마치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곳. 이제 막 축구화 끈을 질끈 동여맨 젊은 재능들이 새로운 꿈을 바라보는 곳. 애초에 MLS는 꿈이 멈추는 종착역이 아니라 새로운 꿈이 시작되는 환승역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저마다의 사연과 꿈이 치열하게 교차되는 ‘환승역’, 2016시즌을 앞두고 있는 MLS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