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부터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학창 시절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언젠가 이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가졌습니다. 그리고 15년간 간직해 온 그 생각을, 드디어 실행에 옮기기로 합니다.
저는 4살에 한 보육원에 보내졌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제 어린 시절의 첫 기억은 따뜻한 가정에서 살고 있는 7살의 기억에서 시작합니다. 막내딸로서 사랑을 듬뿍 받는 삶을, 인생 가장 첫 번째로 기억하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 가정에서 받은 사랑이 세상 누구보다 크다며,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글로 표현되지가 않습니다.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붉혀지게 만드는 이 사랑을 제가 감히 표현할 수 있을까요.
대체 제 어머니는, 저의 가족들은, 어떤 존재이길래 이유 없는 사랑을 저에게 줄 수 있었을까요. 입양아라는 사실을 단 한 번도 의심을 할 수 없었거든요.
늘 뜨거운 눈물로 저의 아침을 깨우시는 어머니와, 늘 저의 안전을 책임지는 아버지와, 그리고 퇴근길에 제가 먹고 싶은 게 없는지 연락해 오는 형제들을, 제가, 어찌 감히, 같은 피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요.
어머니는 입양 사실을 알려주신 날에, 저를 가슴으로 낳았다고 표현하셨습니다. 목이 메시는지 한 자 한 자 천천히, 눈물을 쏟아내시는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배 아파 낳은 자식보다 가슴으로 낳은 딸이 백배 아프다며 가슴을 퍽퍽 치시는데 그저 안아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고백하시는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도, 아니 세상 끝나는 날까지 깨달을 수 없을 것 같았거든요. 지금도 표현할 길이 없어, 그저 매일 감사하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희 가정은 가난했습니다. 평범했다고 생각하려니, 나이를 먹고 세상을 깨닫게 되며 참 가난했었구나.. 알게 되었습니다.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아 큰 대야에 물을 펄펄 끓여 저를 씻기셨고, 부엌과 다락방엔 쥐가 지나다니는 집이었습니다. 이런 가정에서 어떤 마음으로 저를 품어오신 건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모르겠습니다만, 1996년 제가 4살이던 해에는 입양을 위해선 경제적 여유가 있는 것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집은 단 1개월도 저축하지 못하는 형편이었지요. 아버지 혼자 벌어 다섯 식구를 먹여 살리셨거든요.
그래서 저희 부모님은 친척들과 주위 이웃들에게 돈을 빌리러 다니셨습니다. 저를 당신들의 가족으로 데려오기 위해, 저의 생명을 거둬주시기 위해서겠지요. 단지 그 이유 하나만으로 고개를 숙이시며, 어려운 도움을 청하셨을 거예요.. 그리고 6년이 지나, 저는 드디어 호적에 오르게 됩니다.
아직까지도 어머니는, 타향살이하는 저의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드십니다. 출발하기 전에는 제 좌석의 창가 쪽으로 오시고는 하염없이 저를 바라보십니다. 그리고 버스의 시동이 켜지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마지막까지 달려오십니다.
.. 이 사랑을, 어떻게 세상에 표현할 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지금, 글로 쓰려했던 것도 엄청난 오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감히, 글로 쓸 수 있겠다고, 그리고 이 사랑을 누구보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얼마나 멍청한 짓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제가 받은 사랑을 제대로 쓸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이 글을 쓰는데도 눈물이 멈추질 않고, 가슴이 먹먹하며 손이 저릿합니다. 무엇보다 어찌 글로 표현할 수 있을지, 지금 써보니 막막합니다. 어머니와 가족들의 그 순고한 사랑과 희생이 절대 폄하되지 않길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용기 내어 쓰려고 합니다.
저의 인생을 통해 아주 조금이라도,
누군가의 삶에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친모에게 버려지고, 첫 양아버지에게 또 버려졌어도, 지금의 가정을 만나 꿈을 가지고 인생을 기적처럼 살고 있습니다.
결핍으로 시작한 삶의 이야기가 세상 어딘가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게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이유 없이 사랑해 줄 누군가가, 분명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음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저도 용기내어 조금씩, 세상에 꺼내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