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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물로 보냐(2)

뭘 보니?! 절절대 깨닫지 못해야 하는데...

by 명랑처자


<1편에 이어 2편이다.>


사실 더 길게 쓸 수도 있는데 그렇게 정이 남아있는 모교도 아니고, 그렇다고 깨닫게 해 주고 싶지도 않다. 욕도 아깝기도 하고, 그냥 찔릴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모를 수도 있을 것도 같다. 그럼 그냥 깨닫지 말고 살기를 바라본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1년이 겨우 지나고, 죽지 않고 살아있는 시간이 고2를 거쳐 고3이 되어 하루하루가 평화로웠던 햇빛이 아주 뜨거운 여름날이었다. 이런 날 3학년들은 '하복 디자인'이 바뀌게 되며 마지막으로 입는 날이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 반 친구들은 이제 물려줄 필요도 없는 하복에다 서로 낙서를 하기 시작했었다. 그것도 반장이 제일 먼저 시작했고, 나를 비롯한 몇 안 되는 인원은 낙서하지 않았지만, 대부분은 서로에게 해 줄 말들을 서로 써주며 신이 났었다. 어느새 다른 반까지 소문이 나고, 전체 고3 친구들 중 낙서를 한 친구들이 꽤 많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 난 원래 물건을 깨끗하게 사용하다 보니 '교복'도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싶어서 '낙서금지'를 부탁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게 옆 반이었던 '미친 터미네이터'가 우리 반에 와서 갑자기 꼭지가 돈 사람처럼 화를 내기 시작했다. 욕도 아주 촌스럽게 하면서 말이다.


"교복에다 낙서 한 새끼들 다 나와!!!"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반장은 "시작은 제가 했습니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라고 말하자
오른쪽 발로 반장의 허벅지를 '뻥~'하고 공처럼 찼다.
반장은 그대로 앞 문을 등으로 열게 되면서 엉덩이로 착지가 됐고,
이후 누워있게 되었다.



낙서를 한 친구들은 우리 반에만 있는 게 아니었지만 우리 반 친구들만 노렸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우리 담임이 디스크 수술을 하기 위해 며칠 휴가를 낸 상태라 부재였다는 거다. 아니면 우리 담탱이가 이사장 아들이기 때문에 이러는 건지 난 그 당시에 물어보고 싶었다. 반장의 '본인이 모두 책임을 진다는 말에 대해서 더 열을 받은 미친 터미네이터는 반장의 볼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안 그래도 돈 주고 한 이빨이 몇 개 날아가고, 나중에 멍이 들 정도로 얼굴과 발로 찼던 부위 모두 멍이 들었다.' 아직까지도 '미스터리' 중 하나인데 그렇게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반장은 왜 본인의 엄마 깡패를 만났던 거라고 얘기했을까?! 정말 궁금합니다...ㅜㅜ;



반장이 거의 실신해 있는 상태에서 나머지 친구들에게는 '벌'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 '타이트스커트' 형태의 치마가 하의 교복이라서 많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벌을 준 상태였다. 아주 그냥 똑같이 입고, 똑같이 벌을 서 보라고 말하고 싶었다. '욕 한마디 시원하게 해 주고 싶었다.'


미친 터미네이터는 "엎드려뻗쳐~~!!! "라고 외쳤다.


땡볕에서 30분 넘게 벌을 받고 있다 보니 연달아 기절하는 친구들이 생겼다. 그렇다고 '그 미친 터미네이터'는 기절한 친구들이 있다고 말해도 반응이 없었다. 아주아주 조금이라도 기대했던 내가 바보였다. 슬슬 매를 구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그날도 청소도구 중 하나를 골랐다. 그러고 나서는 움직이지 말라고 하더니 그때부터 10대씩 때리기 시작했다. 비명소리와 함께 까무러치는 상태의 친구들도 생겼다. 그나마 다행인 건 뺨은 때리지 않았다. 하지만 '신발 신은 상태로 하나하나 허벅지를 차기 시작했다' 이거 진짜 미친 거 아닐까 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병원을 보내버리고 싶을 정도로 보고 있기 힘들었다.



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어이도 없지만 용서할 수 없어서 갑자기 화가 머리끝까지 나고, 눈물이 앞을 가렸다. 이래서 '살인'이 생기는 거구나'라고 속으로 나도 모르게 말했다. 그러다 난 서러움과 억울함으로 종교는 없지만 간절하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비슷할 수는 없어도 하늘의 벌을 내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난 '교육청'에도 전화를 했다.
학급 선생님한테 구타를 당했는데 신고할 수 없냐"라고 물어봤다.
그러자 당장에 준비할 수 없는 걸 요구하며 모두 준비가 가능할 때 재전화 달라고 말했다. 그래서 난 어쩔 수 없이 포기하고 말았다.



우리는 그날 이후로 '쥐 죽은 듯 학교를 다녔다.' 어느새 담탱이가 퇴원하고, 출근을 하 시작한 날이었다. 담탱이는 아주 평화로운 표정인데 우린 그날 이후로 담탱이가 왔어도 암울했다. 나 역시 그랬다. 뭐라도 해야 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난 '자율학습'시간에 담탱이한테 가서 지난 교복사건을 전달하며 서럽게 울었다.



하지만 이 날 이후로 담임도 변화되는 건 없었다. 그래서 좀 더 해 보지 못했던 그때가 참 많이 후회가 됐다. 반장에게는 앞니가 몇 개 깨졌으니 담탱이가 영수증을 청구하면 치료비를 내주겠다고 말을 했다고 한다. 이렇게 말하는 데도 반장은 거절했다. 이 사건에 대해 돌이켜 보면 이해가 안 되는 부분 중 하나였다. 그래도 우리 바로 밑에 후배들이 구타 중 경찰서에 신고하는 일이 생겼다. 몇 년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학교 한 학년 아래 후배들이었던 것 같다. 이 기억은 가물가물해서 맞지 않을 수 있다.


"나의 간절한 바람이 전달되었던 건 아닐까?!"



몇 년 전인가 "친구의 친구 중에 한 명이 모교 '교생선생'으로 학교를 갔다가 '미친 터미네이터'가 다리를 수술했는지 제대로 걷지 못한다"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역시 사람은 죄를 짓지 말고 지내야 한다.



"하늘에 감사하고, 이제부터 하늘이
나의 종교라고 생각해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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