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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룡 Dec 19. 2018

별똥 떨어진 데

일하는 마음


유난히 바쁜 시즌이다. 아침부터 회사 사람들이 ‘자잘한 일, 지금 당장’이라는 조건으로 종일 이름을 불러대는 바람에 안그래도 빨간 내 얼굴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울긋불긋했다.   

저녁 9시쯤 기름에 절은 얼굴을 하고 땅속에 묻혀있는 사무실을 나왔을 때 바깥은 고요하고 습한 여름 저녁이었다. 터벅터벅 걸음을 걸을 때마다 발바닥이 신발에 달라붙었다. 여름엔 신발이 빨리 삭는다.  


파랗게 반짝이는 서울타워를 올려다보며 문득 언제부턴가 아무 일에도 마음이 설레지 않음을 느꼈다. 문득 버킷리스트였던 세계 여행들이 귀찮아졌다. 문득 춤을 추지 않게 된 지 1년이 넘었음을 깨달았고, 이제는 나무 위에 기어 올라갈 용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 기분으로 집에 가고 싶지 않아서 남자친구를 광화문으로 불러냈다.


남자친구는 친구들과 치킨을 먹으려다가 나온 거라서 나에게 갈릭 치킨을 먹으러 가자고 했고, 우리는 자주 가던 체인점에 들어갔다. 치킨은 이름처럼 오븐에 구워졌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풍미가 없었다. 한창 치킨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남자친구의 휴대폰 창에 호우주의보 메시지가 떴다.  

“뉴스 봤어? 오늘 유성우 쏟아진대.”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별똥별을 본 적이 없다고, 그래서 스물세 살에 작성한 내 버킷리스트에는 별똥별 보기가 적혀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남자친구가 쿨하게 대답했다.

“그럼, 지금 보러갈까?”  

나는 치킨을 바르다 말고 남자친구를 바라보았다. 마치 그가 “지금 남미에 갈까?”라는 말이라도 한 것 처럼. 나는 언제 어디서 누가 시작했는지는 몰라도 그 순간에는 쓰지 말았어야 했던, 너무 고루하고 식상한 멘트를 쿨한 척 날렸다.  

“그래! 인생 뭐 있어?”


신이 난 우리는 세종문화회관 지하주차장에서 쏘카를 빌려 네비게이션에 윤동주 언덕을 찍었다.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소담하고 조용한 부암동 일대를 올라가는 동안, 나는 나쁜짓이라도 하려는 청소년처럼 가슴이 쿵쾅거렸다.   

부암동 곳곳에는 이미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고 서로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고개를 들고 하늘을 두리번거렸다. 우리는 그 풍경에 섞여 사람들과 똑같이 두리번거리는 우리가 쑥쓰러워서 같이 웃었다.

그렇게 삼십분. 목이 뻐근해 오고 왜인지 허탕을 치고 돌아갈 것 같은 예감이 엄습할 즈음, 무작정 올라간 계단 위에서 불꺼진 카페를 발견했다. 윤동주 문학관에서 운영하는 카페였다. 남자친구와 나는 영업이 끝난 가게의 테이블 의자에 앉아 불량한 자세로 한동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불빛 없는 땅에서 바라보니 별들이 한층 더 밝게 반짝였다.

천가방 안에 있는 책과 지갑, 엉킨 이어폰 줄과 영수증 몇 장을 만지작거리며 무료한 시간을 보냈고, 이천 오백 삼십 마리의 모기들을 묵묵히 견디며 남자친구와 시시콜콜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러던 중 언제라고 표현할 수도 없는 짧은 ‘그때’에, 별똥 하나가 청순한 자태로 떨어졌다.


버킷리스트 위로 빛나는 꼬리표가 주욱 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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