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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룡 Feb 14. 2020

묶인 하루, 풀린 저녁

산책기

갤포스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참 요긴한 약입니다. 오늘은 빈츠 두 개와 쌀전병 두 개와 초코우유를 간식으로 먹었고, 이번주에 받은 스트레스 때문인지 아니면 계속 방황하는 머리가 시끄러운 탓이었는지 윗배가 아렸습니다.

전철 바닥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집으로 오는 길, 나는 가방에서 약주머니를 꺼내 그 밑에 깔려 있는 노란 갤포스 한 포를 꺼내 짜먹었습니다. 나는 그 조그만 약주머니를 열 때마다 뿌듯합니다. 그 안에는 소독에 좋은 안약, 밴드, 생리대, 효과가 좋은 진통제, 그리고 갤포스가 있습니다. 모두 아주 필요한 것들이지요. 머리가 아플 때에나 언제 생리가 시작될지 모르는 불편한 시즌에도 나를 담담하게 만들어주는 친구들입니다. 아픈 위를 견디며 집에 왔던 오늘도 그랬어요. 갤포스는 맛있었고, 위는 금새 좋아졌습니다. 아플 것을 예상하지 못했던 날, 갤포스가 이렇게 내 손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 일인지 모릅니다. 그것은 슬픔이나 절망까지도 어느 정도는 잠재워주는 효과가 있을 정도입니다. 몸이 아프면 서러워지니까요.

내가 위가 아팠던 이유는 하나, 회사 일 때문입니다. 최근에 매거진 개편 회의를 했거든요. 아이디어가 잘 나지 않는 것도 스트레스인데, 역시나 팀장님은 회의가 시작되고 얼마 안가 소리부터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상사가 소리를 지르고 짜증을 내는 것,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이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 짜증이 나를 향한 것이든 아니든, 곁에서 그것을 보고 듣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그건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일이니까요. 공격당하는 누군가는 당황스럽고, 아프고, 두렵고, 수치스러울 수밖에 없으니까요. 함부로 대해도 되는 부하가 있고, 멋대로 소리를 질러도 되는 상사가 존재하는 세상이 싫습니다.


또 위가 아팠던 이유는 그래서, 나는 왜 일을 좋아하지 못하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어딘가에 묶여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냥 내 마음대로 휙 조직을 나오거나 맺기 힘든 관계를 종이 접듯 접기가 복잡해지는 어른이 싫습니다. 이런 고민을 하는 나의 복잡함도 마음에 안듭니다.

문득 누군가의 밑에서 일하는 것보다 호콩을 먹으며 거리를 걷는 것이 더 좋다던 피천득 시인의 친구의 말이 생각났어요. 그래서 점심시간에는 40분 정도를 걸었습니다. 오늘은 내수동 골목 끝까지 가보았어요. 금방 막다른 길이 나왔습니다. 단독주택을 개조한 스튜디오가 있더군요. 옆 골목으로 넘어가서 다시 끝까지 걸었습니다. 급하게 경사진 길이 나오더라고요. 종로가 원래 그렇습니다. 올라가고 올라가서, 의류함마저 비스듬하게 서 있는 경사진 골목 어귀에서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는 걸음을 돌렸습니다. 한낮인데도 사람이 없고 낯선 곳에 있으니 무섭더라고요. 멀리서 어떤 남자가 불쑥 나타나는 것을 보고 괜히 활기차게 도망을 쳤어요. 그거 아세요? 어깨를 펴고 팔을 흔들며 당당하게 걷는 것만으로도 이유 없는 폭력이나 해코지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이건 남자와 여자를 불문하는 팁이에요.


아무튼 40분 동안 걸으며 느꼈던 것은, 이 종로라는 곳이 봄과 무척 잘 어울리는 곳이라는 사실이었어요. 저는 봄마다 그걸 느낍니다. 종로의 골목과 길은 초봄과 참 잘 맞는다고. 그 순간은 봄이 더 좋은지 종로가 더 좋은지 구분할 수조차 없어집니다. 그냥 목적지도 없이 골목골목을 막 걷는 그 자체가 행복이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야외 포차에 둘러앉아 커피를 마시는 직장인들을 보았고, 뻥튀기 아저씨가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코미디언들이 신나게 오프닝을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공포 속에서도 사랑을 잃지 않는 남좌, 아무개입니다”라고 하더군요. 코로나19의 공포와 사랑이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얀 봉지에 들어가 있는 색색의 뻥튀기들은 예뻤습니다. 그리고 다섯 시간 동안 일을 했죠. 오늘은 사무실이 비어서 창밖 구경도 잠깐 했습니다. 고양이가 지나가고, 남자 회사원이 담배를 피고, 한 무리는 전화를 하고. 눈을 감고 바람을 맞기도 했는데, 그게 참 좋으면서도 울적했어요. 작작좀 울적했으면 좋겠습니다.


다섯 시간은 금방 지나갔고, 저녁에는 초록색 내의를 입은 채 화장실에서 유행과 상관없는 춤을 췄습니다. 기분이 좋았어요. 여전히 수많은 고민에 묶여있음에도 춤을 췄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 순간 만큼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요. 하루에 한 번 퇴근이라는 것이 있고, 1분이라도 춤추는 시간이 있고, 몇 시간은 가족들과 TV를 보거나 밥을 먹거나 곶감, 고구마, 보리차 이런 것을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요즘입니다.


머리를 감고나서 말리면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지만 여전히 대머리가 아닌 것을 보면 새 머리카락이 자라고 있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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