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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슨트 교육 - 2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야

by 지금은 딴짓 중

두 번째 교육은 보이는 것에 관한 이론 교육이었다. 강연자는 한의정 교수였다.

(본 글도 앞선 글과 마찬가지로 미술에 과문한 학생의 정돈되지 않은 글이기에 오류가 많다는 것)


우리가 ‘본다’고 말할 때,

그게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냥 눈으로 보면 되는 거 아니야?”

맞다. 그러나, 우리가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건, 사실 굉장히 복잡한 과정이다.

이것이 곧 ‘시각체계(visual system)’을 뜻하는데,


시각체계는 뇌과학, 생물학의 영역이다.

한마디로, “어떻게 보는가”, 즉 내 눈앞의 사물 — 이를테면 책상 위의 사과 하나가

빛을 반사해 내 망막에 상을 맺고, 그게 시신경을 따라 뇌로 전달되고,

결국 ‘아, 이건 사과구나’ 하고 인식되는 그 전 과정을 말한다.


그러니까 시각체계는 굉장히 물리적이고 생물학적인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내 눈이 있고, 사물이 있고, 그걸 바라보는 위치가 있고, 거리와 각도, 빛까지 모두 영향을 미친다.

이건 마치 카메라 렌즈의 조리개와 초점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와도 닮았다.


모더니즘이 등장하기 이전, 예술가들은 이 시각체계에 주목했다.

그들에게 예술이란 보이는 것을 충실히 따라가는 행위였다.

그림은 세상을 모사해야 했고, 붓은 현실을 배반해서는 안 되었다.


“정확히 본다는 건 무엇인가?”

그 질문은 시각에 대한 집요한 탐구로 이어졌다.


일부 화가들은 더 잘 보기 위해 특수 제작된 안경을 착용하기도 했다.

또 어떤 이들은 대상과 캔버스에 똑같은 격자를 그려 넣고,

한 칸 한 칸씩 현실을 치밀하게 옮겨냈다.

그 격자 안에서 사과는 정확히 사과여야 했고,

그림자는 정확히 그 각도여야만 했다.

예술가는 마치 과학자처럼 정밀한 시각 기계를 조작하는 존재였다.

또, 대상을 더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 원근법 기술이 사용된다.


그런데, 이 시각체계에 대하여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시각체제(scopic regime)’를 이야기한다.

여기에는 정치와 문화, 권력이 개입한다.


시각 체제는 대상을 정확하게 보고 있는냐가 아니라,

“무엇을 보게 허락받았는가”,

그리고 “어떻게 보게 길들여졌는가”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 중세 시대 사람들에게 하늘의 빛나는 별은 천상의 질서였고,

왕의 초상화는 신의 은총을 상징했다.

그 당시 사람들은 ‘그렇게 보도록’ 배운 것이다.

그게 바로 시각체제이다.


화가들은 원근법이라는 시각체계 위에 세계를 그려냈다.

멀리 있는 것은 작게, 가까운 것은 크게

모든 대상은 하나의 소실점으로 질서정연하게 모아졌다.

그리고 그 질서 속에서 캔버스는 하나의 창문이 되었고,

관객은 그 창을 통해 ‘사실 같은 세계’를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예술가들은 그 질서에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왜 우리는 세상을 그렇게만 봐야 하지?”

“왜 한 시점에서, 한 방향으로, 한 세계만을 보여줘야 하지?”


이러한 물음은 점차 그리기의 방식 자체를 흔들어 놓는다.

그리하여 캔버스 위의 세계는 점점 불안정하고 다층적이며, 때로는 의도적으로 왜곡된 방식으로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모더니즘 시대 부터 시각체제를 중시하는 작품들이 등장하였다. 마네는 대상이 관객을 응시하더록 그리면서 누가 누구를 보고 있는지 헷갈리게 만들었다.

세잔은 회화 안의 복수의 구도를 표현함으로 회화에는 하나의 공간적 질서만이 존재한다는 기존의 통념을 비판하였다.

그 유명한 뒤샹의 소변기 설치 미술은

'네가 늘 보아오던 소변기가 미술관에 전시된다고 해도 여전히 소변기 인가'라는 질문을 관객에게 던졌다.


두 번의 전쟁이 지나간 시점.

회화의 물감은 총성과 화염을 머금었고, 현실의 폐허와 뒤엉켜 있었다.

이제 예술은 더 이상 ‘무엇을 아름답게 그릴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무엇을 보게 만들 것인가’,

그리고 ‘이제 무엇을 감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이 되었다.

바로 이 시대, 두 개의 시선이 서로를 향해 날을 세웠다.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 — 초현실주의의 선언자.

그는 믿었다. 예술은 무너진 현실 너머로 가장 이상적인 세계,

유토피아를 보여줄 수 있다고.

그에겐 예술이란 무의식과 꿈을 풀어낸 고귀한 주문이자,

정신의 해방을 향한 통로였다.


“현실이 지옥이라면, 예술은 천국을 그려야 한다.”


브르통에게 시각은 해방의 언어였다.

그는 예술을 통해 인간의 무의식, 억압된 욕망, 숨겨진 낙원을 드러내고자 했다.

유토피아는 결코 완성되지 않더라도,

가능성을 꿈꾸는 일 자체가 인간다움이라 믿었다.


그러나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는 전혀 다른 말을 꺼낸다.

그는 인간의 내면에서 유토피아가 아닌 혼란과 파열,

그리고 공포를 보았다.


“인간은 유토피아를 그릴 수 없다. 그가 그릴 수 있는 것은 오직… 혼돈뿐이다.”


바타유에게 예술은 치유의 도구가 아니었다.

오히려 예술은 인간의 가장 불편한 진실들 — 죽음, 공포, 파괴 — 을

직면하게 만드는 거울이었다.

그의 시각체제는 이상을 제시하기보단,

사회가 외면하는 진실들을 들추는 해부학적 시선에 가까웠다.


한편, 모리스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는 여기에 전혀 다른 대답을 제시했다.

그에게 보는 것은 눈의 일이 아니라, ‘몸’의 일이었다.


우리는 대상을 바라볼 때,

단지 시선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로 그 사물에 다가서고,

그 감각 안으로 잠겨 들어가는 존재다.

메를로-퐁티에게 예술은 단순히 세상의 외형을 묘사하는 기술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내 감각이 세계를 ‘살아낸 방식’을 표현하는 행위였다.


“나는 세계를 생각하기 전에, 이미 살을 통해 느낀다.”


그는 예술가를 이렇게 바라봤다:

그림을 그리는 손은 단지 도구가 아니라,

살아 있는 감각의 연장이며,

그 붓끝에는 ‘보는 나’가 아니라

‘느끼는 나’가 존재한다.

그래서 메를로-퐁티의 사유에서 회화란,

세계의 이미지가 아니라,

감각 그 자체가 남긴 자국이다.


우리가 캔버스를 바라볼 때 느끼는 것은,

단지 색과 형태가 아니라

그 감각을 통해 사물을 ‘겪은 한 인간의 존재감’이다.

메를로-퐁티는 결국 이렇게 말한다.

예술은 보이는 것을 넘어서,

몸이 살아낸 세계의 체험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 순간,

‘보다’는 것은 단순한 정보처리가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가 세상과 맺는 깊은 관계가 된다.


몸의 체험을 가능하게 하는 현대 미술의 작품들은 퐁티의 철학적 사유를 표현했다고 할 수 있다.



라깡


우리는 흔히 예술작품을 ‘본다’고 생각한다.

화면 안의 사물, 인물, 색채, 구도…

모든 것이 우리의 시선을 따라 구성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크 라캉(Jacques Lacan)은 이 익숙한 장면을 전복시킨다.

그는 말한다.

“응시는 단지 내가 대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대상 또한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감각이다.”

이를테면, 캔버스 안에 그려진 탐스러운 사과 하나를 보자.

우리는 그것을 바라본다.

그것의 붉은 곡선, 반짝이는 윤기, 입안에 침이 고이는 상상…


그러나,

실제로 먼저 우리를 보고 있는 것은 그 사과일지도 모른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사과를 그렇게 그려 넣은 작가의 의도, 욕망, 유혹의 시선

이미 그 화면 안에서 우리의 눈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라캉의 ‘응시’다.

응시는 단순히 시선의 교환이 아니다.

그것은 욕망의 순환,

즉 작가가 갈망한 것을 우리가 욕망하게 되는

무의식의 반사 작용이다.

“나는 본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나는 보여지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예술작품은 더 이상 ‘내가 소비하는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내 안의 욕망을 되비추고, 드러내며, 때론 흔드는 거울이다.


우리가 응시한다고 생각했던 그 사과는,

사실 우리를 향해 “원하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응시’의 철학은

단지 회화뿐 아니라, 사진, 영상, 광고,

나아가 우리 일상의 모든 시각문화에 깊은 통찰을 준다.

우리는 늘 본다고 믿지만,

사실상 ‘보도록 구성된 프레임’ 안에 갇혀 있는지도 모른다.



데리다 "눈먼자의 기억"


데리다는 한때 루브르 박물관의 전시를 맡아, ‘눈먼 자의 기억’이라는 제목 아래

그림과 시선에 대한 사유를 펼쳐 보였다. 그에게 예술가란 단순히 보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눈먼 자,

다시 말해 보지 않기에 더 깊이 ‘느끼는’ 자에 가깝다.


표면적으로 예술가는 눈으로 대상을 보고,

그 대상을 손으로 옮겨 그리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데리다는 말한다.

눈의 일은 과거에 끝났고, 예술은 손과 기억의 일이라고.

예술가는 더 이상 눈앞에 있는 것을 정확히 재현하려 하지 않는다.

그는 기억 속에 남은 인상과 감각을 더듬으며,

잊혀져가는 장면을 더듬듯 화면 위에 흔적을 남긴다.


그래서 예술은 단순한 ‘응시’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결여된 응시, 혹은 응시의 부재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우리가 보지 못했거나 잃어버린 것,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를 것들을 향한 애틋한 시선이다.


예술가에게 중요한 것은 눈으로 본 장면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지나간 이미지일 뿐이다. 그보다는 손끝에 남은 감각, 가슴속에 일렁이는 상상, 그리고 어딘가에 남아 있는 희미한 기억의 편린들이다. 바로 그 결여와 상실이 예술을 가능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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