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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기록 Jun 02. 2024

그날의 클래식

시아버지의 유품



  시댁 문턱을 처음 넘던 날, 어두운 거실을 겉돌던 클래식 음악은 뭐였을까? 어색한 공기와 클래식 음악이 대리석 무늬처럼 어지러웠던 그날의 어두운 예감은 머지않아 현실이 되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0년이 지난 후에야 그 클래식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작년까지 우리 집 발코니 창고에는 클래식 음악을 무척 사랑하셨던 시아버지의 유품인 스피커와 앰프가 모셔져 있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홀로 되신 시어머니는 지방으로 이사를 가면서 유일한 유품인 스피커와 앰프를 장남인 남편에게 떠넘기셨다. 스피커를 구입할 당시 아파트 한 채 값이었다며 아주 값비싼 보물을 주시는 거 마냥 하면서 20평 남짓 우리 집에 짐짝처럼 부려놓았다. 스피커만 떠넘긴 게 아니라 시아버지가 즐겨 듣던 CD 세 상자도 함께 딸려 왔다. 아무도 가지려고 하지 않는 스피커가 꼭 생전의 시아버지 같아 군소리 없이 받기는 했지만 발코니 창고에 모셔둘 수밖에 없었다.


   나는 큰 항아리처럼 투박한 스피커가 반갑지 않았다. 그 항아리가 한 개가 아니라 두 개라 더 심난했다. 가뜩이나 좁은 집에 덩치 큰 스피커는 이사 다닐 때마다 애물단지가 되어 발에 채였다. 발코니 창고에 처박힌 스피커를 보면 생전 시아버지 같아 차마 팔아치우지는 못 하고 중고 가격을 알아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아파트 한 채 값이라던 스피커는 수 십 년 세월이 흐르면서 아파트 한 달 치 월세로 내려가 있었다. 아버님, 후손을 위해서 조금 더 고급 아파트로 갔으면 좋을 뻔했습니다. 스피커 외에도 안 쓰는 여러 물건을 함께 받았는데 시어머니가 주신 물건들은 의외로 중고시장에서 돈이 되었다. 남편은 내 머릿속을 들여다본 것처럼 가지고 있으면 언젠가는 듣지 않겠냐며 스피커는 팔 생각도 말라며 못을 박았다. 


  시아버지는 90년대 전기자동차 연구원으로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 선천적으로 안 좋았던 눈이 더 나빠져 좁고 어두운 동굴에 갇히고 말았다. 모든 지위와 권력을 한 순간에 잃고 매달릴 무언가가 필요했던 시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 관심 있었던 클래식 음악에 중독되듯 빠져들었다. 결혼을 앞두고 시댁에 처음으로 인사 간 날, 발코니 창 너머 환한 밖과 대비 되게 어두운 거실은 문턱을 넘으려는 내 발걸음을 멈칫하게 했다. 거실보다 더 어둡던 방안에서 사람의 형태가 걸어 나왔고 나는 수줍게 인사를 드렸다. 시아버지는 이런 날에는 음악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며 우아한 클래식 음악을 틀었다. 어색하고 경직된 분위기를 누그러트릴 의무를 갖고 출동한 클래식이 온 집안을 헤매고 다녔다. 이 집은 이런 분위기인가? 내가 발을 잘못 내딛은 건 아닐까? 앞으로의 결혼생활에 막연한 불안과 클래식 음악이 마블링처럼 뒤엉켰다. 엉뚱한 처마 밑에 집을 짓던 제비가 이 집이 아닌가벼 하고 다른 집으로 날라 갔다는 전설이 있었던가.


  말주변이 없던 시아버지는 예비 며느리를 위해 고르고 골랐을 클래식을 틀어 놓고 음악에 대한 얘기를 활기차게 하셨다. 시어머니는 분위기를 못 맞춘다며 만찬에 앉은 파리를 쫓듯 시아버지를 방으로 쫓아냈다. 이 불쌍한 중년남자의 존재는 그 날 화장실 앞에서 말라가던 걸레처럼 낡고 가치 없어 보였다. 권위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나에게 그 모습은 코미디 같았다. 이 날 본 코미디는 훗날 블랙코미디의 예고편이었다. 한편 클래식 음악에 문외한인 나에게 시아버지의 고급스런 취향은 흥미롭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평생 술과 도박을 소일 삼으신 나의 아버지와 참 비교되는 대목이다. 이 날 보다 더 활기찬 시아버지의 모습은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다.


  젊은 시절 열정을 쏟아 일군 밭에서 풍년을 맞이할 직전에 집에 들어앉았으니 시아버지는 큰마음 먹고 장만한 스피커로 클래식 한 번 시원하게 들어보지 못하고 시어머니의 따가운 눈초리에 낡은 라디오에 이어폰을 꽂고 클래식 방송을 즐기셨다. 시댁에 가면 시아버지는 ‘어서 와라’ 짧은 인사만 내뱉고 자신만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셨는데 얼마 후 남은 가족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어두운 땅 속으로 영영 들어가 버리셨다. 어둡던 긴 세월을 클래식 하나로 버티신 시아버지 마지막 가시는 길에는 클래식이 아닌 가족들의 숨죽인 안도의 한숨이 대신했다. 20년 가까이 사회생활이 중단되어 조문객으로 온 시아버지의 지인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발인 전날 어떻게 비보를 전해 들었는지 시아버지의 오랜 친구가 조용한 장례식장에서 애달픈 울음을 한참동안 토해냈다. 어르신은 못 뱉은 울음을 속으로 삼키고 지팡이로 더듬더듬 짚으며 메마른 눈물 자국을 남기고 달팽이처럼 빠져나갔다. 장례식장은 일순 정적이 흘렀고 곡소리에 묻힌 안도의 한숨들은 놀라 숨을 죽였다. 시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시댁의 문턱을 처음 넘던 날 낯설고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갈피를 못 잡던 클래식 음악이 어떤 곡인지 영영 알 길이 없어져 버렸다.


  올해 초 30년 만에 소환된 80년대에 활동한 가수 영상을 유튜브로 찾아보다가 4인조 그룹사운드 잔나비라는 샛길로 빠져버렸다. 잔나비 CD를 사고 보니 집에 CD플레이어가 없어서 남편과 함께 발코니 창고에 있던 스피커를 거실로 꺼냈다. 스피커는 10년 동안 이고 지고 네 번 이사를 다니면서 모서리가 많이 망가져 있었다. 과연 소리를 낼 수 있을까? 

 

  아파트 한 채 값에 버금가는 스피커의 값비싼 소리를 맞이할 생각에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앰프와 스피커를 설치하고 폭죽에 불을 붙이듯 코드를 꽂고 전원을 눌렀다. 나와 남편은 숨죽이고 기다렸으나 아무 소리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포기하고 코드를 뽑으려던 순간, 탄내가 코를 스치더니 앰프에서 하얀 연기가 향처럼 피어올랐다. 긴 시간 앰프 속에 갇혀 저 세상으로 가지 못한 시아버지의 영혼일까? 그 광경은 마치 ‘나 여기 있었다’ 시아버지의 마지막 메시지 같았다. 시아버지를 가렸던 그 어둠은 보이지 않았다. 사라지는 연기를 눈으로 붙잡으며 그날 들려준 클래식 음악이 뭐였는지 묻고 싶었다. 우리 집 거실과는 어울리지 않는 묵직한 영국제 스피커가 그 날의 클래식을 알고 있는 듯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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