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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기록 Aug 19. 2024

친구가 한 명도 없어도 괜찮을까? #2

친구 안 만나고 사는 1년




  인생 후반기에 접어들었다. 40대 중반이 되니 친구에 대한 미련이 사라졌다.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을 친구라고 한다는데, 그럼 나에게 친구는 몇 명쯤 있을까? 작년까지만 해도 친구관계 때문에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허비했다. 그런 시간도 있어봐야 유효기간 꽉 채운 친구관계를 미련 없이 끝내지. 막연히 내 장례식장에 친구 없을까봐 전전긍긍했다. 현생도 힘든데 사후까지 걱정하며 친구를 사귀어야 하다니 무슨 바보 같은 짓인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여유가 생겨 고등학교 동창들과 정기적인 만남을 갖기 시작했다. 그 친구들과 몇 년 전 국내여행을 다녀왔는데 미묘한 기류로 3년간 연락이 뜸하게 되었다. 그 중 한 친구는 만나면 시간이 줄어드는 게 아쉬울 정도로 재미있고 유쾌한 성격이라 이대로 끝나길 원치 않았다. 시시콜콜한 일상을 자주 주고받던 사이였는데 1년이 다가도록 문자 한 통이 없길래 내가 먼저 문자를 보냈다. 다행히 읽씹은 하지 않았다.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리던 대화는 사라졌고 형식적인 안부를 고객 상담 센터 직원처럼 주고받았다. 또 1년이 지났다. 이번에도 내가 먼저 문자를 보냈다. 친구는 그동안 그 많은 안부를 어떻게 참았는지 내가 답하기 바쁘게 다음 질문을 토해냈다. 만난 적 없는 내 친구의 안부까지 물어왔다. 뭔가 중요한 말을 앞두고 밑밥을 까는 느낌이 들었다. 슬슬 대화가 피곤해질거 같아서 다음에 연락하자 하고 서둘러 문자 교신을 끝냈다. 


  나는 친구들과 돈거래를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어디에 쓰는지 모르겠지만, 전업주부가 왜 수 백 만원 돈이 빵구 나는지 모르겠지만, 그 친구가 돈을 빌려달라고 했을 때 선뜻 빌려줬었다.  얼추 받긴 했지만 전액을 다 돌려받진 못했다. 친구는 갚아야 할 돈 대신 김장김치를 보내주었는데 이자까지 톡톡히 받은 셈인가? 

 언젠가 한 친구가 그 친구의 어깨를 감싸며 말했다. 

“내가 돈은 못 빌려주지만 도움이 필요하면 뭐든 도와줄게.”

내 앞에서 둘이 지란지교 절친인 걸 강조했다. 그 필요한 일이 돈이라는데, 뭘 도와준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엉킨 실타래처럼 꼬여버린 관계를 회복하려고 애를 썼다. 근데, 인간관계가 한쪽만 노력한다고 해서 굴러가는 게 아니다.  친구를 하나씩 지운다면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 친구였다. 불현듯 이제 내 인생에서 저 친구는 빠져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다 어느 순간 미련의 끈을 놔버렸다. 한때 친구라는 인연으로 즐거운 시간 보냈으면 됐다 생각하니 서운함 보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나대로 잘 살고, 너는 너대로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인간관계로 인해 일상이 깨지면 이만저만 손해가 아니다. 꾸준히 하던 식단도, 꾸준히 하던 운동도, 계획했던 일도 꼬이게 된다. 그럴 때 유튜브로 인간관계에 관한 영상을 많이 찾아봤었다. 영상 아래에는 2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계층에서 느낀 솔직한 댓글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달렸다. 그 중에서도 어르신들의 연륜이 녹아있는 댓글을 유심히 봤다. 댓글을 남긴 어르신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모르겠지만 대부분 억지로 친구관계 유지할 필요 없다고 했다. 친구란 게 잘 되면 시기 질투하고 친구의 자식 자랑, 돈 자랑에 치여 허탈하고 진 빠져서 집에 오면 드러누워 있어야 하고 차라리 그 시간에 책 읽고 악기 배우며 하고 싶었던 취미생활을 즐긴다는 댓글이 많았다. 저 연세에도 허울뿐인 친구는 없는 게 좋다고 하니, 아직 젊고 건강한 40대에 친구관계에 휘둘리지 않고 소중한 시간을 자신에게 쓰면 얼마나 좋을까?  


  나이 들수록 친구의 불행에는 함께 슬퍼해 줄 수 있지만 기쁜 일에는 진심으로 축하하는 건 어렵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그걸 알고 언제부턴가 좋은 일은 혼자만 간직하게 됐다. 덩달아 흠이 될 얘기도 숨기게 됐다. 좋은 일은 발설했을 때보다 함구하는 게 더 짜릿하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됐다. 그 친구가 계기가 됐는지 올해는 적극적으로 사람을 안 만나기로 했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즐거움, 불쾌함 등 모든 감정을 차단해보고 싶었다. 100년이 채 못 되는 일생 중 1년 정도는 사람에 얽매이지 않고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으로 채워보고 싶었다. 안타깝게도 올 초에 계획이 어그러졌지만 친구 명맥을 유지하기 위한 정기적인 만남은 갖지 않고 있다. 반년이 지났는데 관계는 더 산뜻해졌고 마음은 더 상쾌해졌다. 내년에는 이 계획이 성공하길 바라며 지금부터 친구와 지인에게 언질을 주고 있다. 친구 안 만나고 사는 1년은 어떨까? 


온라인 커뮤니티에 친구관계 푸념 글을 올렸더니 누군가 댓글을 남기고 갔다.

‘돈 없어 못 살지, 사람 없어 못 살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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