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RST SLAMDUNK
미쳤다 그냥. 먼저 말해두자면 나는 슬램덩크를 그닥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면 싫어한다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는데 워딩 그대로 그렇게나 많이 좋아하지는 않는 정도. 보통 사내들끼리 슬램덩크를 논하자면 누가 더 좋아했는지 자웅을 겨루느라 난리가 나는 경우가 있는데 난 고정돈 아니란 얘기. 그렇다고 해도 워낙 그 시절의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았던 지라 다 봤고, 다 가지고 있었고, 이노우에 타케히코(후 이노우에) 센세의 그다음 작품들도 꾸준히 지켜봤다.
그러나 이번 극장판에 있어서는 ’이제 와서 극장판이 개봉한다고?! 읭?! 굳이? 극장에서? 저걸 누가 봐?‘란 생각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지인들이 보고 와서 찬사를 쏟아내는 걸 보면서도 잘 이해를 못 했다. 뭐 “그 시절의 캐릭터들이 살아 움직이는 걸 봤다.”느니 할 때도 내심 속으로 ‘그때도 애니화 됐거든요~ 그때도 극장판 개봉했거든요~‘라고 생각했을 뿐.
하지만 마침 오랜만에 저녁에 시간이 나 심심해하던 차에 이번 극장판에서는 송태섭이 주인공이고, 오키나와 출신이란 설정 등이 상세하게 묘사된다는 말에 급 당겨서 보고 왔다. 감상 후기는 맨 첨에 남겼듯 그냥 미쳤다. 단순히 재밌다고 말하기에는 뭐랄까 너무 복합적인 감정이 끓어오르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캐릭터들이 하나하나 살아 숨 쉬게,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게 만들어졌는지, 상대 팀조차 미워할 수 없게 만들 수 있는지… 이노우에 센세의 능력에 감탄을 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보며 그의 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우선 일본에서는 만화가 성공하면 일반적으로 애니메이션(후 애니) 작업이 진행되는데 이때부터 ‘어른들의 사정’에 의해 애니에서는 원작자의 의견이 배제되는 경우가 있다. 아니 실제로 그것들이 흔하게 자행된다. 드래곤볼이 그랬고, 바람의 검심이 그랬고, 슬램덩크가 그랬다. 그리고 그 원작자들은 자신들의 작품이 애니화되어 시장의 논리로는 큰 성공을 했음에도, 원작이 훼손되었다는 것에 대한 큰 실망을 독자들에게 솔직하게 전달하곤 했다. 바로 얼마 전 국내에서도 예전에 큰 사랑을 받았던 만화 아일랜드가 십수 년 만에 티빙을 통해 드라마화되었는데, 내용을 담당하셨던 윤인완 작가님께서 공개 전 소셜미디어를 통해 아주 극찬을 하셨기에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감상했건만 결과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런 실망의 찰나에 감상했던 슬램덩크였기에 더더욱 이노우에 센세의 능력과 집념과 선택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앞서 말했듯 슬랭덩크는 이전에도 수차례 애니화 되었으나 아마도 그 대부분은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완성되었던 것 같다. 그로 인해 원작자의 의도를 그대로 살린 애니화에 대한 염원은 그에게도 엄청난 것이어서, 이번 극장판에서는 그가 의도한 대로 대부분의 작업 방식이 리부트 된 것으로 알고 있다. 가장 크게 이슈가 되었던 두 가지만 이야기하자면 성우진의 전면 교체와 2D에서 3D로의 선회. 먼저 성우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일본이든 한국이든 성우에 대한 큰 관심이 없는지라 다행히도 큰 편견 없이 너무 재미있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지만, 일본 내에서 성우에 대한 팬덤은 정말 엄청나다. 작가의 의도를 벗어난 애니메이션이었다 할지라도 그도 그 나름대로의 팬덤이 있었고, 그것이 수십 년 만에 리메이크된다 했을 때는 그 목소리 그대로의 감동을 다시금 느끼고 싶었을 팬들이 적지 않았을 텐데 감독(이노우에)은 전원 교체를 감행했다. 기존 TV판 애니는 한국어 더빙판으로 많이 봤을 나나 기존 한국 팬들은 큰 거부감이 없었을지 모르지만 일본 내에서의 반응은 심각한 수준이었다.(거의 뭐 보이콧까지 갈 뻔. 요인이 그것만은 아니지만) 하지만 이내 곧 작품성으로 인정받아 일본 내에서의 흥행 순위도 맹렬히 올라가는 중이다…
또 한 가지 이슈 3D화는 예고편만 봤을 때는 상당히 어색해 보여서, 실망과 걱정이 교차했지만 작품이 진행됨에 따라 이노우에 센세가 왜 그래야만 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앞서 친구들이 “만화 속 캐릭터들의 실제 움직임을 볼 수 있어 좋았다.”라 한 것을 난 전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번 작품을 보고 나니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이해가 됐다. 기존의 애니는 2D 만화 속 스틸컷을 그 각도 그대로 전후 장면들만 덧붙여 2D인 채 그대로 동(動)화로 구현한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구도 자체가 시합 상황에 따라 다이내믹하게 변하면서, 조금 오바해서 표현하자면 마치 내가 실제 그 시합장에 있는 것과 같은 수준의 현장감을 전달했다. 작품의 후속작까지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한 장 한 장을 일일이 그려야 하는 2D 애니와 비교하자면 이와 같이 실험적으로 다양한 구도를 얼마든지 실현해 볼 수 있는 3D화가 훨씬 더 경제적이었으리라 추론해 본다.
그리고 3D 렌더링 위에 2D의 질감을 입히는 방식을 선택했는데, 이는 이미 게임 업계에서는 만화, 애니 원작의 2D 작품을 3D로 옮길 때 유저들이 느끼게 될 위화감을 최소화하고자 카툰 렌더링이니 쉘 쉐이딩이니 하는 기법으로 불리며 일반적으로 사용된 지가 20년이 넘었고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해 왔다. 슬램덩크는 거기서 또 한 번 다른 방식으로 틀어서 테두리에서는 그 당시 만화책을 통해 볼 수 있었던 펜촉의 느낌을 살렸다. 하나의 선이 경우에 따라 두꺼워지거나 얇아지고, 날카롭게 끝을 맺거나 때로는 둥글게 끝을 맺기도 하는. 채색에 있어서는 일반적인 애니메이션의 광택 쩌는 매끄러운 셀화의 느낌이 아니라 여기서도 그 당시 아날로그 일러스트 작업 시 볼 수 있었던 마커 작업의 느낌을 연출했다. 동일한 컬러를 동일한 위치에 칠하면 농도가 더욱 짙어지고, 반대로 줄이면 밝음을 연출함으로써 명암과 질감을 표현하던, 그때의 방식 그대로이다.
만화 슬램덩크 원작이 연재되던 소년 점프(한국에선 아이큐 점프)와 같은 주간 만화 잡지에서는 비정기적으로 인기작을 단 몇 페이지에 한 해 컬러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그때의 컬러란 대단히 투박하고 제한되었지만 그래도 그 당시엔 ‘와~~~~ 이게 이 색이었구나. 이 캐릭터는 이 색이었어.?’라고 느끼던 그때의 느낌 그것에 가까운 연출이었다. 이노우에 센세는 슬램덩크를 마치고 후에 ‘버저비터’란 외계인들의 농구 시합을 주제로 한 풀컬러 작품을 인터넷상에 공개했다. 지금이야 대한민국이 웹툰 강국이라 하지만 20년도 더 전에 풀컬러 작품을 인터넷상에 하루 한 페이지 씩 무료로 공개하던 그의 시도야말로 지금의 웹툰의 초석을 만드는 데 크나큰 일조를 했다는 것은 그 사실을 아는 한 누구나가 동의할 수밖에 없는 사실일 것이다.
거기서 또 더 나아가 ‘리얼’이나 ‘배가본드’까지 가버리면 그의 작화가 말 그대로 너무 예술의 영역으로 넘어가버려 컬러 채색도 다분히 다른 성향이 느껴지지만, 내가 본 이번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컬러 표현은 딱 ‘버저 비터’까지 느껴지던 그의 방식이었다.
이 또한 기존 2D 작품으로 작업을 고수하고자 했더라면 이같은 연출에 어마어마한 비용이 소요되었을 테다. 그리하여 기존 일반적인 셀화 식으로 묘사되었을지도 모를 테고. 그랬더라면 아마 지금 이만큼의 감동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작품 속 등장인물들의 구구절절한 사연과 지긋지긋하게 느껴질 법도 한 신파도 지겹게 느껴지지 않았다. ‘세상에 이런 사연이 있었구나. 그동안 내가 몰랐구나.’ 싶은 생각뿐이었다. 어쩌면 내가 그때는 그 캐릭터들보다 어렸었지만 어느새 훨씬 더 어른이 되어버렸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새하얗다 못해 시퍼렇게까지 느껴지는 익스플로러의 하얀 배경 화면도 A4용지도 아닌, 기본 베이스 자체가 누리딩딩한 회색 갱지로 만났던 그 시절 우리가 사랑한 소년들을 다시 만나고 나니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다시 말하자면 나는 슬램덩크의 그닥 팬도 아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슬램덩크라는 작품을 조금 알고 있고, 그 시절 아이큐 점프와 소년 챔프를 매주 기다리던 소년. 소녀들이라면 나의 감정에 공감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냥 그렇다고… 혼자 너무 감명받아 끄적거려 봄… 큰 의미는 없음. 언제나 그렇듯 갑분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