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 오리지널_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 리뷰
웨이브에서 만든 오리지널 시리즈 더 커뮤니티를 봤다. 이 프로그램에 처음 흥미가 생겼던 것은 ”사상 검증 구역”이라는 키워드를 보고 나서부터 이후이다.
사상 검증이라,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키워드가 아닐까 싶다. 특히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 공간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상을 가진 사람들과 집단을 형성하여 다른 사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고 같은 사상을 가진 사람들과는 응집력을 키운다. 그리고 이것들은 종종 정치적인 집단 행위로 나아가며, 내용이 옳고 그름과는 관계없이 집단적인 유대감과 배타성을 동시에 키워 나간다. 그렇다면 이 프로그램에서도 사상에 따라서 똑같은 움직임이 나타났을까? 일단은 사상에 따른 개인의 움직임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각 개인의 성향이 어떤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에서는 숙소 입소 전, 참가자들에게 '사상 검증 테스트'를 실시한다.
‘사상 검증 테스트’에선 사람들을 같은 그룹들으로 묶는 요소들을 총 4가지로 분류하여 참가자들을 분류했다. 그 4가지는 각각 정치, 젠더, 계급, 개방성이다. 4가지 항목은 또 2가지로 나뉘어 개인의 성향을 나타낸다. 정치는 좌파와 우파, 젠더는 페미니즘과 이퀄리즘(다른 얘기지만, 이퀄리즘이 페미니즘의 반대인지에 대해선 의문이다.), 계급은 서민과 부유층, 개방성은 개방과 전통으로 나뉘고, 1점부터 4점까지로 개인의 점수를 매겨 얼마나 각 항목에 있어서 성향이 높고 낮은 지를 드러낸다.
그렇다면 이렇게 검증된 개인의 사상은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가? 프로그램에서는 사상을 가지고 편을 나누는 출연진의 모습을 의도하고 만든 것 같았으나, 개인의 사상은 프로그램에서 전혀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단순한 논의부터 공동체를 위해 정할 규칙을 정하는 과정, 익명으로 진행되는 토론 등 각각의 과정에서 개인의 사상은 충분히 표현될 수밖에 없었고, 개인이 가진 사상에 따라 의견이 대립되는 모습 또한 종종 보인다. 하지만 의견 대립에 그칠 뿐, 프로그램 내에서 개인의 사상은 사람들끼리의 유대감을 만들어주거나 적대심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프로그램에서는 서로 쉽게 어울릴 것으로 예측되는, 같은 사상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어울리는 모습은 생각처럼 많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백곰과 슈퍼맨처럼 전혀 다른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친밀한 사이를 맺는 모습이 종종 나타났다. 즉, 사상은 개인들 간의 의견 차이를 만들어낼 뿐이지 누군가와 어울리고 어울리지 않을 것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용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 모습은 사람들의 선입견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사상에 따라서 사람들이 뭉치고 흩어질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그램에서는 이러한 선입견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나타났다. 출연진들은 서로의 사상과 성향만으로 편을 가르고 누군가를 배제시키려고 하지는 않았다. 다만 서로의 삶 속에서 경험해 온 바가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온전하게 이해하지는 못할 뿐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다른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각자 살아온 환경이 다 다를 텐데, 어떤 사상을 좋은 것으로 어떤 사상을 나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의 출연진들도 서로 얼굴을 맞대는 상황에서는 서로가 갖고 있는 사상에 대해서 집요하게 파고들기보다는 서로를 존중하는 수준에서 토론을 하고, 서로의 다른 생각을 인정한다.
이렇게 사상이 사람들의 관계에 영향을 주지 않는 비교적 평화로운 모습이 나타난 것은, 숙소에서 같이 생활하는 출연진들이 개인의 사상과 성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타인의 다면적인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상은 개인의 다면적인 모습들 중 일부분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이 어떤 사상을 갖고 있든, 그의 다면적인 모습을 종합해서 본 결과 그 사람이 인간적으로 매력적이라고 느껴지면 그 사람과 충분히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고, 그 사람의 여러 모습과 이야기를 들으며 이해를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사상과 성향만이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주된 기준이 순간,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다면적인 모습들은 사라진다. 사상과 성향이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면 타인을 자세하게 알고자 하는 노력들을 후퇴시키고 편견을 통해 사람을 바라보게 한다. 이런 모습은 온라인 공간에서 잘 나타난다. 온라인 공간은 개인의 맥락은 잘 보이지 않는다.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생활하고,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를 알기보다는 하나의 온라인 커뮤니티 공간에서 얼마나 잘 적응하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상을 통해 쉽게 타인을 판단하려 하고, 같은 사상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만 들으며 자신과 반대되는 사상은 무비판적으로 헐뜯으려고 하는 양상이 보이지 않나 싶다.
그렇지만 이 프로그램에서는 주로 오프라인 활동을 위주로, 합숙까지 하면서 개인의 다양한 면모를 볼 수밖에 없는 여건이 만들어졌다. 그랬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에서 사상으로 인해 출연진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거나 분열되는 상황이 만들어지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몇몇 사람들은 이 프로그램이 사상검증구역이라는 이름과는 다르게 사상이 프로그램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며 비판의 글을 썼지만, 나는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이 의의가 있다고 느껴졌다.
“다른 사람의 사상을 ‘검증’하는 것이 중요한가?”
이 프로그램을 보며 내내 들었던 질문이다. 그리고 프로그램을 회차를 거듭하여 볼수록 사상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느꼈다. 이것을 느끼면서 사상은 그저 개인의 일부분일 뿐인데, 사상이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 중요한 것으로 판단되어 다른 사람들을 편견을 통해 섣불리 판단하고 재단하는 역할로 사용되지 않았나 하고 되돌아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