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끝내주세요
이혼소송을 시작한 지 2년이 되어가는 긴 시간 동안, 치열했고 치사했다.
면접교섭을 하면서도, 어린이집을 마치는 마지막날 아이를 일찍이 멋대로 하원해서 훔쳐가서 그쪽 유치원에 새로 등록시키고, 이후 나와 만난 아이가 예정된 유치원을 다니며 나라에서 유치원으로 지원하는 학비문제로 주소이전을 요청해도 들어주지 않고, 오히려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에 이중 유치원 등록이라며 고발장을 접수해서 유치원장을 협박해서 아이가 쫓겨나게 만들었다.
재산은 줄 것이 없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기사회생, 파산 신청을 했고, 양육비는 3달 동안 총 20만 원을 보내다가 양육비 이슈로 뉴스에서 양육비 지급에 대한 새로운 판결이 나오고 사전처분으로 월 40만 원씩 지급하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그제야 송금하기 시작했다.
그의 행동의 흐름은 지금 생각해도 정말 인간 같지 않다.
약아빠진, 약삭빠른 뱀 같다.
그의 불륜을 알아채기 이전 그를 믿었던 때에는, 그의 모든 말을 믿었다.
보이는 것을 보려 하지 않았고, 그의 설명을 들으려 했다. 이해가 되지 않으면 묻지 않았고, 알아서 잘하겠거니 하고 무작정 믿었다.
내가 믿은 것이 신뢰와 믿음이 맞을까.
그저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게으름이었을까.
스스로 생각한다는 것이, 고민한다는 것이, 스스로 결정하기 위한 과정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이제야 비로소 안다.
길고 길었던 이혼소송의 끝은 강제조정문이었다.
완고한 양쪽의 상반된 주장을 두고, 판결을 내리기가 부담스러웠던 법원이었다.
법원입장을 생각해 보자면,
1. 엄마를 양육자로 지정하고 판결을 내리자니, 아빠의 양육자 지정요청이 끈질기다. 이런 식이라면 2심, 3심까지 에상된다.
2. 아이가 영민하여 이혼가정을 만들기 아까우니, 아이를 위해 엄마 아빠가 화해하는 쪽으로 유도해 보자.
그는 1번의 판결을 내렸어도, 정말 돈을 들여 승산 없는 싸움을 2심, 3심까지 진행했을까?
그쪽 가족의 방향으로 보아, 결국 그쪽이 의도한 것은 아이를 인질 삼아 중간에 붙들고 재산분할을 주지 않으려는 셈이었을 거라 추측한다.
이제는 그렇게 생각한다.
정말 그들이 하는 말로보면, 아이를 정말 그들이 키우고 싶어 하고, 아이만이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 같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다.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을 붙잡고 아이를 두고 내게서 양육비를 받기를 원했고, 재산은 지키고 싶어 했다.
이 싸움에서 그들이 잃을 수 있는 건 아이와 재산이었기에 그것을 지켜야 했고, 아이는 지키기 어렵다 판단이 되어 이혼을 안 한다 붙들고 재산을 지킨 것이다.
조정을 시작할 때, 나는 상반된 양쪽의 주장을 정리했다.
내가, 그가 주장하는 것,
내가, 그가 양보할 수 있는 것, 양보할 수 없는 것을 정리했다.
나는 아이의 양육권을 주장했고, 양보할 수 없었다.
나는 이미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 그의 재산의 분할을 양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빠를 좋아하는 아이이기에 아빠와의 면접교섭을 더욱 늘려줄 용의도 있었다.
절대 양보할 수 없이 내가 가져야만 했던 것은 단 하나, 내 아이를 내가 기를 권리였다.
그리고 그 이상은 양보할 수 없었다.
저쪽의 주장은 역시나였다.
본인이 아이를 키우겠다 했고, 재산은 줄 수 없다 했다.
시어머니가 빌려간 채무에 대해서도 내게 빌린 돈을 아들에게 갚았다며 입을 씻었다.
조정위원관은 아이와도 만났고 아이가 원하는 것은 엄마아빠와 같이 사는 것이라며 이혼에 대해 2:1로 나 혼자만 이혼을 원하는 상황이니, 다시 용서하고 아이를 위해 이혼하지 않는 것은 어떠한지 설득했다. 마치 내가 토라진 사람처럼 나만 마음을 돌리면 이 이혼소송은 모두 끝이 나는 것이었다.
나는 아빠와 살고 싶다고 했을 줄 알았는데 아이는 조정위원관에게 뜻밖에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엄마아빠와 같이 살고 싶다고.. 나중에 아이가 ‘조금만 더 참지 왜 이혼했냐고 이야기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너무 흔들렸다.
내가 지금 뭐 하나, 정말 아이를 위한 것이 쇼윈도 부부일까, 아이가 나를 정말 원망할까, 이게 정말 맞을까…
아이를 위해서 내 모든 삶을 꾹꾹 누르고 갈고 압축시켜 아무렇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자신을 위한 삶도, 나 스스로를 위한 어떤 짧은 순간도, 그 모든 순간에 솔직할 수 없을 내 인생이 자신 없었다.
그래서 한 번 더 결정했다.
나는 이혼을 하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