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성 Feb 28. 2016

비 내리는 앙코르와트, 그리고 우비 파는 소년

지구를 거닐다_20150617

드문 드문 있던 먹구름이 몸집을 불리더니 결국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산이 있었지만 심상치 않은 빗줄기 탓에 사원 내로 급하게 몸을 숨겼다. 비릿한 비와 무거운 세월의 냄새가 뒤섞인 앙코르와트 사원 안. 잠시 쉬어가기로 하고 남편과 나는 바닥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저 멀리 한 소년이 비를 맞으며 뛰어왔다.


"캄보디아 사람들을 비에 젖는 걸 별로 신경 쓰지 않나 봐."

비를 맞고 있던 소년에 대해 남편과 이야기하는 사이, 그 소년이 사원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는 온몸이 비에 흠뻑 젖은 채로 머리에 묻은 빗방울을 연신 털어냈다. 그리고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 우리에게 건넸다.

"우비 사세요..."

우산이 있다고 하자 소년은 실망한 얼굴을 하고
다른 손님을 찾아 다시 빗 속으로 뛰어 나갔다.


'앗차...우비를 팔면서도 정작 본인은 비 옷 하나 걸치지 못한 채 비를 맞고 다녔구나. 소년에게 우비를 사서 입혀줬어야 했는데...'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리저리 소년을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비가 그칠 때까지 마음 한 켠에 진회색 먹구름이 가시질 않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