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통 진도가 나가지 않는 날들이었다. 여행이 끝나고 글로 쓰고 싶던 소재들이 떠오를 때마다 정리해 두었던 파일이 있었다. 그 자료를 쳐다보며 그때의 감정을 떠올려봐도, 그것을 글로 옮기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느끼는' 것과 '쓰는' 것은 엄연히 다른 세계여서, 내 안의 정돈되지 않은 채 뒤엉켜 있는 우주를 글로 재현해내기에 나의 실력은 한참이나 모자랐다. 좌절을 겪는 것은 당연했다. 한동안은 잘 써지지 않는다는 핑계로 책상에 앉기를 멀리했다. 실력이 부족할수록 치열하게 붙잡고 늘어져도 모자랄 판에, 스스로 감정을 통제하지 못한 채 귀중한 시간을 흘려보냈다. 돌려 말할 것 없이 게을렀던 가을이었다.
그러던 와중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동안 썼던 글을 모아 브런치북 #3 프로젝트에 응모했다. 대상에 선정되면 책을 출간하는 기회가 주어진다. 결과는 은상이었다. 무수한 브런치 작가 중 내 글이 선정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아 감사할 따름이다. 대상에게만 주어지는 출간의 꿈은 날아가 버려 아쉽지만, (대상이라면 더없이 기쁘겠지만) 그래도 은상이 어디냐며. 적어도 누군가에게는 읽을 가치가 있는 글이라고 인정받은 것 같아 들뜨는 밤이었다. 유난히 추웠던 어제, 옷깃을 파고드는 겨울바람에도 가슴 한쪽이 온기로 가득했다. 만원 버스 안에서 집까지 오는 내내 자리를 잡지 못해 이리저리 매달려 있었지만 피곤하지 않았다.
비록 은상에 그쳤지만, 방황하는 나에게는 따뜻한 격려 혹은 더욱 노력하라는 따끔한 일침. 올해 남은 시간 동안 부지런히 글을 쓰며 보내라는 계시 내지는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설렘이기도. 그러니 나는 다시 또 마음을 다잡고 간절하게 한 자 한 자 쓰는 수밖에.
브런치 팀 고맙습니다.
제 글을 구독해주시고 좋아해 주시는 분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브런치북 프로젝트 #3 수상작을 소개합니다.
https://brunch.co.kr/@brunch/68
사랑하는 남편과 지구 어딘가에서 일상같은 여행을 하며 지냈습니다.
남들보다 느린 시간을 살았던 그때를 떠올리며 끄적거립니다.
1년 3개월간 길 위의 소소한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우리 이 곳에서도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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