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몸을 또 어디에 뉘어야 하나

갑작스러운 2편

by 라파엘

인생이란 정말 알 수가 없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운이 좋게 곧바로 등재가 돼서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현재 ‘삶은 여행이다’, ‘이 몸을 또 어디에 뉘여야 하나’라는 제목으로 글을 딱 두 편 올렸는데, 여행이라는 말은 아직 내 삶에 진행 중이라고 말을 할 순 있으나 이 몸을 또 어디에 뉘여야 하는지는 이미 종료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지금 지내는 이 집이 내 맘에 100퍼센트 맘에 드는 장소는 아니지만 적당한 월세에 출근하기 정말 좋은 위치이기 때문에 내가 여태 겪어온 문제들과 그 외의 것들은 감안하고

지내려 했었다. 하지만 이 무슨 일인지 글이 그렇게 업데이트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주인에게 일방적으로 집을 팔게 되었으니 이번 달 말 나가달라는 통보를 받게 되었다.

이사는 어디든 정말 힘든 일이다. 한국에서도 친구들이 이사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걸 많이 봤었다. 말이 통하고 주위 지인이 있는 한국도 그렇게 힘이 드는데 해외는 더 오죽할까. 게다가 난 이미 해외에서의 이사를 세 차례나 겪어보았기 때문에 예삿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안다고 자신할 수 있다. 그래서 100프로 만족하는 집이 아닐지라도

기꺼이 감수하고 지내려 했던 것이다. 그래서 지난 편의 글들 이후로 부다페스트에서의 일상과 함께 독일에서 집을 구하는 과정들과 함께 있었던 일들을 써 내려가려 했으나

지금 현재진행형으로 생생하게 진행되는 과정을 글로 남기려 한다.


(다행히도 현재는 글의 공백기간 동안 미친 듯이 집을 찾아 헤맨 덕분에 무사히 집을 잘 찾은 상태이다. 다음 주 로마 여행을 다녀와 곧바로 이사할 예정이다.)


처음엔 집주인으로부터 이메일이 도착한 줄도 몰랐다. 보통 집주인과는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디렉트로 연락을 했기 때문에 한 번도 먼저 말을 건 적 없던 옆옆방의 룸메가

조심스레 노크를 했다. 퇴실통보를 받았다며 너도 받았냐고 물어봤을 땐 못 받았다고 대답 후, 남 일처럼 생각을 하다 후다닥 다시 내 메일함을 뒤져보니 나도 똑같이 내 방 번호를

콕 집어 집을 팔게 되었으니 퇴실을 바란다며 도착한 메일을 볼 수 있었다. 처음은 당황스러움, 집 없는 서러움, 집주인을 향한 분노, 그때의 나의 감정을 설명하자면

그냥 부정적인 감정의 이름들을 싹 다 모아 나열하면 그게 바로 내 기분이었다.

맨 처음 집을 구해 이사 온 당시 나는 세 방이 나란히 나열된 구조에 정 중앙에 위치한 조그만 방에 지내고 있었고 그 두 방 사이에 껴서 소음으로 굉장히 고통을 받았었다.

새벽 2,3시까지 떠들며 놀기가 예삿일이고, 또 다른 옆 방에선 애인을 데려와 아주 즐겁게 노는 소리에 미칠 지경이었다. 집주인에게 아무리 얘기를 해도 사실 집주인이 경고를

할 뿐 어떻게 제지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고, 나는 양 옆방의 그 누구도 듣고 싶지 않은 가장 은밀한 사생활 소리까지 무방비하게 노출된 상태로 지내야만 했다. 나를 감싸고 있는

두 방 중 하나는 벽이 아닌 문으로 되어있어 사실 연결된 방이나 다름없는 구조였는데 그러다 보니 소음에 더더욱 취약한 구조였다. 그래서 무슨 드라마를 보는지, 유튜브를 보는

소리뿐만 아니라 밤에 코 고는 소리까지 다 들으며 지냈어야 했다. 그래서 결국 내가 떠나야겠구나 판단해 집주인에게 집을 나가고 싶다고 얘기했고 집주인은 나가는 건 상관없으나 우리의 계약서에 명시된 계약 기간이 올해 10월까지이기 때문에 그전에 내가 세입자를 찾아 놓고 가면 문제될 건 없다고 얘기했다. 내가 아는 헝가리의 지인들은 이미 나보다 더

오래전 정착해 살고 있던 사람들뿐이고, 한국인들은 주로 셰어하우스보다는 원룸형태를 선호하니 지금 내가 세입자를 구한다고 하여 단번에 새로운 세입자를 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 결국 그렇게 이사 계획을 접게 되었다. 그런 찰나 나의 다른 옆방이 이사를 나간다고 해 집주인에게 그렇다면 내가 그 옆방으로 이사하겠다고 했고 집주인도 그건

상관없다며 그렇게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는 듯했다. 그렇게 이사한 지 겨우 한 달, 한 달 만에 또 이사하라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어이없고 열받은 와중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만한 점은 보증금에서 집주인이 이번 달 월세를 제하겠다고 했고, 나는 약 8만 원 싸게 한 달간 집을 이용할 수 있었다.


처음 헝가리에 도착해서 집을 구할 땐 부동산 어플로 집을 구했지만 이번엔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고 룸메이트들과도 대화를 해 볼 수 있는 집들이 많은 페이스북을 헤집고 다녔다. 불행 중 또 다른 다행으론 지금이 여름학기가 끝난 시점이라 집을 비우는 학생들이 많아 특히 셰어하우스 형태는 매물이 많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외국인 유학생들이 워낙 많다 보니 영어로 다 공고가 올라와 쉽게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또 자연스럽게 독일에서 첫 이사를 준비하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는 영어로 된 게시물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챗지피티도 없었기 때문에 파파고를 열심히 돌려 어색하게 번역된 문장들을 보고 조건을 확인한 뒤 방을 보러 가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내가 쓴 어색한 자소서를

고치다 고치다 안 돼서 한국어를 일본어로 바꾸고, 일본어를 영어로 돌려, 마지막 독일어로 바꿔 그렇게 겨우겨우 좀 자연스러워진 독일어로 자소서를 이곳저곳에 보냈었는데.

그때에 비하면 훨씬 쉽게 공고를 확인하고 연락할 수 있음에 감사함과 감개무량을 느꼈다. 처음 집을 떠났을 때와 비교하면 훨씬 더 편해진 영어와 낯선 이와의 의사소통에 그래도 해외에 오랜 기간 머물면서 마냥 머물러있진 않았구나, 많이 발전하긴 했구나. 하고 스스로에 대견함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에도 바뀌지 않은 점은 초조함이다.

이 선택이 과연 옳은가, 정말 최선의 집인가 하는 확신을 갖기에 정말 어렵다. 내가 집을 구할 수 있는 기간은 한정되어 있고, 그 사이 내가 더 좋은 매물을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과, 좋은 매물을 발견한다고 해서 내가 그 집에서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렇게 나쁘지 않은 이 집이 어쩌면 최선의 선택인지, 아니면 조금 더 기다려보고,

더 좋은 집을 발견할 수 있을 거란 근거 없는 희망에 더 매달려 볼지 그 사이를 재기가 너무 모호하다.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조언을 구하고 싶은데 결국 최종 선택은 내가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동일했다. 그래도 그 간의 경험치가 좀 쌓인 덕인지 스스로 너무 재촉하고, 초조해하는 것 같으면 마음을 가다듬고 아직 남은 시간이 있음에 시선을 돌리며 최대한 많은 곳에 연락을 하고 발로 뛰어다녔다. 그 덕분에 내가 묵고 있는 집보다 적은 인원, 낮은 가격, 좀 더 집 다운 집을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올라간 것이다. 하지만 좀처럼 맘에 쏙 드는 집을 찾긴 여전히 힘든 일이었다. 역시 수도라 그런지 독일의 끝자락 시골에서 살 때 와는 다르게 집의 상태가 천차만별이었다.

위치가 좋으면 집이 문제였고, 거실이 널찍하면 방은 정말 조그마했다. 사진으로 봤을 땐 그래도 방이 좀 넓어 보였었는데 막상 방문하니 정말 침대하나에 옷장을 꽉 차는 방들도 많아 ‘여긴 고시원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방도 있었다. 그리고 방에서 시선을 돌려 창밖을 바라보면 건물이 떡하니 있어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고, 혹은 창문이 환풍기처럼 작게 달려있는 수준도 있었다. 독일에서 널찍한 창문으로 해가 지던 풍경을 멍하니 앉아서 바라볼 수 있었던 내 방이 순식간에 그리워졌다. 그리움이 가득 담긴 채로 조금이라도 비슷한 그 풍경을 가진 집을 찾기 위해 발품을 판 지 약 2주 만에 집 다운 집을 발견할 수 있었고, 상대방도 내가 같이 살 사람으로 마음에 들어 계약을 하고 오늘 보증금까지 주고 담판을 지을 수 있었다. 3주 뒤 이사 가기로 한 내 방은 조용한 아파트 단지에 위치해 있고, 내 방 창문이나, 거실 베란다 밖으로 초록색 나무들이 펼쳐져 있는 조용한 마을이다. 여행객이 적은 마을, 정말로 여기서 삶을 사는 사람들로 가득 찬 동네라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집을 보고 보증금을 내고, 계약서까지 다 완성하고 약 3 주남은 그 사이 그냥 도를 닦는다는 마음으로 집을 버티고 있었는데 역시 방심할 수 없는 익스트림 하우스. 어제 또 사건이 터졌다.

밤늦게 새벽 1시쯤 화장실을 갔는데 화장실 안이 온통 매캐한 냄새로 가득했다. 도대체 이 냄새가 어디서 나는 건가 하고 보니 세탁기 안, 룸메 중 한 명이 신발을 세탁기에 돌렸고,

세탁기 안에서 신발이 터진 건지 신발 부산물들이 이리저리 흩어져 엉망이었고 그 과정에서 그 물질들이 탄 건지 매캐한 냄새가 가득했다. 정말 하나도 손대고 싶지 않아서 급하게 환기를 시키고 새벽 1시에 나는 모든 사람들의 문을 두드리며 누구 거냐고 소리치며 다녔다. 다행히 범인이 그날 집에 있었기에 수습을 바로 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는 신발만 세탁기에서 쏙- 빼내가고 바닥에 떨어진 찌꺼기만 일부 쓸어낸 게 전부였다. 결국 아침까지도 세탁기는 엉망으로 남아있고, 다른 룸메이트들 모두 그 상태를 확인해 이 세탁기를 현재 쓸 수 없다는 판단으로 집주인에게 오늘 연락이 들어갔다. 그리고 내가 새벽에 발견하지 않았다면 아마 집 전체에 불이 났을지도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얘기와 함께. 이후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르겠다. 단순히 현재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은 아마 남은 약 2주의 기간 동안 아마 세탁기는 못쓰지 않을까. 신발을 돌린 애가 세탁기를 배상하려나, 아직 이사를 가려면 꽉 채운 일주일이 남았는데 그 안에 또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심장이 두근두근하다 못해 쫄깃쫄깃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