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번 집을 구해 보자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집’이다. 어디든 내 한 몸 뉘일 곳이 있어야 비로소 그곳이 내 집이 되고, 정착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독일에서 집을 구할 때는 정말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지만, 헝가리에서는 도와줄 지인들이 있어 비교적 수월하게 집을 구할 수 있었다.
내가 추천받은 방법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앱(Ingatlan.com), 다른 하나는 페이스북이었다. 한국에선 페이스북이 한물 간 소셜네트워크 취급을 받지만, 유럽에서는 여전히 활발히 쓰이고 있다. 그래서 나처럼 새로 부다페스트로 이사 온 외국인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가 매우 활발했다. 특히 유럽 내 한인 커뮤니티도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지만, 헝가리에서는 다소 다른 모습을 보였다. 독일에 비해 헝가리에 사는 한인들은 주로 카카오톡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행히도 주위 지인들의 조언으로 Ingatlan.com이라는 앱을 통해 집을 구경할 수 있었다. 원룸부터 쉐어하우스, 월세부터 매매까지 다양한 옵션이 올라와 있어 선택의 폭이 넓었다. 독일에서는 쭉 쉐어하우스에서 지냈고, 그곳에서 만난 룸메이트들과 좋은 추억을 쌓았기 때문에 헝가리에서도 쉐어하우스를 택하기로 했다. 비교적 쉽게 현지 친구를 사귈 수 있고, 룸메이트와 사이가 좋다면 또 다른 가족 같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독일과 헝가리의 집 구하기 과정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독일에서 방을 구할 때는 자기소개서부터 면접까지 여러 단계를 거쳐야 했었다. 예를 들어, 내가 학생이라면 1년치 생활비가 든 계좌 내역을 제출해야 하고, 집주인에게 내 경제적 능력을 증명해야만 입주가 가능했다. 게다가 면접 때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가족관계는 어떤지 등 개인적인 질문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헝가리에서는 집주인과 간단히 연락을 주고받은 후, 조건만 맞으면 바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입주할 수 있었다. 내가 입주를 결정하는 순간부터 계약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이때는 몰랐다, 급하게 먹으면 체한다는 것을…)
자연히 헝가리에서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독일에서의 시간들이 떠올랐다.
독일에서의 집 구하기는 조금 더 복잡했다. 크게 원룸(Einzimmerwohnung), 기숙사, 그리고 쉐어하우스(WG)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각자의 장단점이 다 존재하고, 모두 다 입주하기 하나같이 쉽지 않다.
*기숙사는 전 세계에서 온 유학생들과 독일인들 모두 지원을 하고, 무엇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학교와의 접근성이 좋아 특히나 경쟁이 치열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숙사가 남녀 공용이라는 점에서 한국과는 큰 차이가 있다. 개인 방은 있지만,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용으로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예상치 못한 에피소드가 생기기도 한다. 이러다보니 오히려 유럽에서 한국으로 교환학생 혹은 유학을 가는 학생들은 한국의 남녀가 완전히 분리된 기숙사에 당황하기도 한다.
*원룸(Einzimmerwohnung)여기서부터 난이도가 훅 올라간다. 누군가에게 소개를 받거나, 혹은 부동산을 찾아 다니며 발품을 팔아야한다. 그리고 부동산에서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또 단순히 내가 원하는 조건의 집을 찾았다고 해서 100퍼센트 입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내가 집주인의 마음에 들어야한다. 그러다보니 자기소개서도 쓰고, 학생이라면 1년치 생활비가 든 계좌내역을 제출해서 월세를 충분히 지불할수있음을 증명해야 하고, 이것도 모자라서 그 후엔 어떻게 지불할거냐는 집주인의 말에 가족사진과 유년기시절까지 설명하며 우리 가족은 화목하고, 부모님의 능력이 있어서 기꺼이 나를 위해 돈을 내주실거고, 경제적 능력이 충분함을 증명해야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쉐어하우스(WG-Wohnungsgemeinschaft/일명 베게라고 부른다)는 독일에서 학생들과 직장인들에게 가장 보편적인 주거 형태다. 경제적인 부담을 줄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사람들과의 교류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하다. 나는 주로 WG에서 생활했는데, 현지 친구들과 어울리며 독일어를 익히기에도 좋았기 때문이다. 다만 WG도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Zweck-WG: 단순히 비용 절감을 위해 방을 공유하는 형태
Lebens-WG: 서로의 생활을 공유하며 깊은 관계를 형성하는 형태
나는 줄곧 WG에서 살았다. 월세를 아끼기위한 목적과 함께 좋은 룸메이트들과 어울려 살면서 친구를 사귀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일에서 유일하게 아는 지인이 강력하게 추천하기도 했다. 독일에서 커뮤니티를 알아가기 가장 편하기도 하고 아무래도 독일인들이랑 어울려 살다 보면 독일어를 익히기도 쉽다고. 처음 독일에 도착했을 때도 일종의 쉐어하우스이긴 했었다. 어학원에서 맺어준 룸메이트와 함께 지내긴 했으나 그렇게 사이가 가깝지 못했다. ‘달리아’라고 하는 카자흐스탄 여자아이였는데 워낙 조용하고 그 친구가 조금 독일살이에 적응을 하고 나선 하루종일 밖에서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같은 집에 살면서도 우리는 같이 시간을 보내거나 대화를 할 기회가 없었다. 어떻게 독일에 오게 되었는지, 평소에 뭘 하는지,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 하나도 대화를 나눈적이 없다. 그나마도 둘 다 독일어가 서툴렀기 때문에 늘 영어로 의사소통을 했었다. 가끔 내가 평소보다 많이 요리를 했을 때, 먹을래? 라고 물어보면 고개를 끄덕이고 내가 담아준 접시를 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먹고선 ‘고맙다’ 라고 말하는게 전부였다. 당시 집에 거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활이 지속되다보니 같이 삶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화를 나눌 상대가 전혀 없었다. 당시 어학원도 코로나때문에 집에서 화상으로 수업을 받는 날들이 이어지고, 지인도 없다보니 하루는 주말내내 먹지도 않고 눈뜨고 오후 한 4시까지 그냥 침대에 계속 누워있기도 했다. 오죽하면 나한테 관심 없던 달리아가 조심스럽게 내 방문을 노크하면서 괜찮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그렇게 온종일 누구도 만나지 못하고 대화도 한마디 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다. ‘아, 말 할 상대가 없구나.’ 그러다보니 노래를 흥얼거리게 되고, 혼잣말이 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혹시 이러다 내가 갑자기 쓰러지거나 해도 쥐도새도 모르게 죽은채로 발견될 수도 있겠다. 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이어졌다. 그래서 학생, 직장인들이 많이 한다는 WG거주형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일단 한 번 도전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시도하게 되었다.
당연히 내가 원한건 Lebens-WG 형태였다. 이 경우는 대부분 장기간 머무를 수 있는 사람을 선호하고 꽤나 까다롭게 선발 과정이 진행된다. 두 형태 모두 자기소개서와 면접이 필수인데 후자의 경우는 면접 때 오랜시간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오래 대화를 나눴을수록 합격 확률이 높아진다고 농담처럼 얘기하기도 한다. 실제로도 첫 이사를 앞두고 면접을 본 집들 중 1시간 가까이 차를 마시며 얘기를 했던 곳에서 같이 살자고 답장이 왔었다. 그러다 보니 소극적인 사람, 독어가 힘든데 영어도 힘든 사람의 경우는 애먹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이런 낯선이와 외국어로 대화하는것, 스몰톡 문화가 힘든 한국인들의 경우가 많다 보니 비교적 혼자사는 주거형태를 더 선호하는 것 같다.
독일에선 쉐어하우스를 알아보려면 대부분이 WG-Gesucht라는 어플을 사용한다.
내 프로필을 설정할때 다양한 사진을 꽉꽉채워 올리고, 간단한 소개서도 쓴다. 나는 활기차고, 여러 활동을 해봤고, 그래서 사람들과 이야기 나눌거리가 많다, 남들과 어울려 지내는거에 문제가 없다! 는 걸 어필해야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역설정을 마친 후 내가 원하는 지역에 올라와있는 집들을 다 살펴보며 마음에 드는 집들에 연락을 해야한다. 거기서 또 집 소개와 함께 같이 사는 구성원들의 프로필을 보며 거기에 맞춰서 자기소개서를 다시 써야한다. 그래야 그들이 내 자기소개서에 흥미를 느끼고 연락을 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어쩔수없이 언어도 영향을 끼친다. 맨 처음 독일어로 자기소개만 겨우겨우 하던 때는 다들 괜찮다며 이해한다고 하며, 영어로 면접을 봤었는데 내가 자소서를 돌린 곳 약 50곳 중 10곳에 겨우 면접을 보자며 연락이 왔었고, 그 중에서 딱 1곳에서 같이 살자는 연락을 받았었다.
다행히 그 집도 정말 아늑한 곳이여서 다시 생각해보니 정말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독일에서 지내면서 총 3번의 이사를 했는데 제일 마지막에 머물렀던 집 면접을 보러 다닐때는 독일어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크게 문제가 없어서인지 내가 면접을 봤던 대부분의 집에서 같이 살자는 연락이 와 내가 집을 골라서 갈 수 있었다.
이사를 다닐수록 집이 더 좋아졌다. 환경이 좋아졌다는 의미도 있지만 내가 더더욱 이 장소를 집이라 느끼고, 좋아하게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집을 떠나야 했으니 떠날때의 상실감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독일에서 집을 구하는 일은 나의 언어 실력과 성격, 그리고 집을 대하는 태도가 모두 맞아떨어져야 가능한 복잡한 과정이었다. 다행히 헝가리에서는 이러한 복잡한 절차 없이도 더 쉽게 집을 구할 수 있었다. 나라는 사람과 내가 쓴 자기소개서의 내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결국 집을 구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변수는 언어였다. 언어가 단순한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신뢰와 관계 형성의 핵심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