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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립리 Dec 28. 2018

도심 속 폐기물로 석고 작품, 작가의 노동 경험 투영

노동과 예술의 조화를 이른 석고 전시 여는 권용주 작가

“예전에는 별 볼 일 없는 예술 작업 뒤로 부끄러운 생존을 숨기려 했다.”


예술과 노동을 병행할 수밖에 없었던 조형작가 권용주(42·사진)는 자신의 초기 작업을 이렇게 기억한다. 본업인 ‘예술’은 별 볼 일 없는 것으로, 부업인 ‘노동’은 살기 위한 수단으로 여겼다. 재개발이 한창이던 빈민촌의 노동자였던 그는 밥벌이를 위해 한 인테리어와 목수·미장을 예술 뒤로 감추려 했다는 것이다.

그랬던 그가 달라졌다.


7월4일~8월11일까지 ‘두산갤러리 서울’에서 계속되는 석고전시 <캐스팅>(casting)을 통해 작가는 노동과 예술이 얼마나 긴밀한 관계인지 보여준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석고 작품들은 도심 속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폐기물로 제작됐다. 샌드위치 패널, 양철판, 플라스틱 의자, 구겨진 비닐 등 막노동 현장에서나 볼 법한 재료들이다.

그는 ‘폐기물’ 속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흔적을 발견한다. “동네 전봇대에 못 쓰는 의자를 버리면, 누군가 깨진 액자와 부러진 우산 등을 그 위에 쌓습니다.” 폐기물에서 삶을 보듯, 이제 일상의 노동에서 예술을 본다. ‘먹고사니즘’을 위한 노동이야말로 수줍어하던 조연이 아니라 예술 앞에서 서야 할 주연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노동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작업을 이어왔다. 전시의 소재는 ‘폐기물처럼 보이는’, 노동과 밀접한 것들이다. 단지 이번 전시에서는 “석고로 조형을 뜨는” 등 작업 방식에 변화를 주었을 뿐이다.

“일상 속에 존재하는 노동과 예술은 서로를 완벽하게 분리할 수 없습니다. 작품을 통해서 보여주려 하는 노동은 제가 살아왔던 경험이며, 이런 것들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생존 모습입니다.” 권 작가가 자신의 노동 결과물이기도 하고, 예술 결과물이기도 한 석고 조형물 앞에서 힘주어 말했다.

■ 권용주는 서울시립대학교 환경조각학과를 졸업했다. 그동안 폐자재와 시멘트 파편 위에 난을 붙인 <석부작>(2016)과 방수천 위로 일상 재료를 흘려버린 <폭포>(2014~2016)와 같이 노동이 집약된 작업을 주로 해왔다. 두산갤러리 뉴욕(2017), 아트스페이스 풀(2016) 등에서 개인전을, 서울시립미술관(2017), 경기도미술관(2015), 금천예술공장(2014) 등에서 그룹전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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