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중순이다. 집 앞의 샛노란 은행나무를 보며 '가을이 왔구나'를 잠시나마 느꼈는데 내일 눈 소식이 있는 것을 보니 이제 겨울이 왔음을 실감한다. 눈 오는 장면이 그리 낭만적이지는 않을 것 같다. 당장 오늘 코로나 확진자가 몇 명이 늘었는지, 어디를 다녀갔는지의 정보를 확인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으니, 눈이 오더라도 눈을 느껴볼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는 요즘이다.
오늘은 오전에 공원 산책을 하면서 2021년에 나는 어떤 한 해를 보낼까 생각을 했다. 새해 계획 따위는 언제 끝날지 좀처럼 감을 잡을 수 없는 코로나의 기세에 눌려 산산조각 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신년 목표는 세우고 싶었다. 오랫동안 골똘히 생각했으나 신기하게도 단 하나의 문장만 머릿속에 명확하게 떠올랐다. '재미있게 살고 싶어'.
그동안 참 재미없고 따분하게 살아왔다는 것인지, 그래서 그것에 대한 반성인 건지, 그건 잘 모르겠다. 그냥 앞으로의 나의 삶이 그저 즐겁고 재미났으면 좋겠다는 나만의 소망이 내 안에서 강하게 일었다. 하긴, 생각해보면 나는 쓸데없이 진지할 때가 많아서 웃긴 분위기도 다큐로 만들어버리는 묘한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다. 한때 아주 가까운 사이였던 누군가는 '너는 여행도 숙제처럼 할 것 같아'라는 말을 내게 한 적이 있었는데 나를 꿰뚫어 보는 것 같아 조금은 불편했던 그 말이 공감되는 순간들이 종종 있었다.
난 어쩌면 내가 정해놓은 원칙들을 성실하게 지키며 그 안에서 안전하게, 바르게만 살아온 게 아닐까 싶다. 한 치의 어긋남도 용납하지 않고, 궤도에서의 이탈은 꿈도 꾸지 못한 채.
세세한 목표들은 아직 생각해 보지 못했다. 내년에도 육아를 전담하게 될 것이니 온전히 나를 위한 일들을 많이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무얼 하든 그냥 재미있게 했으면 좋겠다. 한 번도 육아를 즐겁다고 여겨본 적이 없는데, 오늘 문득 '어차피 하는 육아. 육아도 재밌게 할 수는 없을까?' 하는 질문이 생겼다. 어떤 노력을 하든 육아가 엄청나게 재밌어질 리야 없겠지만 지금까지의 내 모습처럼 억지로 꾸역꾸역 하지 말고, 그래도 조금이라도 웃으면서 나도 아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그 무엇이 분명 있을 것이다. 생각이 열리면 길이 생기는 법이니까.
나는 먹는 걸 좋아하니까 아이와 함께 피자 만들어보기, 쿠키 믹스 사다가 쿠키 만들어 먹기, 새로 나온 그림책 함께 읽기, 아이와 같이 집 안에서 운동해보기... 당장 떠오르는 건 이 정도다. 예전에는 아이가 낮잠을 자야만 그 시간에 운동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아이 앞에서 동작을 하다 보니 아이도 신나게 따라 하고 좋아한다. 나도 재밌고 아이도 즐거워하는 게 뭐가 있을까 오늘부터 곰곰이 생각해봐야겠다.
한때 감사일기 쓰기가 열풍이라 노트까지 만들어 오늘의 감사한 일 세 가지를 적곤 했었다. 내년에는 오늘의 꿀잼 목록들을 적어보고 싶다. 내년 이맘때쯤, 한 해의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곱씹으면서 2021년 참 재밌게 보냈다고 자화자찬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