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부엌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참 낯선 일이다. 난 요리하고는 거리가 아주 먼 사람이었으니, 블로그에 누군가 직접 만든 음식 사진을 보거나 아이를 위해 손수 맛있는 반찬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저 나와는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 여기곤 했다. 어쩜 그렇게 부지런하고 정성스러울 수 있을까 감탄하면서.
시댁과 친정 가까이에 살고 있는 덕에, 결혼하고 3년 동안 음식 걱정은 크게 하지 않아도 되었다. 남편은 퇴근길에 시댁에 들러 갓 만든 따끈따끈한 반찬들을 들고 집에 오는 경우도 많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딸의 집에 와 육아를 도와주시는 엄마는 올 때마다 양손 가득 음식을 갖고 오신다. 덕분에 우리 집 냉장고는 양가 어머님들의 노력이 담긴 음식들로 늘 가득 차 있었다.
음식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육아에만 전념하면 되었다. '오늘 뭐 해 먹지'가 주부들에게 있어 평생 끝나지 않을 숙제일 터인데, 나는 그 숙제를 덜었으니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이 생활이 익숙해질 무렵, 며칠 전 나는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내가 할 줄 아는 요리가 정말 없다는 것을. 나도 이제 두 돌 지난 아이의 엄마이고 결혼 3년 차 주부인데, 내 손으로 요리해 본 적도 많지 않거니와 내가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메뉴가 몇 개 떠오르지 않았다. 언제까지 부모님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이제 나도 자생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책장에는 결혼 초기에 사 둔 요리책 한 권, 아이 유아식 책이 한 권 있었다. 당근 채 썰기도 제대로 못 하는 내가 과연 레시피들을 흉내라도 내 볼 수는 있을 것인가. 남편과 아이, 나의 입맛을 사로잡을 무언가를 내가 과연 만들 수 있을까. 작은 것부터 시도해보기로 했다. 하루에 한 개씩 도전이다. 지난주에는 꼬막 무침, 부추 계란국, 떡갈비, 가지 조림에 도전해 보았다. 이 중 가장 난이도가 높았던 것은 떡갈비인데 만드는 데 들인 시간과 노력만큼 맛이 있었다. 오예, 성공이다! 내가 그동안 안 해서 그렇지 요리에 소질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며 스스로를 치켜세웠다.
내일은 인터넷으로 주문한 전복이 오는 날이다. 전복 손질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긴장된다. 뭐든 처음이 어렵지 일단 해보고 나면 수월해지리라 믿는다. 전복으로 해볼 수 있는 메뉴들을 여럿 시도해 볼 작정이다. 전복 오일 파스타, 전복 내장 볶음밥, 전복 버터구이... 요령이 없어 시간은 배로 걸리고 설거지거리는 산더미처럼 쌓이겠지만 새로운 뭔가를 해 본다는 데 설렘이 앞선다. 아직은 요리가 손에 익지 않아 앞치마 두르고 부엌을 왔다 갔다 하는 내 모습이 낯설지만, 언젠가 요리가 재미있어질 날도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은 요리 한 가지 하려면 요리책이나 인터넷을 한참 들여다 보고 더듬더듬 하나씩 겨우 따라가고 있는데, 언젠가는 라면 끓이듯이 아무것도 안 보고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메뉴 몇 가지는 생겼으면 좋겠다.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 제일 맛있다고 아이에게 칭찬받는 날도 오면 좋겠다. 그날까지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