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유미 Apr 08. 2021

내 삶은 늘 왜 이리 힘든가

37년 인생사 돌아보기

육아를 하다 보면 순간순간 숨이 차오를 때가 있다. 아기 키우는 엄마들이 다 그렇게 힘들고 고생스럽지, 나만 그런 건 아니라고 위안을 하다가도 잠시 멈춰서 깊은 생각에 빠질 때가 있다. 머릿속에서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왜 내 삶은 항상 이렇게 힘이 드는가?'. 그랬다. 지난 37년을 돌아보면 나의 삶은 늘 여유가 없고 빡빡했으며 많이 힘이 들었다. 습관이라는 것은 참으로 강하고 무서워서, 상황이 바뀌고 내가 놓인 환경이 달라지고 만나는 사람들과 내게 주어진 일이 변하기는 했으나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는 언제나 한결같았다. 쉼 없이 달리기를 하는 느낌이랄까. 그러니 헉헉거리다 지쳐 쓰러질 수밖에.  


너무 열심히 살아온 거다. 이 세상의 수많은 가치들 중에 성실과 정직이 최상이라고 믿고 살았던 것 같다. 그것이 나의 무기였고, 그런 우직함 덕분에 여태까지 많은 것을 일구고 얻을 수 있었다고 자부했다. 그리고 이런 나의 삶이 꽤 자랑스럽다고 여겼다. 꼼수를 쓰거나 뺀질거리며 쏙쏙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볼 때면 속으로 측은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들에 대한 우월감과 더불어 나는 아주 괜찮은 사람이라는 스스로의 평가는 앞으로 더 열심히 살도록 부추겼다.  


열심히 산 것에 대한 보상도 분명히 있었을 거다. 공부를 열심히 한 덕에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고, 특유의 성실한 이미지 덕분에 남들의 인정을 받을 때도 있었다. 나는 그동안 한 번도 내 삶에 진지한 이의 제기를 해 본 적이 없었다. 게으른 게 문제지 열심히 사는 게 왜 죄가 될까. 베짱이는 욕을 먹어도 성실함의 대명사 개미는 언제나 우리에게 교훈이 되질 않는가. 진짜 문제는, 내가 스스로 열심히 하고 싶어서 무언가에 열정을 쏟기보다는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기대하는 역할에 부응하기 위해, 또는 '나는 성실한 사람이니까 무조건 열심히 해야 해'라는 오래전부터 자리잡은 무의식적 압박에 의해 열심히 살아왔다는 점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자유시간이 생겨도 앞으로의 일에 대한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에 바빴고, 여행을 가서도 그 자체를 즐기기보다는 공부하듯 무언가를 탐색하려 애썼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육아를 할 때도 마찬가지. 결혼 1년 차, 어느새 내 품에는 아기가 안겨 있고 나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열혈 엄마가 되어 있었다. 관성처럼 그저 열심히 달리고 또 달렸다. 육아 정보를 습득하는 데 눈에 쌍심지를 켜고 덤벼들었고, 피곤함에 쩔어 눈이 감겨도 밤늦도록 육아서를 보다 자야 직성이 풀렸다. 조금이라도 게을러지면 그건 온전히 내 탓으로 돌렸다. '이래서 좋은 엄마가 될 수 있겠어?' 난 그렇게 희생의 아이콘이 되어 갔지만 그것은 완벽한 육아를 위해서라면 응당 감수해야 하는 일이라 믿었다.   


나는 지금 37년간의 내 삶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다. 그것이 과연 옳은 것이었을지, 진정 행복했는지 묻는다면 나는 단번에 '아니오'라고 답할 것 같다. 다음으로 자연스럽게 따라나오는 질문은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이다. 그렇게까지 열심히 살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내가 진짜 원하는 무언가가 생긴다면 온힘을 다해 열정을 바칠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인정이나 또다른 외적 동기에 의한 것이라면 단번에 '열심히 살기를 거부하라'고 말하고 싶다.


앞으로 이어질 나의 삶에는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한 뼘의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정직한 한 가지 길뿐만이 아니라, 세상에는 지름길도 있고 내가 가보지 않은 여러 가지 길들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내가 깨달으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내 삶이 즐거웠으면 좋겠다. 쉼 없이 허들을 넘고 또 넘는 바쁜 일상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그 순간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나와 함께 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온마음으로 웃을 수 있는 하루하루들이 많아지길 진심으로 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