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를 한 지 꽉 채운 7년이 되었다. 매일같이 녹초가 되어 피곤에 지쳐 잠드는 나날, 다음 날이면 쳇바퀴돌듯 똑같은 일상... 나의 육아는 왜 이리 힘든 것인가. 육아는 원래 이런 건가? 다들 이렇게 사나? 뭔가 차근차근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내기가 버거웠다. 7년이 지난 요즘에 와서야 나는 깨달았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힘든가를.
엄마가 되는 순간부터, 나는 나의 모든 삶이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었다. 엄마는 무조건적으로 아이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은 거의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잠깐이라도 짬이 난다면 더 훌륭한 육아를 위한 유튜브 채널이나 육아서를 찾아보기에 바빴다. 나의 몸과 마음은 지쳐 있고, 그걸 봐 달라고 내 자신이 몸부림치고 있는데 정작 나는 그것을 보지 못하고 방치해 두었던 것이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아이가 책을 읽어달라고 하면 그 즉시 고무장갑을 벗고 책을 읽어주었다. 설거지는 아이가 잠든 후에 하면 될 일이었다. 목이 아파 책을 그만 읽고 싶어도 아이가 원하면 원하는 만큼 계속해서 책을 읽어주었다. 지친 기색을 비치는 것은 훌륭한 엄마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에너지를 끌어올려서 아이에게 생동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 그래야 했다. 아이에게 '기다려'라고 얘기하는 것은 아이에게 너무나 미안한 일이었다. 원하는 것을 바로바로 해 주는 엄마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엄마의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계속 소진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오랫동안 눈치채지 못했다. 엄마의 삶은 원래 이렇게 고되고 녹록지 않은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를 했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며 숨이 차던 어느 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왜 이렇게 힘든 육아를 하고 있지? 이렇게까지 힘들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나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나는 아이가 아니라 나를 중심에 두는 육아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이가 울면서 책을 계속 읽어달라고 떼를 쓸 때, '잠깐만 기다려줄래? 엄마가 지금 설거지 하고 있어서 이거 끝내고 읽어줄게.' 라고 얘기해 보았다. 생각보다 간단했다. 그리고 아이도 순순히 기다렸다. 집안일을 육퇴 후로 미루지 않고 그때그때 조금씩 하니 육퇴 후에는 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기다림이라는 것을 배울 기회를 줄 수 있어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왜 이걸 진작 알지 못했을까. 집안일은 미뤄두고 아이들과 놀아주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언제나 내 안에 존재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거실에 있을 때 내가 집안일을 한다는 게 미안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예전엔 '엄마, 조금 피곤해서 안방에서 좀 쉴게.'라는 말을 거의 한 적이 없다. 엄마는 슈퍼 우먼이 되어야 하므로 쉬는 건 용납이 안 됐다. 게다가 애들이 들락날락하고 시끄럽게 구니 어차피 쉬는 건 포기해야 한다는 인식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아이들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엄마가 지금 쉬어야 하니 30분동안은 안방에 들어오지 않기로 하자. 엄마가 쉬고 나올게.' 그럼 아이들도 이해하고 협조해 준다. 엄마는 집에서 항상 움직이며 일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엄마도 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이들고 마음으로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중심이 되니 참 많은 것이 달라 보인다. 일단 마음의 여유가 생겼고, 아이들에게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체적으로 상황을 조정하고 조율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육아에 대한 불안감이 덜해졌다. 육아가 절대 넘지 못할 거대한 산처럼 느껴졌었는데 이제는 산꼭대기에서 저 멀리 들판을 내려다 보는 것처럼 시야가 조금은 확장된 것 같다.
오늘 점심에 막내가 낮잠자는 동안 내가 좋아하는 뜨끈한 만둣국을 포장해 와서 느긋하게 먹으려고 했는데, 계획이 틀어져 버렸다. 20분만에 깨서 울고 난리가 난 거다. 나의 황금같은 여유시간을 빼앗긴 것도 분하고 만둣국이 식어가는 것도 속상했다. 내 마음을 알 리 없는 22개월 우리 아기는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로 목이 터져라 울었다. 예전 같으면 내 밥은 팽개치고 아기 먼저 안고 얼르고 달랬을 텐데, 오늘 나는 아기가 금방 달래지지 않자 '엄마, 밥 먹고 안아줄게. 잠깐 기다려. 엄마도 많이 배고프거든.' 이라고 말했다. 김치만두를 씹어 삼키며 '그래, 나 잘하고 있어.' 스스로에게 말하며 웃었다. 엄마가 살아야 아기도 산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기도 행복하다. 그것은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