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토요일(17일)에 있을 ‘사진으로 표현하는 갈등구조 워크숍’에서의 발표글 정리 위해 <히잡은 패션이다>, <문명의 만남> 등의 책들 읽었다.
지난번 ACC아시아문화박물관 기획전시 <살람, 히잡 Salam, Hijab> (3월 17일까지) 전시장 입구에서 만났던 부슈라 알무타와켈(Boushra Almutakel)의 <엄마, 딸, 인형> 사진 작업, 히잡의 착용으로 엄마, 딸, 인형의 모습이 점점 지워지는 연작을 보며
"그래, 히잡, 여성 억압의 상징(...)"쯤으로 일반화했던 나 자신
“그게 다가 아니었다”
문화인류학자 김형준은 그의 책 <히잡은 패션이다>에서 2000년대 이후 지금의 히잡은 자신의 아름다움과 개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지 사회적으로 강요된 후진적인 문명이 아니며 이슬람식 현대성의 표현이라고 말한다.
한 여대생은 히잡을 쓰면 더 예뻐 보인다는 주장을 확신에 차서 말했음을 기록했다.
히잡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히잡은 원래 서아시아(중동)와 인근지역의 토착 의상이었다. 이슬람교가 도래한 7세기 이전에도 지중해 연안 지역에는 히잡과 유사한 복장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유럽의 제국주의적 팽창과 함께 히잡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 됐다. 1800~1950년 유럽에서 발간된 이슬람 관련 서적에서 히잡은 지대한 관심을 받았는데 그 인식은 ' 격리' 와 '야만' 즉 여성의 '신체 은폐를 강요함으로써 히잡은 자기표현의 제한과 공간적 격리를 강제하며, 가부장적 체계에 여성을 속박하려는 남성의 야만성을 표현한다 ' 는 식으로 의미를 연결 지음
이는 이슬람 사회에 대한 서구의 침탈을 정당화하는 기능을 했다. 계몽된 서구인은 격리된 ‘여성을’ '야만적' 억압에서 해방해 진보의 길로 인도해야 한다는 인식에 기초한다.
우리는 새로운 것들 앞에서 자주 망설인다.
하지만 일반화의 위험성 크다. 자기중심적 현실 인식에서 빠져나와야 할 때가 많다.
저마다의 삶의 장소에 깃든 감각의 연결 위한 새로운 모색 필요하다
이번 '사진으로 표현하는 갈등구조 워크숍'도 그 일환 아닐까
#제주그래피 #아트스테이 #스페이스엣지 #이재정
#준비 #고맙습니다
오르한 파묵은 『내 이름은 빨강』에서 '환상을 꿈꾸지 않으면 시간은 결코 흐르지 않는다는 것이다'말해요.
자료를 정리하다 문득 19억 명, 세상의 절반, 이슬람,세계관 만남
늘 그러하듯이 어딘가로의 도전의 여정, 왠지 서툴지만 준비하며. 꿈꾸며, 가슴이 쿵하며 또 배우니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