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일아트를 했다. 페디큐어라고 하는 것. 작년, 재작년 여름부터 쭈욱 하고 싶었던 미용인데 섣불리 받으러 가지 못했던 것은 남에게 예쁘지도 않은 발을 내미는 게 용기 나지 않아서다. 4-5만 원을 들여 곱게 단장해봤자 한 달쯤 지나면 다시 해야 한다는 말도 있었고, 한번 하면 그 맛을 들여 계속하고 싶다는 말도 들었다. 어떤 사람은 하다가 안 하면 벌거벗은 기분이라고도 했다.
가장 큰 이유는 별 필요성을 못 느껴서 일수도 있다. 결혼하고 아이를 기르는 지금까지 그런 건 내게 안 어울려서이기도 했다. 여름이어도 주로 양말을 신고 스니커즈를 신는 편을 택했다. 즐겨 입는 옷이 캐주얼이어서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발이 더웠다. 덥다는 것을 참을 수 없게 됐다. 샌들이나 뮬을 신고 나면 가뜩이나 투박한데 아무 색이 없어서 발톱이 더 미워 보였다. 안 하는 사람도 많은데 유독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으니 내 발이 더 초라해 보였다.
시간이 많이 남은 어느 날이었다. 그날은 몇 시간을 노상에서 대기해야 하는 날이었다. 근처 네일숍에 전화를 걸었더니 모두 예약이 찼다고 했다. 요즘은 소규모 샵이 많이 생겼고, 혼자서 진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반드시 예약을 하고 가야만 한다. 미리 예약하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했고, 당일 예약은 번번이 거절당했다. 어쩔 수 없지, 친한 친구 K에게 네가 잘 가는 샵을 소개해달라고 문자를 넣고는 멀티탭을 사러 홈플러스로 향했다.
그즈음 오픈하게 된 가게에 필요한 제품이었다. 지하 전기제품 코너에서 그것을 골라 3층 주차장으로 가는 길이었다. 벽면에 1층에 네일숍이 있음을 알리는 글자가 붙어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샵을 찾아가 문을 빼꼼히 열었다. 아티스트는 네 명 정도였는데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멋쩍은 웃음을 흘리면서 지금 할 수 있는지 물었다.
"네, 들어오세요. 처음이신가요?"
그렇다. 나는 완전히 처음이었다. 나를 맡은 직원은 앳돼 보이는 얼굴이었는데 나에게 신규 회원은 2만 원부터 페디큐어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예약 없이 해주는 것도 고마운데 2만 원? 5만 원이 아니고, 2만 원?
나는 높다란 의자에 앉았고 앞에는 긴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나에게 몇 가지 설명을 하고 색을 고르게 한 아티스트는 갑자기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아서 내 발에 뭔가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남의 살'이라고 부르는 큐티클을 제거하기 위해 살을 연하게 만드는 약품을 뿌리고, 기구로 그것을 아프지 않게 제거했다. 발톱을 적당하게 자르고, 꺼끌 거리는 라운드 메이커로 발톱을 문질렀다. 내 발톱은 둥그렇게 변했다. 영양을 준다는 보호제를 바르고 마른 후 매니큐어를 발랐다. 그리고는 둥그런 기구에 발가락을 넣고는 구웠다. 굳게 하는 방법인 것 같았다. 왼쪽이 구워지는 동안엔 오른쪽 발목을 잡아서 자리를 잡은 후 오른쪽 발톱을 발랐다. 오른쪽이 열을 쬐는 기구에 들어가면 왼쪽을 그렇게 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 환골까지는 아니지만 분명히 탈태한 내 발톱이 나를 맞았다. 발가락이 쏙 들어가는 코르크 재질의 내 신발을 신자 내 발은 정말로 근사했다. 귀여움을 한껏 살리면서 청량함까지 더해졌다. 왼쪽 엄지와 오른쪽 엄지가 완전히 반대되는 색이어서 한층 세련돼 보이기까지 했다. (왜 세련인지 알지 못한다.)
나는 24,000원을 지불하고 어색하게 샵을 나섰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계속 발끝만 보며 걷다가 주차장에 와서는 내 차를 못 찾아 우왕좌왕했다. 운전석에 올라타니 발이 안 보여서 섭섭했다. 핸들을 잡은 , 아무것도 안 칠한 손톱이 그렇게도 미워 보일 수가 없었다.
다음날 K를 만났다. K는 내 발을 보고 ,
"이제 너도 그 문에 들어선 거야. 이제 못 나가."라고 말했다.
문제는 한 달 후였다. 그동안 발톱은 자랐고 큐티클도 함께 자랐다. 예쁘게만 보이던 젤 네일도 절반쯤 뜯어지기 시작했다. 네다섯 번째 발가락은 숫제 처음부터 받은 적이 없는 것처럼 모두 떨어져 나갔다. 나는 점점 벗은 발에 자신이 없어졌다. 다시 양말을 꿰어신었다. 찬바람을 내는 도구 없이는 몇 분도 견디기 힘든 폭염이었지만 맨발로 나설 수 없었다. 다시 받으면 됐지만 나의 일주일에는 기존의 젤 네일을 제거 후 다른 디자인으로 변경할 두 시간이 도무지 주어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작은 아이는 방학이 남들보다 보름 이상 빨랐고, 큰 아이까지 방학이 시작되자 삼시를 차려주는 것도 지치기 시작했다. 가게는 바빴고, 내 개인적인 일들도 한 자리 톡톡이 차지했다. 책도 읽어야 하고 글도 써야 하지 않은가.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마음이 없는 거야."
나는 그토록 하고 싶던 페디큐어에 왜 더 이상 마음이 없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예뻐지는 것에 익숙하지 않으니까. 애들 엄마는 원래 그런 거니까. 두어 시간씩 오직 나만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 -특히 미용으로는 더욱 - 없었던 옛날, 그래도 근사한 곳을 찾는 날엔 예뻐지고 싶어서 몰래 바르고 지우고 하던 삼천 원짜리 매니큐어들이 불현듯 생각났다. 난 정말 미음이 없었나?
아무튼 좋았다. 흰머리가 슬슬 올라와서 뿌리 염색을 하는 것 말고는 지속적으로 예뻐지기 위해 돈을 들여본 적이 거의 없으니까. 손톱 발톱까지 예뻐질 수 있다는 게 어떤 건지 느껴볼 기회가 없었으니까.
생각해보면 진짜 바쁘게 살았다. 감당할 수 있기 이상의 것들을 감당하면서. 이제는 조금 더 마음을 투자해도 되지 않을까? 예뻐지는 것도 괜찮잖아? 여보 준비됐지? (난 준비됐어)
시간을 들여 홈플러스에 다시 가야겠다. 한 달간 얼마나 행복했는지 아니까.